네, 제가 쓰레기라서 죄송해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의 값진 변화

by 이지작가

정원이는 내가 수업 들어가는 3반의 한 남학생이다. 3월 초 2열 가장 앞자리에 앉아 새로운 마음으로 학기를 시작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반짝반짝한 눈을 잊을 수가 없다.

6월 초, 구술형 수행평가가 있는 주간에 정원이는 할아버지 상으로 학교에 오지 못했다. 대게 이런 경우는 학교에 학생이 오면 수행평가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주일 뒤 정원이는 학교에 왔고 이미 다른 애들은 수행평가를 다 치른 상태에서 혼자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태어나서 처음 맞닥뜨리는 구술형 수행평가를.

잠깐 구술형 수행평가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구술형 수행평가는 쉽게 생각하면 해당 교과의 내용을 칠판 앞에 나와 친구들에게 발표 또는 설명하는 수행평가이다. 수학의 경우 문제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풀이 과정을 쭈욱 읽고 들어가면 점수가 낮다. 풀이 단계별 질문을 구성하여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친구들을 이 문제 풀이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수행평가는 문제의 풀이과정과 그에 걸맞은 질문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원이는 당연 준비를 못했다고 하여 하루 시간을 더 주겠다고 하였고 준비해 오겠다고 하였다. 그와 더불어 자기주도포트폴리오 평가 중 일부인 학습지 검사도 해야 하니 구술형 평가 시 함께 제출하라는 안내도 하였다.

다음 날, 3반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정원이에게 준비되었냐고 물었는데 준비를 못했다고 하길래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줄 테니 꼭 준비해 오라고 하였다. 학습지도 여전히 정리가 안되었다고 하여 함께 시간을 더 주었다. 오후 늦게 복도에서 만난 정원이에게 또 한 번 강조를 하였다.

"내일 발표 준비해 오고 학습지 잘 챙겨 와."


다시 다음 날, 정원이는 역시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너 수행평가 안 할 거야?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참여하지 않으면 최저점(30점)이 될 수밖에 없어."

"아니에요. 할 거 에요."

"진짜지? 이제 금요일 밖에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아."

"네, 진짜로 할게요."

"학습지는 정리해 왔어?"

"아니오."

"그것도 금요일까지야. 학습지도 미제출일 시 최저점이야."


금요일. 정원이는 발표를 하였다. 다행이었다. 수행평가는 지필평가와 다르게 계속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무한정 기회를 줄 수도 없기 때문에 보통은 구술형 평가 기간에 평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 그 후 일주일정도 더 여유를 두고 기회를 준다. 일주일 되는 때에는 준비를 해와서 서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대체 학습지는 왜 안 챙겨 왔을까? 정원이는 평소 수업 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 필기를 잘하는 편인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구술형 평가는 평가기준에 근거한 점수를 주었고, 자기주도포트폴리오 평가 중 학습지 부분은 최저점을 주었다.




수행평가 기간이 끝나고 점수를 확인하는 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정원이는 자신의 구술형 평가 점수와 자기주도포트폴리오 평가 점수를 확인했고 사인을 했다.

"혹시 자신의 점수에 이의가 있는 친구들은 이번 주 안으로 이의 제기를 하세요."

수행평가 점수가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사실 이의 제기를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그런 점수를 주게 되었는지 합리적인 근거들이 모두 있고, 학생이 주로 납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성적은 마무리가 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같은 정기고사에 비해 수행평가는 준비, 실시, 마무리까지 정말 신경이 너무 많이 쓰이고 힘들다.


그러고 나서도 성적 최종 확인을 한 번 더 한다. 최종 확인을 하는 날 정원이가 갑자기 나에게 와 자신의 자기주도포트폴리오 평가 점수가 왜 최저점이냐고 묻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본인이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설명하면 납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정원이의 주장은 이랬다. 자신은 할아버지 상으로 인해 학교를 못 나와 수행평가 안내를 못 받았고, 그 뒤 선생님이 안내하셨을 때도 못 들었으며, 복도에서 마주쳐 안내했을 때에도 잠결이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맙소사!! 그래서 나는 3반의 반장을 불러 내가 그동안 안내하고 기회를 더 준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반장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했고, 나는 이제 와서 기회를 더 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미 많은 기회를 주었고 이의제기 기간도 충분히 있었는데 성적이 확정되는 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런데 그때 정원이는 내게 욕설을 내뱉으며 교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마침 종이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정원이 너 이리 와봐."

복도에서 정원이와 나는 마주했고 나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다. 얘는 대체 왜 이러나 싶고, 내가 왜 욕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나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다시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게 들려오는 말은 나의 마음을 칼로 후벼 파는 듯했다.

"네, 제가 쓰레기라서 죄송해요. 됐죠?"

정원이는 어디서부터 뭐가 단단히 꼬였구나. 어떻게 이렇게 자신을 쓰레기로 치부하며 나에게 달려드는 것일까. 자신이 쓰레기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화'라는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정원이가 불쌍해졌다.


"정원아, 선생님은 지금 네가 너무 불쌍해. 정원이는 이 세상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그런데 네가 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널 사랑해 줄 수 없어. 네가 왜 쓰레기야? 수행평가 제대로 안 해서? 나한테 욕해서? 왜 네가 너 스스로를 지하세계 저 밑으로 밀어 넣고 있는지 모르겠어. 너의 내면이 어떡하다 이렇게까지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 쓰레기로 취급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거. 수행평가 점수 좀 못 받는다고 네 인생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 이를 계기로 앞으로 안내하는 사항 잘 듣고 기억해서 다시 해 내면 되는 거야. 알겠지?"


교무실로 돌아온 나는 사실 심장이 두근거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정원이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정원이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 형과 함께 산다고 했다. 아마 집안 사정으로 어릴 때 마음이 많이 다친 상태였나 보다. 그 후 며칠간 정원이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던 모습도 사라졌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다시 2학기 개학.

정원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1학기까지만 해도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 같았지만 필기만 할 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듯한 느낌은 없었는데, 이제는 그 눈빛이 다른 것이다. 내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심지어 손을 들고 질문도 하는 게 아닌가? 뭐지?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정원이의 수업 태도가 이렇게나 달라진 거야? 내심 너무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질문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쉬는 시간에 까지 유의미한 질문을 하는 정원이가 놀라웠다.

"정원아, 너 요즘 너무 멋지다. 눈빛도 초롱초롱해. 이번 중간고사에서 정원이 일 한 번 내는 거 아니야?"라고 칭찬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눈에 띄게 성적이 향상되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으로 큰다는 것을. 정원이에게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 수업 시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기에 다른 과목 선생님들께서도 정원이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말이 많고 시끄러울수록 눈길이 한 번 더 가고, 말 한마디 더 건네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정원이에게 내가 했던 말들은 정원이의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말이 아니었을까. 욕 한마디 들으면 어떤가? 교사의 말 한마디로 이렇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데. 그리고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변화를 이뤄 낸 정원이가 정말 기특하고 고맙다. 나는 오늘도 정원이를 응원한다.


정원아, 나는 네가 무슨 일이 되었든 크게 해내리라 믿는다. 네가 보여준 변화는 정말 값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렴.


- 사진출처: 픽사베이

- 이야기 속 학생 이름: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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