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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Feb 08. 2022

이상(李箱)- 오감도(烏瞰圖)

까마귀가 내려다 본 세상은 어떨까?


시(詩)-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형식에 따라 정형시ㆍ자유시ㆍ산문시로 나누며, 내용에 따라 서정시ㆍ서사 시ㆍ극시로 나눈다.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시(詩)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 시 오감도(烏瞰圖).

한 간에서는 원래 30편 연작으로 발표하려던 계획대로 30편이 모두 나왔다면 대한민국 국문학계의 수고를 지금의 두 배 이상을 주었을 거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난해하다던 이상 시인의 15편짜리 연작시 오감도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다.


우선 오감도라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 단순히 우리가 배운 언어로 만은 이해가 힘들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이 시를 천재 작가의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으로 그 위상을 한껏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도표 또는 그림 그리고 물리나 수학적 법칙 없이는 도무지 무슨 말이지 알아들 수 없는 시의 전개로 그가 글을 쓴 이래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국문학자들의 석.박사 논문에 골치 아픈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문학자들이 수학이나 물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시(詩)를 연구하고 해석하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어쩌면 그가 미리 이러한 예상을 하고 당대와 후대 글 창작과 비평 길드에 내린 저주 또는 축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면 왠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쨌든 각설하고 오늘 포스팅에서는 시 해석이야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대학교수님께서 골치를 썩여가며 해오시고 앞으로도 하실 일이며 그런 능력 100의 1도 없는 나로서는 능력밖에 일임을 인정하고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나름의 재미있는 유추를 해보기로 하고 글을 써보겠다.

작가 이상(李箱)

우선시(詩)의 제목부터 오싹하다. 무언가 공포가 밀려오는 느낌이다.

조감도(鳥瞰圖)-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상태의 그림이나 지도.(네이버 어학사전) 

오감도(烏瞰圖)- 까마귀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인간들의 세상.(목가적일상추구 맘대로 해석)

지금의 서울대학교 공대라 할 수 있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수석 졸업의 수재답게 시의 제목을 건축설계의 중요한 표현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조감도에서 빌려왔다.

그런데 그 조감도의 새 조(鳥) 자에서 한 획을 빼면 까마귀 오(烏) 자가 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이상 작가가 까마귀 오자에 대하여 어떤 뉘앙스로 사용했는지는 하지만 일본적 메타포로 까마귀는 긍정의 길조이며 조선의 메타포로는 불길(不吉)의 징조이다.

일단 전체적인 암울한 분위기로 봐서는 조선의 메타포로 까마귀 오자를 차용한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불길한 징조의 상징인 까마귀가 높은 곳에서 관망하는 세상의 모습으로 해석되니 어쩐지 으쓱한 기운이 시의 전편에 무겁게 내리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마음으로 시를 읽자마자 헛웃음과 함께 왜 시를 발표한 1934년 조선중앙일보사의 사장 여운형 선생(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했던 분)이 당초 연재하기로 했던 30편의 반인 15편에서 중단했는지를 단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출처: pixabay.com


시에 대한 해석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고 당시의 작가 이상(李箱)에 상황에 빗대에 왜 그런 을씨년스러운 제목의 난해한 시를 쓰게 되었는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1934년 종로의 다방 '제비'로 커피 한 잔 마시러 떠나보도록 하겠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작가 이상은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기사로 특채되어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33년 폐결핵으로 인하여 각혈이 심해지자 기사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금홍이라는 기생을 만나 함께 서울로 돌아와 아버지의 집문서를 담보로 다방 '제비'를 차린 것이 1934년의 일이었다.

이 오감도 시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것이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의 일이니 그때의 이상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934년의 폐결핵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세는 악화되어 각혈을 해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건강을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떠났지만 도시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도무지 시골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죽음을 재촉하더라도 도시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 시골에서 만난 기생 금홍과의 생활을 위해 아버지의 집을 담보 잡히고 차린 다방 '제비' 단편소설 '날개'에서 암시되었듯이 금홍과의 관계도 다방 '제비'의 경영도 녹녹치 않았다고 한다.

또 그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는 어떠했는가?

일본제국의 식민지 경성. 이제 자본주의에 눈뜬 식민지 시민들의 가치 순위 1위는 돈이었다.

돈을 위해 무한 경쟁이 당연시되는 세상에 작가 이상은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뒤로 뒤로 물러나는 퇴로의 길 한가운데를 홀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아픈 기침 후에 뜨거운 피가 폐로부터 솟구치는 극한 고통 속에 삶과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으나 제국주의 식민지 치하의 지식인으로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 그 자체인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을 말이다. 불안. 불안. 불안 그 두 글자만이 온 뇌를 점거한 채 초현실적인 형이상학의 세계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이외의 그 무엇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천재 작가 이상의 죽기 전 몇 해의 삶에 대한 정확한 요약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오감도 시제1호와 시제9호를 소개하며 마치고자 한다.


오감도 시제1호

                    -이상(李箱)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갈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더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 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 1934년


까마귀가 저 하늘을 날고 있는데 아래 세상에선 13명의 아이들이 도로를 뛰어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겁에 질려 어디론가 뛰고 있다.

지금 막다른 골목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이 뛰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뚫린 골목에서 그 13명의 아이들이 뛰지 않아도 좋다고 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여러 가지 평이 있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무한 경쟁 자본주의사회의 처절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 역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핵심 광장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기괴하고도 슬픈 모습에 매우 공감이 가는 바이다.


오감도 시제9호

           -이상(李箱)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은다. 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 그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앝았더냐.  

조선중앙일보 1934년


이 시는 작가 이상이 폐결핵으로 인하여 하는 각혈(咯血)의 순간을 표현 것이라고 한다.

바람같이 연달에 내치는 기침 후에 매끈매끈한 총구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올라오고 총 쏘듯 내뱉어지는 검붉은 혈액들..............

죽음과 불안이라는 형이상학적 고난. 가난과 육체의 고통이라는 유물적 재난에 시달렸던 젊은이 이상(李箱). 그의 삶과 작품을 읽으며 아직은 유예되어 내 앞에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나의 실존적 고통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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