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흑임자죽 먹고 싶어.
엄마도, 나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흑임자죽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오늘 하루를 처음부터 다시 헤집어야만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뭣 같은, 아니 먹 같은 하루였다. 먹장을 갈아부은 것처럼 칠흑 같은 우울이 하루 전체를 덮어버린 날. 입사 3주년을 맞아 받은 2주 간의 리프레시 휴가에, 올해 가장 길었던 추석연휴까지 붙여 누린 3주의 휴식이 끝난 지 딱 일주일째 되는 금요일이었다. 휴가 유경험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던 리프레시 블루가 결국 나에게도 찾아왔다.
쉬는 동안 집중했던 이직은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만 했다. 징집되듯 돌아간 회사는 지겹도록 제자리였다. 부재했던 사이, 내가 속한 마케팅 본부의 예산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 있었다. 그만큼 회사가 평가하는 본부의 가치도, 우리의 영향력도 반 토막이 났다는 뜻이었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이 줄어든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산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달성해야 할 목표는 여전히 높았다. 세워진 전략은 없었고 우선순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을 포기할지에 대한 논의 없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만이 주문처럼 반복됐다. 본부장은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대표의 생각을 따르자”는 말만 되감기 하듯 반복했고, 뒤이어 붙인 “전략은 고민 중”이라는 말은 결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 무의미한 메아리를 뚫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동안, 기운이 삽시간으로 빠져나갔다.
3분이면 닿는 역삼역까지 걷는 짧은 찰나에도 속이 잔뜩 시끄러웠다. ‘팀원 15명의 시선을 버티는 그도 힘들겠지.’ 연민이 고개를 들다가도 ‘전략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라는 분노가 곧장 들이받았다. 극과 극에 선 두 감정이 머릿속에서 이를 갈며 충돌해 대니, 머릿속이 혼탁해져 멀미가 났다.
이직에 실패한 대가가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이라는 게 막막했다. ‘공고에 한 번만 더 지원해 볼걸’, ‘포트폴리오를 더 손봤다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이 결국 나라는 생각에, 그저 나를 물어뜯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3주 동안 이직 준비한다며 어정쩡하게 쉰 것도 억울했다. 이럴 거면 틈틈이 여행이라도 갈걸, 살이라도 좀 뺄걸. 불만만 자꾸만 불어나 심신이 배로 무거워졌다. 후회와 짜증에 갈리고 갈린 몸 밖으로 먹물이 번지듯 우중충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세 번의 지하철 환승과 역 밖으로 나와 다시 10분을 걷는 동안 나는 질식하듯 우울 속으로 가라앉았다. 두 시간 가까이 어둠에 담가진 몸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무거워진 두 발을 질질 끌며 겨우 집에 도착해, 둔해진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책상이었다. 그 위에는 <문맥 순해>, <Opic 기출문제>, <일본어 기초 다지기>. 쉬는 동안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며 펼쳐둔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책마다 손때는 묻어 있었지만, 그 흔적은 대부분 1장에서 멈춰 있었다. 이직 준비,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까지. 나는 3주를 한 3년쯤으로 착각한 걸까. 뭐라도 바꿔보고 싶었던 갈망이 책상 위에 산란하듯 흩어져 있었다.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책상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외투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책상 앞 침대 모서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소리의 주인은 엄마였다. 집에 온 지 5분이 지났음에도 인기척 하나 없는 딸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어째 노 해피야?”
사랑과 감사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크리스천 엄마는, 여느 때처럼 안부를 물으며 내 마음의 상태를 살폈다. 레퍼토리상 ‘오늘도 감사로 충만한 하루 보냈어?’라는 말이 뒤따랐을 텐데, 먹물을 잔뜩 머금은 오징어처럼 거무죽죽한 내 얼굴을 보더니, 그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물음에 어울리는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꺼냈다. 흑임자죽이 먹고 싶다고.
