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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작가 Nov 30. 2022

어디야? 밥 먹자!

중2병 치료에는 이게 최고지.

중학교 2학년이 되면 그 증상이 약하든 강하든 누구나 한 번은 앓고 지나간다는 중2병. 우리 반에서 가장 심하게 이 병을 앓고 있는 친구는 단연 현준(가명)이다. 현준이는 코로나19 확진자가 30만 명을 넘어서던 3월,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에 등교중지를 체크하고 출석인정결석을 하였다. 그때는 믿었다. 정말 아파서 그러는 것일 거라고. 그리고 확진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가정 내 건강관리 기록지 하나면 출석이 인정되는 전례 없는 시기였다.

4월의 끄트머리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방과 후, 갑자기 현준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뭐지?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결석이 잦은 친구라 방과 후에 걸려온 전화는 불길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쌤, 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그대로 떨어져서 지금 병원 가요. 아마 내일 학교 못갈 것 같아요.”

“뭐? 심하게 다친거야? 걸을 수 있어?”

“아니요. 친구들이 부축해줬어요. 일단 병원 가보고 말씀드릴게요.”

짧은 통화를 끝으로 현준이는 한 달이 넘게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수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4번, 5번 척추가 골절되면서 2주 이상 입원 치료를 해야 했고 4주 정도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현준이는 6월부터 학교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한 달 이상 학교를 오지 않았던 현준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과목별 두 개 이상의 수행평가와 기말고사였다.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수행평가를 들이 밀었다. 아마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래도 기초학력 미달인 친구는 아니라서 수행평가를 조금만 신경 쓰면 기본 점수 이상은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동안의 학습 결손과 무기력함은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현준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꼭 잃어버린 마지막 퍼즐 조각 같았다.




2학기가 되면서 현준이의 중2병은 더 심해졌다. 5일 중 이틀은 무단 지각을 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학교에 달려오는 종류의 지각이 아니라, 집에서 일찍 나서긴 하는데 편의점에 들려 군것질을 하고 담배도 피고 여유롭게 학교에 온다. 학교에 오기는 싫은데 안 올 수는 없으니 학교에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늦게 오는 것이다.



사실 현준이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현준이가 이렇게까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허리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의 공백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준이 뒤에는 인자한 척 하지만 늘 자기 기준에서 아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어머니, 욕을 포함한 폭언이 난무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현준이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매일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씩 상담을 반복했다. 나는 아묻따 현준이 편이 되어 주었다. 어른 중에 적어도 한 명은 현준이 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1교시 시작 전에만 와도 ‘잘 왔어.’라고 하였고 8시 30분 전에 오면 엄청나게 오버해서 칭찬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현준이에게는 오버까지 해 가며 칭찬해 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늘 차가운 표정의 현준이도 내가 그렇게 칭찬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이 마스크 뒤로 보인다. 그렇게 학교를 와도 이내 곧 조퇴나 외출을 시켜 달라 나를 졸랐다. 이젠 안다. 정말 아픈 것이 아니라 담배가 피고 싶어서라는 것을.



우리가 꽤 많이 친해진 10월의 어느 날 아침, 이미 1교시가 시작 되었는데 현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쌤, 저 지금 경찰서 갔다가 나오는 길이에요.”

“응? 경찰서는 왜?”

“아동학대로 신고 했어요.”

“뭐? 아버지를?”

“아니요. 엄마요.”

“너, 지금 당장 학교 와.”

“아......그냥 오늘은 안 가면 안 돼요?”

“안 돼. 너 지금 학교 안 오면 무슨 일 저지를지 내가 무서워서 안 돼. 당장 와.”

무서웠다. 현준이가 혹시라도 자해 또는 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어머니와도 매일 같이 문자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했었기에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는 잘 알고 있었고 현준이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욕과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떠올렸지 어머니를 지목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바로 알았다.

‘현준이가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구나!’

내가 현준이를 품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평소 현준이는 자신의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는 친구이기에 분노를 신고로 표출했다 생각했고, 그로인해 분노가 좀 해소되었길 바랐다. 점심시간 전에 학교를 온 현준이의 낯빛은 굉장히 어두웠다. 일단 학교를 온 것부터 칭찬했다.

“그래 잘 왔어! 힘들었지? 밥부터 먹자.”




학교 일과를 마친 후 오늘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열을 내는 현준이를 계속 달랬다. 날씨도 갑자기 부쩍 쌀쌀해졌는데 집에 안 가면 어디 있겠다는 것인가. 한편으로 엄마를 신고했는데 집에 들어가 멀쩡하게 엄마를 마주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됐다.

“첫째, 집에 들어간다. 둘째, 혹시 안 들어 갈 거면 친구 누구 집에서 잘 것인지 나한테 보고한다. 셋째, 친구 집도 갈 곳이 없다면 일단 나한테 연락해라.”하고 헤어졌다. 너무 걱정이 되었다. 헤어지고 두 시간 반가량 지난 저녁 6시 경,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남편에게 아이들 저녁을 부탁하고 현준이에게 연락했다.

“어디야? 밥 먹자.”

고기가 먹고 싶대서 곧장 고기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미 학교에서부터 많이 했고,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그냥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고기를 먹었다. 사실 나도 학창시절 지독한 사춘기를 겪었던지라 현준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현준이는 그런 내 얘길 재미있어했고 수학 선생님이라 대단한 것처럼 생각 되었던 내가 어릴 땐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고 별 볼일 없는 학생이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마음이 많이 열리고 표정이 편안해졌다. 솔직히 내 학창시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들 덕분인지 현준이도 솔직한 심정을 잘 이야기 하였고, 나중에는 기특한 생각들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현준이는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 다음 날은 마침 주말이라 집으로 가서 어머니와 잘 풀었다고 하였다.




그 날의 헤프닝은 나와 현준이의 저녁 식사로 끝이 났지만 여전히 현준이는 담배 피고 들어오느라 지각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부딪힌다. 그래도 현준이 마음 속의 기특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음에 큰 수확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차갑고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은 아이는 어른의 시각에서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잣대를 갖다 대면 그 유리조각을 자신을 향해 꽂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조심히 다뤄야 한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잘 다듬어 따뜻하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예쁜 창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나는 오늘도 예쁜 창문을 만들기 위해 현준이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야? 밥 먹자!”

- 사진출처: 픽사베이

- 이야기속 학생 이름: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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