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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Jul 12. 2020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2004년의 여름을 기억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XGZ4eLgQ9RY



여름이 오면 꼭 찾아보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여름 향기가 가득한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과 영화 <중경삼림>의 주인공 왕페이의 사진 같은 것들(짧게 친 커트 머리와 노란색 카라티가 잘 어울렸던 그녀는 노란 햇살을 닮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오늘의 곡이 담긴 성시경의 리메이크 앨범 <제주도의 푸른 밤> 테이프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앨범을 사는 것이었다. 용돈을 받아 썼던 학창 시절, 15,000원 상당의 CD를 사는 건 큰 부담이었고, 그저 최선의 대안은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는 것 뿐이었다. 성시경의 데뷔작인 '처음처럼' 이후 발표한 2번째 정규 앨범 'Melodie d' Amour' (이 앨범의 타이틀은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이며 수록곡으론 '좋을 텐데'가 있다)가 대히트를 치게 되면서 그의 음악을 집중 공략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싹튼 시경 오빠를 향한 애정으로 손에 넣은 <제주도의 푸른 밤> 테이프. 투명의 플라스틱 커버를 열면 시간을 먹어 너덜너덜해진 가사집과 빛바랜 테이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분위기 있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 뒤로 파랗게 칠해진 하늘을 담은 커버 사진과 11번째 트랙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떠올리면 나는 2004년 초여름이 생각난다.      





점심 식사 후, 어김없이 달려갔던 운동장 구석에 자리한 수돗가. 물 묻힌 칫솔에 치약을 발라 입에 문 후, 물기 젖은 손을 교복 치마에 쓱 문질러 주머니에 넣는다. 당시 내 워크맨은 치마의 주머니보다도 커 그의 귀퉁이가 주머니 밖으로 삐죽 나왔고, 거대한 윤곽이 치마 밖으로 훤히 드러났다. Side-B면에 고정되어있는 테이프. 감으로 익혀둔 11번째 곡의 시작점을 찾아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다. ‘탈칵’. 잠시 멈춘 후,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면 10번째 곡 ‘소녀’가 끝자락으로 향해간다. 이윽고 발생한 잠깐의 적막 후 들려오는 잔잔한 기타 소리.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시작된 것이다.      



햇볕이 가장 강렬한 정오와 한시 사이. 나는 뜨겁다 못해 따가웠던 햇빛을 맞으며 이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멜로디와 성시경의 목소리, 그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던 친구들의 재잘거림. 그리고 입안 가득 들어오는 차가운 수돗물과 그 물을 먹어 축축해진 땅의 비릿한 냄새까지. 이 곡을 풍성하게 만드는 모든 오감을 좋아했다.


만일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물어보고싶은 게 있다. 15살의 소녀에게 이 노래는 진정 외로움이었는지, 아니면 위로 혹은 다른 어느 이었는지 말이다. 그 시절 품었을 혼란스러움마저 그리움이 된 오늘의 나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2004년의 여름, 소녀, 그리고 이 노래. 듣고만 있어도 그 시절의 오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이 노래를 올해의 여름에도 다음의 계절이 찾아올 때까지 두고두고 들을 것이다.      




다시 내겐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中>
 




<오늘을 듣다>의 첫 번째 곡은 장필순 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성시경 님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입니다. 오늘 오전부터 제법 비가 왔는데,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니 중학 시절 매일 같이 찾아갔던 운동장 수돗가와 이 노래가 떠올랐어요. 여러분의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오늘처럼 비가 오는 여름날, 혹은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낮에 노래가 궁금해진다면 이 노래를 추천해드립니다.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덥고 습해지는 요즘, 모두 기운 내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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