그건 엄마의 비밀 무기였다. 교인들이 집에 찾아와 함께 기도하는 심방 날이나, 가족의 생일 같은 날에만 꺼내는 특별식. 오늘은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죽이 떠올랐다. 질퍽하고 시꺼먼 현생을 닮은 그걸 차라리 우걱우걱 씹어 삼켜버리고 싶어졌다. 엄마는 “너는 맨날 뭐가 그렇게 먹고 싶냐”는 말을 툭 내뱉었다. 그 한마디에 감정이 잠시 삐끗해 무언가 대꾸하고 싶어 졌지만, 기운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자 엄마는 잠시 나를 더 바라보다가,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어서 자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방을 나섰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일주일 만에 출퇴근 리듬에 다시 길들여진 몸은 이른 오전부터 일으켜졌다. 갤럭시핏을 찬 손목을 들어 올리니 화면에 ‘07:30’이 깜빡였다. 방 문틈 너머로 이리저리 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주말 아침을 서둘러 시작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부엌, 분주한 엄마의 움직임이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느릿하게 부엌으로 나가보니, 식탁 위에는 믹서기가 꺼내져 있었고, 그 옆엔 검은 가루와 찹쌀이 물에 잠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흑임자죽을 쑬 채비였다.
“엄마 언제 일어났어?”
"몰라, 눈 떠진대로 일어났는데, 글쎄 한 10분 분지 났으려나."
기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걸 보니 재료는 모두 어제 준비된 것이다. 어젯밤, 식은 죽을 떠먹는 듯 미지근했던 나와의 대화를 마친 뒤 엄마는 곧장 부엌으로 가 찹쌀을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쿠팡에서 흑임자 가루를 주문했겠지.
검은 가루가 담긴 통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가루로도 잘 나와.” 정석대로라면 흑임자 죽은 검은 통깨를 직접 볶고, 곱게 가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엄마에겐 그 순서보다 지친 딸에게 죽 한 그릇을 빨리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쿠팡에서 흑임자 가루를 찾아보니 150g에 2만 원이 훌쩍 넘는 재료였다. 상품 페이지에는 ‘국산 흑임자’라는 이름과 함께 ‘프리미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가격표보다 ‘국산'이란 단어만 보고 골랐을 테다.
이제부터 엄마는 자신이 해야 할 요리에 매진했다. 정확히 말하면 흑임자죽을 먹을 딸에게 마음을 집중했다. 죽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만드는 과정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냄비 바닥에 눌어 타지 않도록 오래도록 젓고 또 저어야 하는 일이 요리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옛 조리서에 죽을 ‘인내의 음식’이라 적어두었을까. 재료는 검은깨, 찹쌀, 물, 소금. 단 네 가지뿐이지만, 흑임자 죽은 그야말로 마음으로 쑤는 요리다.
엄마는 불려둔 찹쌀과 흑임자 가루를 믹서기에 넣고 2~3분 간 곱게 갈았다. 알알이 씹히는 식감보다 수프처럼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선택이었다. 곱게 갈린 죽이 냄비로 옮겨지고, 곧 무한한 젓기의 시간이 시작됐다. 보아하니 3인분은 훌쩍 넘는 양이었다. 사랑이 많은 엄마다운 선택이었다. 주말 내내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이 냄비에 넘칠 만큼 담겼다.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옆에서 어슬렁 거리는 내게, 엄마는 뜨문뜨문 말을 건넸다.
“너네 본부장은 아직도 똥이야?”
“뭔 놈의 일이 매번 그렇게 어려워서 어쩌냐고.”
