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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Sep 24. 2022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배고픈 영혼의 허기를 달래줄 시(詩)

이제 칠순의 나이를 넘긴 시인 정호승.

1950년 01월 03일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시인은 2020년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그는 책의 출판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혼의 배고픔은 어떤 양식을 섭취해야 한다. 시(詩)가 바로 그 영혼의 양식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詩)도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

책 제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도 담담한 어투로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이해를 통해 외로움을 긍정하는 것을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그 얼마나 마음 따뜻한 말인가? 영혼의 허기짐으로 인하여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외로움 즉, 삶의 실존적 한계를 깨닫고 이해함으로써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며 삶을 긍정하는 그 용기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또 그 힘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오늘은 이렇게 영혼의 허기짐을 달래주기 위해 고운 마음의 양식을 만들어 주시는 정호승 시인의 1978년작 '슬픔이 기쁨에게'를 감상해 보고자 한다.

1978년과 2020년이면 42년의 엄청난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그의 한결같은 마음이 물씬 느껴지기에 집중해서 감상해 보도록 하자.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中 창작과비평사 1978년



시인 정호승

우리 인간들이 외로운 것은 아마도 이기적인 기쁨에 취해 타인의 슬픔에 대하여 너무나 둔감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

추운 겨울밤 거리에서 귤을 파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며 기뻐하는 우리에게, 얼어 죽은 이에게 섬뜩할 정도로 무관심한 우리에게, 이제는 세상의 슬픔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권하는 서정시.

이 시를 읽고 주위를 둘러보며 타인의 슬픔에 대하여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보고자 단 한 사람이라도 노력을 한다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 슬픔을 감쌀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영혼이 허기짐을 채울 수 있는 양식이라 생각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슬픔의 힘으로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고 미약하나마 그 누구에게든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정호승 시인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정으로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는 시(詩)가 이'슬픔이 기쁨에게'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초장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1978년작 '슬픔이 기쁨에게'를 감상해 보았다.

다시금 읽어보며 이기적인 나의 기쁨보다 타인의 슬픔에 귀 기울여볼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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