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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Feb 24. 2023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조금 쉽게 읽어보도록 해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고 있자니 단번에 그의 글에 탄복하여 삶의 이정표를 약간이라도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단단하게 다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탄식만이 나올 뿐이었다.

책이 발표된 지 100년이 훌쩍 넘었고 나 역시 그간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지만 유독 그 시절(벨 에포크 말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악의 꽃, 지옥에서 보낸 한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들과 미묘하게 같으면서 다른 결로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고민과 고통을 수반한 묘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읽다 읽다 지쳐 쓰러졌던 저 3권의 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대한 도전욕이 다시금 올라온다)


우선 책이 발표된 시기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시대의 끝 무렵인 1897년도이다.

어지러웠던 프랑스 혁명의 폭풍이 지나가고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특별한 전쟁이 없었던 100여 년간의 시절 철학. 문학. 과학은 이성주의의 열풍을 타고 폭주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정반합의 변증법적 사고가 지배적인 시대사조 안에서 지식인들은 그 이성에 반기를 들며 점차 개인의 감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벨 에포크 말기에 이런류의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시절 마르셀 프루스트, 보들레르, 랭보, 그리고 이 포스팅의 주인공인 앙드레 지드까지 이성주의에 처음으로 반항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후계자들의 작품들을 이해하려 우리는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며 그 어려운 글자들의 조합을 해체에 해체를 했던가.

앙드레 지드

일단 위 글에서 앙드레 지드가 어떤 시대적 흐름에서 살았는지 거시적 삶의 뼈대를 보았다면 그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해야 '지상의 양식'과 민음사판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확장판과도 같은 1935년작 '새로운 양식'도 함께 이해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앙드레 지드는 1869년 파리 법과대학의 교수인 아버지와 루앙의 유복한 사업가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12살 때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외사촌 누이들과 함께 청교도적 가풍에서 종교적으로는 엄격하게 정서적으로 연상의 사촌 누이들을 흠모하며 자라났다.

기본적으로 여성적인 예민한 감수성과 엄격한 종교적 가풍이라는 통제라는 모순적인 환경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부르주아적 취향의 문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 '지상의 양식'을 썼던 20대 초반엔 결핵이라는 질병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 속에 3년 여간 지속했던 지중해 연안(주로 북아프리카)으로의 여행은 그에게 당시 사회적 제약에 대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지폈다.


종합해 보면 그 유명한 '벨 에포크'시대 부유한 부르주아에 문학적 감성이 뛰어난 반항아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앙드레 지드인 것이다.

이쯤이면 '지상의 양식'을 읽을 사전 준비는 얼추 된 것으로 보고 고민과 고통이 뒤섞이며 즐거운 지적 사색을 하게 하는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앙드레 지드가 유년과 젊은 시절을 보낸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사진

책의 제목 '지상의 양식'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살펴보면 어지럽기만 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울 것 같다. 또 그걸 서양적 사고로 억지로 이해하기 보다 우리가 익숙한 개념을 가져와 이해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지상의 양식'이라는 개념과 딱 들어맞는 동양적 텍스트가 있는데 바로 노자(老子) 12장에 나오는 '거피취차(去皮取此)'이다.

'저것을 버리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취한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가지고 지드의 책으로 그 의미를 확장해 본다면 그간 형이상학적(종교, 이데올로기 등) 가치를 위해 한 번뿐인 삶을 버려야 했던 우리에게 바로 이 지상에서 마음껏 먹을 수 또는 누릴 수 있는 것을 즐기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 바로 '지상의 양식'인 것이다.

이쯤 되면 19세기 중반 형이상학적 망상인 신(神)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아모르파티(지금 너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를 외치던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를 떠올리며 모야 니체의 영향으로 쓰인 책인가 싶겠지만 고증된 자료에 의하며 책을 썼던 시기 앙드레 지드가 니체의 책을 보았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한다. 다만 그러한 시대적 조류와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이 지상의 삶의 양식을 마음껏 욕망하고 누리라는 의미로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책은 아주 인상적인 텍스트로 시작한다.