삼 년째 들어도 선뜻 이해되진 않지만, 나 못지않게 내 회사에 불만이 많은 엄마의 분노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걱정이 앞서면 말이 먼저 거칠어지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을 자주 오해했고, 이따금 그녀의 거친 발언에 생채기를 더 입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말을 고르기보다 고봉밥으로 내 속을 채우고, 뜨끈한 국물과 산해진미를 담은 반찬들로 상처를 박박 씻겨 다시 꿰매주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무뚝뚝한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엄마가 자녀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죽을 만들러 부엌으로 향하던 엄마의 뒷모습과 딸보다 더 큰소리로 회사를 나무라는 엄마의 속상함이, 모두 엄마의 사랑이었다는 걸 늘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때마침 냄비 안의 흑임자도 툭툭 튀며 끓어올랐다. 죽이 튀어 오를 때마다 엄마는 '아뜨, 아뜨!' 하며 손을 털고, 잔뜩 열이 오른 흑임자를 국자로 휘휘 저어주었다. 자꾸만 욱하는 흑임자가 얼른 평안을 찾길 바라며, 그녀는 오랜 시간 죽을 어르고 달래주었다.
한 시간가량의 고투 끝에 드디어 완성된 흑임자죽. 진하고 꾸덕한 죽이 눈앞에 놓였다. 곱게 쑨 흑임자는 엄마가 가장 아끼는 식기이자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그릇, 빌레로이 앤 보흐의 작은 수프 그릇에 담겼다. 나는 숟가락으로 죽 한가운데를 푹 떠서 입에 넣었다. 뜨끈하고 진한 흑임자 덩어리가 혀끝을 타고 목구멍으로 지나 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찌나 뜨거운지 내 몸의 어떤 장기를 지나가는지 그려질 정도였다.
고대부터 귀한 재료로 여겨졌다는 검은깨. 삼국사기와 동의보감 같은 고문헌에는 기력을 북돋고 피로를 풀며, 노화를 늦춘다고 기록돼 있다. 또 동양에서는 검은색을 생명의 근원인 물의 기운을 뜻한다고 한다. 오행으로 보면 깊이와 회복,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고. 그래서 예로부터 흑임자나 흑미 검은콩 같은 검은 식재료는 ‘기운을 보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약’으로 전해 내려왔다. 오늘날에도 병문안 음식이나 산후조리, 노인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쓰이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두어 숟가락을 뜨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노곤노곤 풀렸다. 검은 죽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
진한 흑임자 덩어리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숨이 한 박자씩 가라앉는 듯했다. 급하게 달리던 하루가 이제야 제 속도로 돌아오는 것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 위로 엄마의 묵직한 사랑이, 뜨끈한 위로가 두둑이 덮였다.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한 상이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엄만 다 만들 수 있어.”
엄마는 한 숟가락도 먹지 않은 채 하압– 하고 입을 크게 벌려 먹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이 끓어오를 때마다 국자로 저으며 보내던 그 안쓰러운 눈빛이 지금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굳이 마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뜨거운 죽에 엄마의 온기까지 겹치자 가슴께가 빠르게 데워졌다. 그 열기가 코끝까지 올라와 나는 얼른 흑임자죽으로 입을 막았다. 채워지는 엄마의 사랑이 눈 밖으로 다시 흘러내리면 엄마가 더 속상할 것 같아서였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숟가락질만 이어간 탓에 나는 마지막까지 엄마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연이어 싹싹 비운 두 그릇으로, 그녀에게 조용히 답을 전했다.
<엄마의 흑임자죽 레시피>
※3인 분 기준
�재료
1. 흑임자 가루 90g
2. 찹쌀 180g (종이컵으로 약 2컵)
3. 물 1.2L (종이컵으로 약 6컵)
4. 소금 1/2 작은술 (기호에 따라 조절)
5. 설탕 또는 알룰로스 (기호에 따라 조절)
�️ 만드는 순서
1. 찹쌀을 물에 넣어 불려주세요.
2. 이후 흑임자 가루와 섞어 믹서기에 갈아 주세요.
3. 냄비에 갈아둔 재료를 넣고 열심히 저어 주세요.
4. 이제부턴 인고의 시간!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오랫동안 저어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