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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l 14. 2022

문정희- 율포의 기억

문정희 시인하면 왠지 모르게 도회적인 이미지가 있다.

1947년 5월생의 이제 일흔하고도 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전라남도 보성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시인이 1980년대 강남 개발이 박차를 가하던 때부터 강남에 거주하며 멋들어진 헤어스타일과 화장. 의상이 어우러진 것들이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 이런 시인의 삶과 이미지에 맞게 2022년 4월 삼성동 경기고 부근에 '문정희 시인 길'이 조성되어 그녀의 작품 8편이 전시되고 있다.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문인으로 시집 출판이나 신문 기고 등을 통해 늘 우리 곁에서 소통하고 있는 작가이다. 오늘은 이런 문정희 작가의 2004년 작인 '율포의 기억'을 감상해 보자.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의 도회적 이미지와는 안 어울리는(?) 시(詩)로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 율포 갯벌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지은 시이다.


율포의 기억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 밭 때문이었다

뻘 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 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 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2004年


시를 읽고 있자니 갯벌이라는 자연과 그 속에서 해루질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느껴보며 무언가 경건한 마음이 들고 조금 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또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의무감이 생겨남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사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이 현대의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환영(?) 받는 일은 못되나 그래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의 그 억척스러움을 되뇌어 보면 그 엉킨 갯벌에서 무릎 꿇고 허리 숙여가며 무언가를 힘들게 뽑아내어 질퍽거리는 뻘에서 나와 가족을 위한 귀갓길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레 숙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라면 우리의 상징체계 안에서 푸른 바다는 생명이요, 희망이지만 문정희 시인은 푸른빛의 파다는 그저 무위한 자연의 현상일 뿐이고 시커먼 뻘안의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 그것을 매개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수한 이야기들의 비빔을 진정한 생명의 역동성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푸른빛 바다는 그저 지구의 구성요소일 뿐이며 그 물이 물러난 시커먼 뻘이 무수한 생명이 요동치는 삶의 현장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푸른빛의 희망적 상징과 검은빛의 절망적 상징을 완전히 바꾸어 시를 읽는 화자로 하여금 기존의 상식을 깨가며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문정희 시인이 오랜 시간 우리들에게 사랑받는 힘이 아닐까 한다.

시인 문정희 님

개인적으로 가족과 함께 서해의 갯벌로 여행을 갔을 때 특히,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닌 어린 자녀가 있다면 휴대폰을 꺼내 이 시를 한 번 쭉 낭독하고 자연 안에 생명의 의미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참된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해 본다면 아마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단순히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인근에 '문정희 시인 길'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며 시인의 멋들어진 모습만 생각한다면 의외의 시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경기고등학교 주변이라고 하면 인근에 봉선사도 있고 해서 강남 한복판에서 그나마 녹색 산책길이 제일 큰 지역이며 차분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되기에 이 시를 그런 이미지(휴식과 사색) 안에서 이해하고 접한다면 문정희 시인의 작품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보며 몇 번을 읽어도 아름다운 시 '율포의 기억'에 관한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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