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충돌
내게 귀향은 귀농이었다.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그 중에서도 과수쪽으로 배워서 해 볼 것을 아버지께 제안 받았고 몇 번을 고사 했지만 점점 쪼그라 들고 있는 내 일의 미래는 불투명 했고 청춘을 다 바쳤던 내 자존감은 떨어지고 불안감은 커져 가고 있을 즈음 그러거나 말거나 준비는 해 두겠다는 아버지의 혜안 덕분에 이루어진 극적인 결말.
전업 농사꾼이 되기엔 시간이 필요하고 거지가 되어 너덜너덜한 나의 잔고 상태로는 몇 년을 버틸 수 없었기에 내려 오자마자 이력서를 돌렸고 그나마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곳에 취직해 있는 상태다. 그렇게 두어 달을 지내고 나니 처음엔 그저 편하고 좋기만 하던 고향생활 속 불편함 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창 여름 과일인 복숭아를 따고 선별하고 포장하고 보내고 팔고를 반복 하다보니 이 노인네들이 왜이렇게 불편하게 일을 하는 거지? 하는 부분들이 생겼고 개선을 종용 했지만 쓸데 없는 일에 돈 쓰지 말라는 아버지의 반대와 부딪히기를 여러 번.
"니 일이나 똑바로 해"
라는 짜증어린 화살이 내 심장에 날아와 꽂혔다.
군말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다짐을 여러번 했던 나 역시 터져버리게 한 결정적 한방이었다.
"아니 24시간 꼬박 일 하고 와서 자지도 않고 일 거들고 있는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이예요?"
언성은 내가 높았다. 정확히는 성문암 수술을 하신 아버지는 고함을 질러도 모기 목소리로 나오기 때문에 그닥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 아들인 나는 목청이 너무 좋아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형국이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 한테 체면 깎이는 걸 극도로 싫어 하시는 아버지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얘가 왜 소리를 지르는 거지? 하는 의문과 동네 사람들이 들었을까 불안이 담긴 시선을 보내 오셨지만 두 달 가까이 불평 한 번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해 온 나는 참지 않았다.
"내가 뭐 나 편하자고 하자 해? 나 편하자고 사자 해? 있으면 좋고 편하고 일하기 수월해 지고 그렇게 하면 더 빨리 잘 할 수 있으니까 그래 하자는거 아니에요? 동력 제초기도 사고 좀! 1년에 풀 깎는 사람 인건비만 100만원이 넘어가고 그거 아낄려고 그냥 둘이서 예초기 들고 아침 댓바람 부터 저녁까지 2박3일을 깎아야 되는데 힘들면 힘들다고 집에 와서 온갖 짜증은 다 부리고 아니 그러면 짜증이라도 내지 말던가 혼자 세상 힘든 일 다 하는 것 처럼 그래 와서 식구들한테는 승질 내고 바깥 사람들한테는 허허허 웃으면서 마냥 좋은 사람인 척은 다 하고! 왜 그러는 거여 왜! 아니 어떻게 옛날이랑 변한게 하나도 없어요 아부지는?"
끝내 하지 말았어야 될 그러나 수십 년간 가슴속에 눌러담고 한 번도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던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적잖이 당황하신 듯 한 아버지는 그냥 아무말도 안하고 먼산 바라보기를 시전 하셨고 한 번도 아들의 고함 소리를 들어본 적 없던 어머니는 점심 밥상을 차리다 말고 놀래서 나오셨다.
"아니 무슨 일이야 왜들 그렇게 언성을 높여요 ?"
할 말을 한 것이지 패륜을 저지른 건 아니다. 어디 아버지께 고함을 지르면서 바락바락 대드냐고 해도 우리 집안의 연대기를 알 길 없는 이들에게 구태여 설명 할 이유도 없다. 좀 더 차분하게 얘기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순간적으로 욱 해 버려(이 마저도 그의 아들이기에) 쏟아진 말들을 주워 담을 방법 또한 없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반박 하지 않으셨고 나는 담긴 말을 모두 게워내지 않았다. 여기서 더 가면 화해 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두 부자의 침묵이 더 길어질 것이기에 이 쯤에서 멈추는게 맞았다.
탁! 하고 일어서서 집을 나섰다. 깎다 만 풀을 마저 깎으러 가야 했다. 집에 같이 들어 앉아 있기도 어색 하니 이 짜증과 분노를 담아 풀이나 마저 깎고 오자는 거였다.
아버지는 아침에 고추를 따기 위해 부른 일꾼들을 데려다 주러 나가셨다. 다행히 둘 다 할 일이 있어 망정이지 서로 우악 지르고 마주앉아 밥이라도 먹을라 쳤으면 얼마나 불편 했겠는가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다음 날은 또 근무를 해야돼 못들어 오고 이튿날 아침 퇴근을 하니 아버지는 끝 물 복숭아를 따러 나가셨다고 한다. 주섬주섬 옷들을 챙기고 걸어갔다. 나무들 속에 숨어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터덜터덜 걸어가 뒤에 선다. 기웃거리는 낌새를 느끼셨는지 슬쩍 뒤돌아 나를 보신 아버지.
"들어가 자지 뭐하러 나왔어?"
"아이 뭐 복숭아 딴다는데 혼자 들어가 잘 수가 있나 뭐라도 해이지 와서."
"체.누가 임마 너한테 복숭아 따래? 들어가 자"
"보고요! 졸리면 알아서 들어가 잘라니까"
"딸 거 없어. 아직 덜 익어서 그냥 내려오는 길이야 내일이나 딸 까 싶다."
"가요 언능 그럼 여기서 뭐해"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부자의 대화.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따위의 말 들을 평생 주고 받아 본 적이 없는 본체와 분신 사이인 우리는 그냥 그렇게 지난 일을 넘겼다. 정확히는 아마 아버지는 나의 고집을 꺾지 않으실 것이다. 한 번 더 고집을 피우면 못 이기는 척 그러라고 하시겠지. 제초기도 살 것이고 부직포도 깔 것이다.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또 얼마든지 들여올 것이라고 다짐 했고 한 번 팅기기는 하셨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막을 수 없다. 굳이 그러려고 하지도 않으실 테고.
우리의 이해 충돌은 그렇게 조용히
말로는 다 매듭 짓지 않았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며 끝이났다.
다음엔 또 뭘 가지고 싸워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