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작가가 23세 무렵인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된 이후 이 작품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소위 '기념비적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윤희중'이라는 서른세 살의 남자가 무진시라는 곳으로 2박 3일의 짧은 여행 동안 겪는 이야기가 다인 이 단편소설은 왜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기실 대단하다는 선입견(?)에 잡혀 읽어보면 모 엄청난 것들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 '무진기행'이 왜 그렇게 유명하며 발표된 지 60년이 다 되어감에도 이 작품을 읽지 않고는 한국문학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는지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라는 무진기행의 첫 구절과 묘하게 어울리는 사진이다. (출처:Pixabay.com)
우선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윤희중은 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경리로 일하던 중 회사가 다른 제약회사와 합병이 되어 직장을 잃게 된다. 그때 제약회사의 오너 회장의 과부 딸과 결혼하면서 일약 회사의 중역이 된다.
이제 그는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제약회사의 전무이사직에 오를 안건이 상정된 이사회를 앞두고 있다. 그 일로 신경이 곤두선 윤희중을 위해 아내가 일주일 정도 그가 서울로 올라오기 전 지내던 '무진시'로 가서 재충전할 것을 권하자 기차로 광주로 내려와서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무진으로 향한다. 무진은 안개 무(霧)에 나루 진(津) 자를 쓰는 곳으로 안개 낀 조그만 항(港)이란 뜻으로 인구는 당시로는 꽤 많은 오에서 육만에 이르나 농업이 발전한 곳도 그렇다고 무역항도 아니고 만선의 배들이 드나드는 포구도 아닌 곳으로 제대로 된 특산품 하나 없는 그럭저럭 먹고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였다.
주인공 윤희중은 대학을 다닐 때 6.25전쟁이 일어나는데 남과 북 모두의 군대에 징집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다락에 숨어 지내기도 했으며 병에 걸려 일 년여 동안 바닷가 집에 세를 들어 건강을 회복하는 등 그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곳이 바로 무진시이다.
그날 이모의 집에 여장을 풀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뵙고 오자 자신의 중학교 후배 박이 찾아와 저녁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무진 세무서장으로 근무하는 윤희중의 고등학교 동창 조의 관사에 놀러 갈 것을 제의받는다. 그 시절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자신에 비하여 키도 작고 까무잡잡했던 조는 윤희중에 대한 열등감에 자신의 권력을 뽐내듯 자랑한다. 그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울에서의 자신의 모습도 떠오르는 등 만감이 교차한다.
한편 저녁 자리에서 조와 박 그리고 세무서 직원과 박과 함께 근무하는 음악선생 하 선생도 자리하는 데 성악을 전공한 하 선생은 자리에 맞혀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출세한 세무서장 조가 자신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무리와 어울린다.
하 선생과 집으로 함께 가던 중 하 선생은 윤희중에서 자신을 서울로 이끌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다음날 만나기를 약속한다.
하 선생을 만나기 전 마을 어귀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마을 술집 잡부의 시체를 목격하곤 또다시 진한 연민에 빠진다. 오후에 하 선생을 만나 자신이 병으로 인해 요양하던 바닷가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사랑이라 하기엔 그 언어의 기의와 맞지 않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하 선생을 서울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다음날 아침 서울에서 예상보다 이른 귀가 전보를 받고 서울 갈 준비를 하면서 하 선생에 대한 사랑 확인과 서울로의 귀경을 약조하는 편지를 쓰지만 이내 찢어버리고 서울로 향해 자리를 박차며 일어서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정말 앞서 말한 대로 지금에 와서 보면 별다른 감흥도 특별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이 이야기가 과연 그렇게 문학사적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64년이라는 점과 또 1964년의 소설의 내용이 지금에 와서는 별 특별할 것이 없었겠지만 반대로 당시로서는 특별했을 것이라는 역발상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문학사적으로 보면 192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문학은 식민지 시절 일본 유학길에 오른 지식인들이 서구의 모더니즘의 영향하에 놓이면서 1930년대는 주류 문학으로 자리 잡는다.
