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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l 08. 2022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장.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의 연탄 3부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中 1994년


짧지만 참으로 강렬한 시(詩)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시의 작가 안도현 님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첫 시라는 점이다.

당시 책을 펴든 독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난데없이 길가에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하며 너 자신을 알라는 식으로 대뜸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시작으로 시집은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해서 줄줄이 연탄 이야기가 나온다.

한 번 쭈욱 감상해 보자.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中 1994년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히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中 1994년


소위 연탄 3부작이라고 불리는 시가 수록된 시집은 작가 안도현 님이 1994년 발표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으로 1부 첫 작품부터 연달아 연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도현 작가는 지금은 소위 진보진영의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도종환 국회의원이 제도권 진보진영 작가라고 하면 안도현 작가는 재야 진영 작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국 장관의 일들이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을 때 진중권 님이 조국 장관을 옹호하는 안도현 작가에게 연탄 운운하며 서민적 정서로 어필하던 분이 언제부터 사회 기득권 편에서 글을 쓰게 되었냐며 목소리를 높이던 일이 떠오른다. 이렇게 진보진영의 재야에서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안도현 작가는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전라도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전주에 있는 우석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는 등 경상도 출신으로 전라도에서 지지를 받으며 활동하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89년 여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을 당한 이력이 있다.

이 시집이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고 한다.

해직교사로서 바라본 세상 그 세상은 어떠했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시키는 일, 그리하여 시와 삶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하나가 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거의 하나에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그 둥글디둥근 꿈 말이다. 모든 것이 좀더 가난해지기를, 좀더 외로워지기를, 좀더 높아지기를, 좀더 쓸쓸해지기를.


그렇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다 좀 더 가난해지고, 좀 더 외로워지고, 좀 더 쓸쓸해짐을 통해서 그는 좀 더 높아지는 느낌이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길에 놓인 연탄재에서, 방구들이 선들선들해지는 늦가을 연탄을 나르는 모습에서, 그 와중에 반쯤 깨져 연탄으로써의 기능을 오롯이 할 수 없기에 다시금 연탄차에 실려가는 그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젊은 해직교사이자 시인은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연탄이 등장하는 것은 자신을 태워 인간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난 후에도 눈 오는 날이면 누군가에게 갈기갈기 밝혀 가루가 되어서 조차 미끄러운 길에 뿌려져 인간을 위하기에 그런 그의 눈에 더욱 띄었을 것이다.


해직이라는 청천벽력의 상황에서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을 경험하며 비관의 삶이 아닌 조금 더 높아지는 성장을 경험했던 시인 안도현 님의 연탄 3부작을 다시금 읽어보며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소망해 보며 포스팅을 마친다.

시인 안도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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