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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an 06. 2023

그후의 삶(After Lives)-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1년 노벨문학상 수장 작가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2021년 발표된 신작 소설 '그후의 삶'.

영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이지만 거의 영국과는 관련이 없는 소설이기에 사전 지식이 없이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겐 인터넷이라는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와이파이가 되는 노트북과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후의 삶'이라는 소설을 이해할 수 있기에 오히려 호기심 어린 기대감마저 든다.

우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자.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左)와 그의 동향 2년 선배 프레디 머큐리(右) 잔지바르 섬의 인종 다양성을 상징하는 듯 확연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위키백과에 나온 자료를 소개하면 그는 1948년 12월 20일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잔지바르 출신의 유명인이 또 한 명 있으니 그가 바로 록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다.

프레디 머큐리가 1946년 9월 5일생이니깐 그가 살아있을 시절에는 재영(在英) 잔지바르 출신 2년 후배가 되는 것이다.

잔지바르 출신 영국인 중 전 세계적으로 출세를 한 인물이 2명이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그가 영국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61년 아프리카 대륙에 있던 탕가니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곧이어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그의 조국이 독립을 하는데 1964년 1월 탕가니아의 흑인이 잔지바르 술탄국이라는 이슬람 국가를 뒤엎으며 복속하여 탄자니아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아버지가 아랍계였던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그들의 탄압을 피해 1968년 영국으로 망명을 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프레디 머큐리는 아랍계라기보다는 인도의 아리아 계통 즉 이란인데 시아파 이슬람이 아닌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란인 출신으로 본다고 한다. 꽤 오래전 현재의 페르시아 지역에서 인도 북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던 이들로 여겨진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잔지바르는 지금의 마다가스카르 바로 위에 위치한 곳으로 아프리카 흑인과 인도인, 아랍인 그리고 중국인까지 오래전부터 해상무역의 통로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상존하는 곳이었던 같다.


다시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는 당시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망명 신청자 같은 단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때 영국에 왔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테러 국가에서 투쟁하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런던대학교에서 학사 자격을 그리고 1982년 켄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강의와 글쓰기를 하다 마침내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중북부의 지도(출처: pixabay.com) 마다가스카르 서북쪽 탄자니아 옆에 작게 잔지바르섬이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자.

책은 19세기 후반 후발 자본주의국가인 독일의 동아프리카 식민지인 현재의 탄자니아 해안가 마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1차 대전을 거지며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60년대 독일에서 마무리된다.

이 시기에는 세계 그 어느 것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시절로 우리나라도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미.소군정- 6.25전쟁을 거쳐 민주화운동과 군사독재까지 겪었던 시기이다.

이런 우리의 역사조차 알기 힘든 마당에 솔직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탄자니아의 이야기를 접한 다는 건 무척이나 낯선 경험이었다.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후반 탄자니아. 칼리파라는 인도 출신의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인도인 아버지와 동향인 형제가 운영하는 은행에서 사환으로 일을 한다.

하지만 은행이 다른 도시로 옮기게 되고 마침 그 은행을 거래하던 상인 아무르 비아샤라의 제의를 받고 그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그와 함께하다 그의 조카와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한편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남매인 오빠 일리아스와 여동생 아피야는 함께 산 것이 불과 1년 여일 정도로 힘겹게 살아간다. 오빠인 일리아스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방황하던 중 아프리카인 출신들의 독일 용병부대인 슈츠트루페에 반납치 되어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독일인 농장에 맡겨지는데 의외의 친절로 독일인들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고 마침 칼리파가 살던 곳의 다른 독일인이 운영하는 농장에 취업을 추천받아 오게 된다. 그곳에서 칼리파와 친분을 쌓고 부모가 모두 죽고 마을에 창고관리인 집에 맡겨져 노비처럼 살아가던 여동생 아피야를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된다.


행복한 시절은 오래되지 못하고 영국과 독일의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평소 독일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오빠는 다시금 여동생 아피야를 창고관리인의 집에 맡기고 슈츠트루페의 용병을 칭하는 아스카리가 된다. 옛집으로 보내진 아피야는 그곳에서 다시금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하게 되는데 다행히 그녀의 오빠가 가르쳐준 글로 인해 이웃 마을 칼리파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게 되고 칼리파와 그의 아내를 아빠. 엄마처럼 따르며 커나간다.


동시대 노예였던 곳을 탈출하여 아스카리가 된 함자.

그의 삶도 힘든 시절만큼이나 고된 삶이다.

