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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l 11. 2022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시인은 1966년 충청남도 논산 출신으로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89년 응모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인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여 그 후 꾸준한 작품 활동과 함께 조선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계시는 문인이다.


주로 서정시를 쓰셨으나 2018년 출간한 시집 '파일명 서정시' 출간 인터뷰에서 등단 후 20년이 지난 지금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로만 서정시를 계속해서 쓴다는 것에 대한 한계에 도달하였고 시인으로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 대하여 느끼는 바가 많아 요즘은 사회참여적인 시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와 같은 감성 넘치는 서정시는 접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푸른 밤', '상수리나무 아래', '사랑', '산속에서'같은 서정시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환갑이 다 되어가는 시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마냥 소녀감성의 서정시를 쓰는 것도 무리라고 여겨지고 그간 쓰신 서정시도 다 소화하지 못한 내 사정을 고려하면 놀부 심보를 부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 소개할 시는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로 2001년에 발간한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 수록돼 있는 시를 쓰신 시기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의 서사로 지어진 전형적인 서정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말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분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中 2001년작


시는 2001년 발표한 것으로 시인의 나이가 30대 중반에 있을 때이다.

시의 전체적인 느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작가는 원숙미(圓熟美)를 추구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가족의 사랑을 넘어 또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작가는 이제는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 안에 모든 만물의 순리인 피어나 저물어감을 받아들이는 있는 순간을 떨어지는 복숭아나무 꽃잎을 보며 느끼고 있다.


복숭아나무가 지칭하는 것은 화려한 삶을 살았기에 그 누구에게도 인간적이 못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느끼게 하는 소위 말하는 정이 안 가는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 시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람마저 앉지 못할 그늘'이라는 대목에서이다.

도가(道家) 사상가 장자(莊子) 첫 장의 제목이 '소요유(逍遙遊)-특별히 하는 일 없이 노닌다-'인데 거기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혜시가 울퉁불퉁 구부러져 쓰임새가 없는 그저 크기만 한 나무를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자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쓸데가 없다고 탓하는군.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의 텅 빈 들판에 심어놓고, 그 곁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저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 누워 뒹굴뒹굴하거나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도끼날에 찍혀 일찍 베어지는 일도 없고, 아무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을 텐데, 쓸모없음이 무슨 근심거리나 되겠나?"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 사는 사회(社會)라는 곳에서 장자가 말하는 최소한의 쓸모인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그늘조차 주지 못하는 복숭아나무는 너무 맑아 물고기가 노닐지 못하는 연못과 같은 너무 완벽하기에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불허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그 화려함으로 인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다가가기조차 꺼리는 '풍요 속 빈곤'에 허덕이는 외로운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작가는 이제 그런 사람조차 그 삶의 외로움과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평등 앞에서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흩어진 꽃잎들이 어디 먼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한 복숭아나무 그늘.

복숭아꽃이 지고 탐스러운 복숭아가 열리기 전까지의 복숭아나무는 어느 나무와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삶의 끝에 다다른 이들의 모습은 잘났건 못났건, 돈이 많던 없던, 지위가 높던 낮던, 명예가 있던 없건 간에 그저 노인(老人)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숨이 멎는 순간 무엇으로 치장을 했든 간에 죽은 사람이라는 물리적 모습은 누구 이건 간에 거의 같은 모습일 뿐이다.


복숭아 꽃잎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외로움을 이해하는 모습을 넘어 꽃이 진 심심한 나무의 모습에서 삶의 황혼을 보는 지혜를 느끼고 자신과 독자에게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시(詩)를 정리하자면 가족의 사랑으로 자라 남녀 간의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며 받고 느끼고 주는 사랑을 넘어 그 누구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감성의 시가 바로 나희덕 작가의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이다. 다시금 시를 감상하며 태어나 저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공통의 숙명을 생각하며 사랑의 미소로 누구에게든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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