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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n 18. 2021

백석- 여승(女僧)

시인 백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마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타자를 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수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 백석 시인이 아닌가 싶다.

일제강점기 185cm라는 당시 어마어마한 키에 휜칠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시작(詩作)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한 언어 천재로서 세 번의 결혼을 한 이력과 란이라는 여자와 함께 통영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김영한이라는 재일 동포 여인이 1980년대 후반 당시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백석 시인을 위해 길상사라는 절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며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일, 100권을 사비로 1936년 한정 발간한 그의 첫 시집 '사슴'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龍)이 되어 어딘가에서 나타나 주기만 한다면 1억 원을 호가하는 돈으로 사겠다는 이가 지금도 줄을 선 전설 중에 전설의 스토리를 가진 이가 백석 시인이다.

오늘은 이런 백석 시인의 그 유명한 전설의 시집 '사슴'에 수록된 '여승'을 감상해 보자.            


여승(女僧)


                          -백석


여승은 합장(合掌)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뀡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시집 '사슴' 中 1936년


시를 감상하자니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고통이 우리 삶의 기본 전제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의 삶도 마냥 행복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보다 더한 아픔으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마음을 한없이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시임에 틀림없다.

그가 북에 머물지 않고 남녘에서 계속해서 원했던 서정시를 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회성 떨어지는 서정주 시인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으며 우리의 삶을 예술로 더 풍요롭게 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상상을 자연히 할 만큼 백석 시인의 시 하나하나가 상투적인지만 주옥같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백석 시인의 시답게 어렵게 느껴질 만큼의 형이상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그의 시의 특징답게 이 시에서도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기에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도 잘 모르는 내게 몇몇 단어들은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기에 찾아서 정리해 보았다.


가지취- 취나물의 일종

금점판: 금광의 일터

섶벌: 재래종의 꿀벌

마당귀: 마당의 한 귀퉁이

머리오리: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모르던 단어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 거침없이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려보자.

우선시(詩)는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서사의 형식으로 써 내려갔다.

화자는 어딘가 본듯한 여승의 얼굴에 드리워진 슬픔을 직감한다.

그런데 그 슬픔은 불경처럼 서러워졌다고 한다.

불경이 무엇인가? 세상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에 오르신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글들 아닌가.

그럼 그 불경에서는 기본적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108가지 번뇌에 이르는 길과 이에 그 번뇌를 끊고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길이 함께 있는 것 책이 불경이다.

불경의 기본은 108가지 괴로움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해탈을 해 야기에 불경의 기본은 괴로움 마음과 현실에 있는 것이다.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것은 세상 모든 번뇌를 다 가진 여승의 모습이 보인다는 뜻이다.


이제 시인은 그런 여승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풀어 놓는다.

우선 여자는 가난했다. 평안도 어느 금광 언저리에서 보채는 어린아이를 때려가며 옥수수를 팔던 여자이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광부들을 상대로 어린 딸아이를 안고 옥수수를 파는 여인의 삶은 그야말로 밑바닥 중에 밑바닥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삶도 가족과 함께라면 충분히 이겨낼만 하건만 나라 잃은 땅의 젊은 남편은 벌처럼 어딘가로 가서 10년째 돌아올 줄 모르고 때려가며 옆에 끼고 살던 어린 딸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고 한다.

이보다 서러운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할 이가 또 있을까?

가족의 부재를 어찌 이렇게 아름답지만 서글프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그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감정이 북받치고 무언가가 눈가에 맺히려 할 것이다.


이제 여인은 속세에 살 이유도 자신도 없다.

그저 마당 한 모퉁이에서 머리오리 눈물방울과 같이 떨구고 절에 들어가 지금 한(恨) 많은 여승의 모습으로 시인 앞에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이 여인은 나라 잃고 한(恨)만 더해가는 조선 땅의 민중이었으리라.


도저히 마음이 아파 두 번 세 번 읽기 힘든 시가 이 '여승'이라고 생각된다.

그리 길지도 또 어렵지도 않은 말들로 이렇게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며 왜 시인 윤동주가 백석 시인의 시를 읽고 나이 스물에 글을 쓰는 목표를 수정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시 하나로 증명되는구나 싶을 정도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입장을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게 풀어쓴 시 '여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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