나타나엘이여, 도처(到處)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신(神)을 찾기를 바라지 말라.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中


이 말은 불가지론적 신은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니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인식 가능한 형이상학적 사고 안에서만 신이 존재하지 그 밖은 알 수도 알려 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관념 지상주의적인 삶의 허무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그 마지막 부분인 헌사에서도 앞서 말한 책의 집필 의도에 맞게 이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마무리한다.


이제 나의 책을 던져버려라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中


알 수 없는 사후의 신의 세계에 가려 소중한 '지상의 양식'을 저버리지 말라. 하지만 인간의 삶은 욕망을 자연스레 욕망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대로 독창적으로 살아내야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자신의 도그마조차 창조적 욕망에 해가 되므로 이제 이 책은 던져버리고 찬란한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며 마무리한다.

요즘 말로 쿨내 풍기는 클라스가 오진다.


무언가 다른 포스팅처럼 책의 시적인 표현들을 써가며 봐라 이 얼마나 멋진 문구인가라는 말들로 포스팅을 채우기엔 일종의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이 어려운 책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 단 한 분이라도 이 포스팅을 보실 때 그래도 책을 이해하기 위한 조금의 길라잡이가 돼야지 이문구 멋지지 않은가?라고 적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 두 개의 핵심 키워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상의 양식'을 읽는다면 그 난해한 텍스트들이 조금은 쉽게 다가올 것이라고 여겨진다.

책을 읽기 전에 또는 읽다가 대체 이게 모지 싶을 땐 제목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현생에서 금욕이라는 허튼짓하지 말고 지상의 양식을 마음껏 먹고 누리라는 그 핵심만 알고 들어간다면 다시금 멋진 문구를 찾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벨 에포크 시대 한 젊은 부르주아 문인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나서 건강을 되찾고 여행을 하며 느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지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 당시까지의 강요된 인간의 삶과 앙드레 지드가 주장하는 그 이후의 삶 그것은 노자의 말대로 저기 먼 곳의 무엇을 위하기보단 당장의 이곳이 있는 것을 취하라는 말(거피취차)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노자(老子)

또한 책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책의 핵심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욕망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굳이 욕망하면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데 이보다는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운행 원리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이 역시 노자의 도(道) 개념을 가지고 와서 도(道)가 노자 1장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며 우리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우주의 운행원리라 하였듯 우리 생명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것들을 욕망이라는 기존의 주입된 기표보다는 좀 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모든 먹고 마시고 번식하고 이루고자 하는 우리에게 내재된 본능 같은 것으로 우리가 당시까지 이것을 강제적으로 제어하며 금욕적으로 살아 과거를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졌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좀 더 책이 가까운 개념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의 내용 중 노자의 텍스트로 이해하기 수월한 부분이 많은데 직설적인 서양적 표현으로 보면 본능에 충실하라 정도로 다가올 내용들에 좀 더 심오한 철학적 감성을 넣어 이해하고자 한다면 여러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반감이나 심지어는 혐오의 감정까지도 희석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책이 난해하고 한편으론 거부감까지 느끼게 되는 건 철학으로 다가가야 했을 분야를 문학의 감수성으로 접근한 것이 이런 화근을 부르지 않았나 싶고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편적인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앙드레 지드가 노벨문학상이라는 최고의 권위를 쥐고 있으나 사촌 누이와의 결혼과 동성애 등의 터부시했던 것들에 대한 행적의 영향으로 책이 도덕적 대안 없이 개인의 자유만을 추구하고 찬양하기에 논란이 없을 수가 없는데 이것 또한 비판적 독서라는 긍정적 사유로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으로 한시대 한 사람의 위대한 문학적 성과를 즐길 수 있는 일이기에 그 길을 가는 것 또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책을 내고 1,650부의 초판이 판매되기까지 꼬박 18년이 걸린 정도로 당시에도 열광은 둘째치고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질 지도 의문이었고 그 후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로 살아남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논란이 있었던 책 '지상의 양식' 어찌 되었건 오래간만에 머리 한 번 된통 아픈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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