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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Feb 04. 2022

윤동주- 길


윤동주 시인의 시(詩)는 그의 연대기별로 처한 상황을 알고 읽으면 그의 마음이 더욱 와닿기에 단순히 시평 같은 것을 보고 파악하려 하지 말고 당시 그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시가 나왔는지를 알고 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을 즐기기 위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스펙과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마음이 아닌 글로 접한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올바른 문학 즐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배운 후행 본능 때문이지 우리는 시 읽기가 시가 상징하는 바를 또 은유하는 바를 알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과정으로 알고 있기에 문학 중에서도 유독 시(詩) 읽기를 두려워(?) 하는 거 같다.


나는 시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어떤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시를 씀으로써 그와 같은 글자의 노래를 했는지를 알고 보면 상징이나 은유 같은 시적 표현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음에도 시 한편 달랑주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저것이 상징하는 바를 아니면 이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을 파악하여 올바르게 정리된 것을 고르라는 어이없는 교육으로 이 좋은 문학 장르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불구의 예술적 자산이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시 '길'이 윤동주 시인의 어떤 배경에서 쓰였는지 살펴보기 전에 아름다운 시 '길'을 음미해 보자.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中


이 시는 1941년에 쓰인 시라고 한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당시 중국은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살아진 상태였으므로 적확하게 따지자면 신해혁명 후 쑨원을 필두로 만들어진 중화민국의 조선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태어난 셈인데 민족정신은 그 누구보다 높았던 점은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유년시절부터 북간도와 연길의 용정 그리고 평양의 숭실학원 등에서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한 것이 1938년의 일인데 그것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연희전문학교 진학 후 정지용 시인의 시를 접한 후 시를 대하는 태도나 스타일이 완전히 변하여 기존의 동시(童詩)나 어려운 언어로 된 시 쓰기를 접고 쉬운 언어로 된 서정적인 시 쓰기로 전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이때부터 그가 죽기 3년 전인 1942년 '쉽게 쓰여진 시'를 마지막으로 4년 남짓 그나마 일제가 총동원령을 내려 뒤숭숭한 분위기였던 1939년부터 1940년의 2년 남짓한 기간에 쓴 시는 불과 6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1942년부터 일제에 체포되는 1943년까지도 시를 쓰긴 했지만 일제에 의하여 폐기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을 뿐이다.


종합해 보면 1941년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1938년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진데 더하여 조선반도 수탈이 극악으로 치닫던 시기로 징용, 징병, 징발 그리고 위안부 등 최악의 식민지 수탈로 뒤숭숭하던 시기 연희전문학교도 그런 상황으로 조기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준비 중이거나 초기 유학시절로 조국의 비극 앞에 그가 '쉽게 쓰여진 시'에서도 고백했듯이 먼 이국땅에서 학비를 받아 노 교수의 강의나 들으러 다니는 자신의 현실에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전쟁이 일본에 불리하게 전개됨과 자신의 조국 광복 운동 등에 희망을 걸던 시기로 좌절과 그 속에서 희망을 동시에 느끼던 때이다.

이 시 '길'도 1941년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조국의 해방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시이다.

화자는 무언가 잃어버려 두 손으로 주머니를 뒤지다 길을 나서지만 돌과 돌로 막힌 돌담 사이에 길도 들어갈 문도 없어 눈물짓다 쳐다본 하늘에 부끄러워한다.

젊은 청춘의 방황보다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한계를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게 맞을 것이다. 화자는 그렇게 좌절하는 것 같지만 화자는 이내 무언가를 찾아 살아갈 이유를 알게 됨에 희망을 느끼는데 그것은 바로 조국 광복의 빛이 비침을 알게 됨에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꽉 막히고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길에 갇혀 주저앉은 화자는 살아갈 이유를 찾고 다시금 구두끈을 고쳐매고 일어서는 희망을 노래한다.

윤동주 시인이 이 시를 쓴 것이 그의 나이 스물넷 언저리이다.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로 그와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마음이 한없이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조국 없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의 마음을 헤아리고 당시보다는 나은 환경에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며 다시금 희망이라는 것을 마음에 잡아 묶고 길을 나서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시인 윤동주의 '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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