독일군 장교의 애완동물인 양 지나친 관심 속에 부대 내에서 온갖 수모와 따돌림을 당하다, 전쟁 말기 독일군 하사관의 분노의 칼질에 큰 부상을 입고 독일인 목사가 운영하는 선교지에 맡겨진다.

장교로부터 독일어와 글을 배웠던 그는 목사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목사 부부가 본국으로 돌아갈 즈음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로 돌아오는데 그곳이 칼리파 부부와 아피야가 살던 곳이었다.


이미 죽은 아무르 비아샤라를 대신해 그의 아들인 나소르 비아샤라가 운영 중인 목공소에 취직을 하게 된 그는 칼리파 부부의 집에 머무르며 아피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내 결혼하여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의 아들 이름은 다름 아닌 아피야가 그리워 잊지 못하는 오빠 일리아스로 짓게 된다.

그의 아들은 유년기 총명한 두뇌를 소유한 잘생긴 소년이었으나 우리말로 하면 귀신이 들어 환청에 시달리게 되자 주술사를 불러 퇴마를 하나 일리아스를 그리는 여자의 혼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함자는 독일인 목사 부인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일리아스가 독일 함부르크에 살았었다는 독일 내 행정관청의 기록을 전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총명했던 함자와 아피야의 아들은 라디오방송국의 PD가 되어 당시 서독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결국 그의 외삼촌 일리아스의 삶을 알게 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외삼촌 일리아스는 전쟁이 끝난 후 선원이 되어 독일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정착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싸구려 클럽의 가수가 되어 독일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1차 대전 후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 나치가 정권을 잡고 되고 외삼촌 일리아스는 과거 독일의 식민지를 다시금 독일의 국토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에 가담하는 등 정치적 활동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1935년 독일인과 비아리아인의 성적(性的) 접촉을 금지하는 법령이 선포되고 1938년 이를 어겨 1942년 작센하우젠의 수용소에서 자발적으로 아버지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던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가 독일인과 결혼한 것은 1933년이었으므로 그는 1938년 독일인 여성과 불륜으로 구속되어 처형되었던 것이다.

400페이지가 넘고 엄청난 역사적 파고 속에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결말은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운 잔지바르의 해안가(출처:pixabay.com)

하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기에 책의 제목 그 후의 삶이 영어 원제인 'After Lives'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하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우선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선정 사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식민주의의 영향과 문화와 대륙 사이의 걸프 지역에서 난민들의 운명을 타협하지 않고 동정적으로 침투한 공로


스웨덴 한림원 2021년 압둘라자크 구르나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



그렇다면 그의 세계문학에 대한 기여는 과거 아프리카 땅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주의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인도양 연안의 국가들에서 소위 말해서 비주류의 고통받는 주민들에 대하여 그 어떤 문화적 사대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의 비극적 운명에 대하여 우리에게 역사적 사실을 잘 보존하고 전달한 공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상식으론 아프리카 동쪽 연안의 섬들은 그저 아프리카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여겨왔지만 마다가스카르를 포함하여 이 지역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인도. 아랍. 이란. 중국. 동남아시아 등 그 지정학적 위치상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종교. 정치. 인종. 문화 등의 차이로 인한 소수들의 차별적 삶이 존재함에 대하여 그들의 위치에서 나온 문학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사실 '그후의 삶'의 의미에 대하여는 딱히 이거 싶은 것은 없다.

일리아스의 독일에서의 삶을 '그후의 삶'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함자와 아피야의 이야기로 되어 무언가 극적인 면이 떨어지고 제국주의 서구 열강이 무너뜨린 그들의 삶이라고 하기엔 이미 대항해시대 너무나도 많은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서인도로 라틴아메리카로 마지막엔 미국의 대농장으로 노예로 팔려갔기에 역사적 시련에 의한 '그후의 삶'이라고 하기에도 소설의 내용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상처 후에 트라우마의 승화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비교적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개개인의 '그후의 삶'이 유년 시절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신프로이트학파적 사유로 이해하기가 조금 더 나을 듯하다.


확실히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말하기가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저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그 후'란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와 그 트라우마를 어떤 방어기제로 승화했느냐에 따라서 '그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하여 논한 작품이라는 틀과 더욱이 상처받는 역사 안에 갇힌 소외된 자들의 '그후의 삶'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성찰하게 해주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사유처럼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곳의 상처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타협 없이 전해 들을 수 있었던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2021년작 '그후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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