서구에서는 이성주의적인 모더니즘에 반하여 과거로의 회귀를 기치로 하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등 모더니즘 계열 아니면 이에 대한 반(反)의 문학만이 있었던 만큼 우리 문학계는 조선의 고유한 정서에 기반을 둔 문학사조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1937년 일본제국이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물적. 인적 수탈뿐만 아니라 일본어 이외의 출판까지 막아 우리 문학은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해방 후 우리는 좌. 우의 극렬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마침내 터진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황폐화되고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외의 것들은 반공이요 반동이라는 논리로 문학조차도 이념 대립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전후 대표적인 소설 작품인 최인훈의 '광장'을 살펴보자.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철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는 정치나 더 나아가 이념의 대립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에도 아버지가 북조선의 고위 관료라는 이유로 시대의 거센 조류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사랑도 이념도 이상도 없는 처지가 되어 제3국 송환배에서 자살하는 비련의 주인공이다. 시대의 지식인으로 역사적 파고 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그리는 것 그것이 당시 문학의 사명이었다. 한마디로 그 엄청난 비극의 회오리 속에 희생된 수많은 이들을 위한 엄숙한 레퀴엠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무진기행'의 주인공은 같은 6.25전쟁을 어머니의 익명성에 기대에 당시 '광장'의 이명준과 같은 서울의 대학에 재학 중인 지식인이었음에도 철저히 자신을 숨기며 시대의 파고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역사에 흐름에 휘말리는 주인공이 아닌 자신의 익명성에 기대여 욕망과 무위(無爲)의 허무주의적 관점에서 방황하는 인물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거창한 주제의 소설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군가가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도래되었음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통해 바야흐로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설과도 같은 김승옥 작가의 젊은 시절
그렇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통해 우리는 현대 소설의 주제인 인간의 개인적 삶의 문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나브로 자리 잡기 시작했던 모더니즘 문학이 이념의 대립으로 인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해야만 했던 우리 문학이 이제 다시금 인간 실존(實存)의 문제로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주인공 윤희중은 이데올로기나 정치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전쟁 중에 어머니의 집에 숨어있을 때도 수음(手淫)을 하며 시간을 보낼 정도로 타인의 처절한 삶에 대하여 모두 무위(無僞)로 직결 처분 내린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의 주인공이 얼마나 앞서가냐면 무려 1964년의 윤희중은 1968년 제정되는 국민교육헌장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나 1972년 문교부에서 만든 국기에 대한 경례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따위는 아예 머릿속에 없고 사랑했던 '희'를 버리고 돈 많은 제약회사 오너의 과부 딸과 결혼하며 출세를 선택하는 속물이다.
그런 주인공 윤희중은 잠깐의 휴양차 내려온 무진에서 하 선생과의 관계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요즘 말로 하면 원 나이트를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지극히 속물주의적인 인물이다.
이쯤 되면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장 폴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다루어진 실존의 불안의 문제가 떠오른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그 어떤 것의 중흥이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하는 그렇게 규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우연의 산물로 이 땅에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다. 인간은 그 어떤 규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실존적으로 존재하여 얻은 자유는 인간 사회에서 행 할 때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사회에 기투된 모든 행위는 책임이 따르기에 인간의 실존은 불안을 야기한다고 한다.
여기서 윤희중의 고민이 시작된다.
생계를 위한 관계, 사회적 계약에 의한 관계, 그리고 욕망을 위한 깊은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그 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누가 죽던, 살던, 결혼을 하던, 출세를 하던 나의 입장에서 보면 타인의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인 것이다.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관계는 무위가 되지만 그 선(線)을 넘으면 그 어떤 의미가 되어 책임을 묻는다는 걸 윤희중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애인 '희'와의 관계도 무위로 돌려 과거 속의 일로 현재의 자신과는 절연시켜 버리고 끓어오르는 욕망으로 원하던 '하 선생'에게도 편지를 찢으며 책임이 따를 뻔했던 관계를 무위의 관계로 변환시켜 다시금 먼 기억 속으로 폐기 시켜 버리고는 욕망이 보장되는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평에 많이 나오는 현대인의 방황을 그린 것이 이 '무진기행'이라고 한다면 앞서 이야기한 이 실존의 불안을 잊기 위한 절연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관계의 단순함을 추구하며 욕망을 위해 달리는 전차 그것이 우리 현대인 일 것이고 그것을 기표하자면 방황이라는 기호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탈 이데올로기, 탈 이성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한국문학의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호탄을 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용의 파격이나 형식의 파괴가 아닌 인간 개개의 문제에 밀도 깊게 성찰할 수 있는 문학의 선구자가 바로 김승옥 선생이오 그 작품이 '무진기행'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30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이므로 20분 정도만 투자하면 어렵지 않은 내용과 언어로 된 소설을 즐기며 현대 한국소설의 화려한 등장을 즐겨보는 것도 대단한 유희라 여기며 앞서 이야기했던 두 가지 부분(발표된 시기가 1964년이라는 점과 또 1964년의 소설의 내용이 지금에 와서는 별 특별할 것이 없었겠지만 반대로 당시로서는 특별했을 것이라는 역발상)에 대한 비교적 긴 글을 마치며 '무진기행'의 의의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