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4

말복? 아잇 바빠 죽겠는데 그냥 대충 먹자 좀!

by 연필소년


삼복더위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초 중 말복 날이 되면 치킨이니 삼계탕이니 오리백숙이니 염소탕 같은걸 챙겨 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달이 분기마다 해년마다 기념일을 만들어서 챙겨 먹길 좋아하는 우리내는 어떻게든 뭐든 어떤 날로 만들어서 밖으로 나가 삼삼오오 모여 시간 보내기를 즐긴다.


하지만 한 여름의 제철 과일 생산을 업으로 삼는 부모님에겐 최소 지난 10년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집 아래 땅을 사서 소일 하시는 고모부의 강경한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단 한번도 챙겨먹지 못했을 '기념일' 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아버지의 경우는 일 밖에 모르는 무심한 성격 이신지라 섬세한 어머니의 기대나 아련한 눈빛 같은건 깡그리 무시 하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건 또 아들내미가 챙겨야 하지 않나 이말이야.


마침 말복에 가깝게 월급도 들어왔고 (뻘써 한달이 훌쩍 넘었다니...세월..인생..) 그 핑계를 삼아 밖으로 나갈 이유를 만들었다. 삼 복을 다 챙기진 않아도 점은 한 번 찍어야 한다며 아침부터 아버지를 가스라이팅 하고 근취를 못한 피곤한 눈을 애써 부릅 떠가면서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젊은 놈이 빠릿하게 움직이면서 일을 도우면 아버지도 딴 생각에 쏟을 체력이 남기 마련!


입으로는 연신 비위를 맞추고 손과 발을 놀려서 일을 끝마치고는 선별한 복숭아를 트럭에 싣고 손수 공선장에도 다녀온다.


"안그래도 오늘은 뭐좀 먹을려고 했지."


짐짓 다 생각해 둔게 있었다는 듯 너스레를 떠시는 걸 흐뭇하게 바라본다. 공선장에 다녀오는 동안 벌써 샤워까지 마친 아버지는 말린 머리를 빗으로 빗어 넘기면서 말씀 하시고는 일찌감치 새 옷으로 갈아입고 데크로 나가 기다리신다. 그래 뭘 그렇게 맛있는걸 먹여 주려는지 함 보자는 식이다.


최근 깨닫게 된 것인데 아버지는 피자를 좋아하신다. 정확히는 피자를 비롯한 서양 음식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당신은 밥이 좋고 한식이 좋다고 하나 눈 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 치우는 속도를 미루어 보아 틀림없이 그렇다. 얼마 전에도 면에서 힘들게 찾은 피자 파는 집에서 사 온 두 판의 피자를 게 눈 감추듯이 드시는 걸 보았고 몇 년 전 도시로 올라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도 별 생각 없이 자주 안드시는 음식을 대접하자는 생각으로 모셔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그 흐뭇한 미소와 전투적인 식사를 떠올려 봐도 그렇다. 확실하다. 아버지는 초등학생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피자 파스타 햄버거를 좋아 하신다.


순혈 한국 여든살 어르신의 체통을 위해 애써 부정 하시는 것을 모른체 해 드리는 것 뿐.


그래서 이번 복날엔 밀리 레스토랑에 가기로 결정했다.


"야 대충 저기 가서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뭘 예약을 하고 멀리까지 가고 그러냐.."

"맨날 먹는거 질리지도 않아요? 가만히 계시면 데려다 줘 밥 사줘 내가 다 하겠다는데 뭔 잔소리를 그렇게 하시나 그래. 그냥 쫌 가요"

"아유 당신은 애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뭔 불만이 그리 많아요? 그냥 좀 갑시다."


행선지를 알게 된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쏟아 내셨지만 이제는 아들도 적당히 머리가 영글어서 지지를 않는다. 어릴 때는 무서웠던 아버지의 호통과 잔소리, 그 신경질이 무섭고 짜증나서 쉬이 대화 하지 않았고 멀리 했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 그걸 눈치 챈 어머니는 또 슬쩍 내 편을 드신다. 자기 말로는 꼼짝도 안하는 남편을 말 몇마디로 찍어(?) 누르는 아들 덕에 요즘 기가 제대로 펴 져 사는 맛이 좋다는 분이시다. ㅎㅎ


주말이기도 하니 사람이 많다. 예약을 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부모님은 살짝 긴장 하신 듯 했다. 사람 없는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안하시는 분들이니 복작 거리는 식당 내 분위기에 살짝 주눅이 든 것이다. 나 조차도 사람 많은 곳을 잘 다니질 않으니 비슷 했지만 그래도 이 그룹의 인솔자로서 책임을 다 해야 했다.


메뉴를 이것저것 고를 여유는 없다. 그냥 가장 비싼 거.

어찌하여 돈을 씀에 있어 계획적이고 실용적이지 못하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선택 이었으나 어떠한가. 내 부모님께 이 집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그 모든 염려에 우선한다. 어릴 적 나에게 두 분이 그러 하셨던 것 처럼..


이런 과소비는 언제나 옳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메뉴들이 차례로 나오고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며 미소를 금치 못했다. 연신 뭐 이런걸 어쩌구 하시면서도 게 눈 감추듯 접시의 음식을 드시는 아버지와 그래도 품위를 잃지 않으시며 샐러드 부터 천천히 공략 하시는 어머니, 그러나 돼지도 닭도 못드시는 어머니 조차도 소고기 스테이크 만큼은 정말 맛있게 드셨다.


언제부터 였을까

부모의 그림자를 밟으며 자란 자식은 어느새 장성하여 그들이 그에게 입혀온 새로운 경험들을 토대로 이제는 그가 그들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선사 하고 있다. 훤씬 더 긴 세월간 이 세상을 경험 했음에도 바쁘고 힘겹게 살아온 시간동안 미처 돌아보지 못했고 애써 무시했고 미루고 미루다 희망 하던 것들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낸 것들. 때론 소소하고 때론 반짝 거리고 때론 엉뚱한 그 소망들을 하나씩 해 드릴 수 있는 것에서 자식은 그 역할을 해 내어 가는거지.


그래서 뭐, 변변치는 않지만

해 마다 찾아 오기에 그냥 먹을 핑계거리에 불과 했던 복날에 이렇게 또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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