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자 톨스토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러시아 문학을 넘어 문학 전체 이야기를 해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문학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말이다.
이토록 그는 인류 최고의 문학가이며 지성가이다.
당대 교류했던 사람들 또한 최고의 지성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으로서 타고난 욕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 그 욕망과 지성 사이의 현실적 괴리감에 괴로워해야 했던 약하디 약한 인간이었다.
그는 절제할 수 없었던 도박과 외도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것이 옳지 못하는다는 윤리의식의 트라이앵글 사이에서 늘 괴로워했으며 결국 지천명이 넘어서는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개인적 욕망의 극복은 사실 나이가 들면서 노화라는 자연적 이유로 인해 극복되었다고 치더라도 그가 죽기 전까지 매달렸던 인류 전체의 비극적 현실 극복이라는 목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공허한 유토피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삶은 행복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이루어진 성공에 권태를 느끼며 새로운 자극을 위해 쾌락적 행위에 몰두와 후회를 반복하다. 말년에 이르러 인류 전체의 행복을 사랑의 복음으로 전하고자 다시금 집필활동에 매진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톨스토이였기에 아직도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파멸하는 우리 현대 인간사에 그의 작품의 울림이 깊게 자리한지도 모르겠다.(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많은 현대철학자들의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가장 긴요한 답을 준 문학가가 바로 레프 톨스토이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감상해 보자.
톨스토이의 소설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등의 그의 창작 초기의 장편소설을 내놓아 문단의 엄청난 평가를 받던 때를 지나 러시아 정교회 등 사회비판 운동을 했던 시간 속에서 회심(回心)이라고 하는 주로 농민계층 등 열악한 사회계층을 위한 쉽고 우화적인 단편소설에 창작을 했던 시기 그리고 만년의 역작이라고 하는 장편소설 '부활'을 집필했던 시기까지 굳이 나누고자 한다면 세시기의 작품 활동 기간이 있었다.
특히, 회심의 시기 자신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작품을 부정하며 진정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창작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역시 이 시기에 쓴 단편소설로 쉽고 동화적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수 있도록 기획한 작품이다.
그럼 간단하게 줄거리를 살펴보자.
러시아의 무산 노동자(구두공) 계층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세묜은 겨울을 앞두고 아내가 가지고 있던 돈 3루블에 외상값 5루블을 받아 가죽 외투를 만들 피혁을 사러 외출하였다.
하지만 피혁은 고사하고 고작 20꼬베이까의 외상금만을 받고 돌아오다 허탈한 마음에 술 한잔하고 추운 러시아 겨울 칼바람을 헤집고 집으로 가던 중 작은 예배당에 벌거벗은 채 쓰러져 있는 젊은 청년을 발견한다.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냥 돌아갈까 하다 세묜은 입고 있던 외투를 입히고 장화를 신겨 집으로 데려온다. 생활고에 억척만 늘게 된 세묜의 아내 마뜨료나는 잔소리를 잔득하지만 청년의 안타까운 모습에 이내 자신의 가족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소중한 식량을 내어주며 잠자리까지 봐준다.
청년의 이름은 미하일라로 말수가 없는 성격에서 인지 그저 미소만을 띠며 자신의 처지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하여는 말을 삼간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세묜의 조수로 청출어람의 실력이 되어 마을에서 꽤나 인정받는 구두공이 된 미하일라는 어느 날 이웃 마을 부자의 장화를 만들어 줄 것을 의뢰받는다.
가죽 값만 30루블이나 되는 꽤나 큰 주문이었지만 일 년을 신어도 구두가 뒤틀림이 없어야 된다는 조건으로 수고비로 10루블을 준다는 것이었다. 세묜은 미하일라에게 이 의뢰를 최종 수뢰하냐고 물었고 미하일라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하자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미하일라는 장화가 아닌 단목 구두를 만들었으니 세묜은 큰돈을 물어주게 생기었다고 한탄을 한다. 그 즈음 어제 부자를 모시고 왔던 마부하인이 장화는 필요 없으며 목이 없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어제 그 부자가 집에 오던 중 마차에서 쓰러져 죽어 더 이상 장화는 필요 없고 장례식 입관 때 신을 단목 구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세묜은 놀라 이미 만들어져 있던 구두를 주게 된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5년이 지나 미하일라가 세묜의 가족들과 구두공으로 산지 어언 6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이다.
쌍둥이로 보이는 자매를 꾀나 부유해 보이는 부인이 데리고 와서 신발을 주문하는 날이었다.
이때 두 자매를 보는 미하일라는 그가 이곳에 와서 짓는 세 번째 미소를 보이며 치수를 잰다. 세묜은 딸들이 아주 예쁜데 그중 하나가 다리를 절자 안타까워하며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된 게 거냐고 묻자 자신은 아이들의 친모가 아니며 이 아이들은 예전에 마당을 맞대고 살던 이웃 부부의 아이들이라고 한다.
벌목공이었던 아이들의 아버지가 벌목 중 사고로 죽고 유복자로 태어난 이들이 그로부터 이틀 후 엄마가 쓰러져 죽게 되었는데 그때 아이 중 하나가 엄마의 몸에 다리가 깔려 발목이 돌아가 저렇게 된 것이라고 하며 그때 자신도 아들 하나를 낳아 젖을 먹이던 중 두 아이를 임시로 살펴 주기로 하고 젖을 물려 키웠는데 친아들은 두 살에 죽고 이제 이 아이들을 가슴으로 키워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으로 키우던 중 장사도 잘 되어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렇게 그녀는 누구보다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때 미하일라의 몸에서 빛나게 된다. 놀란 세묜은 미하일라에게 절을 하며 이곳에 와서 딱 세 번의 웃음만을 지었고 그때마다 미하일라 몸에서 빛이 났는데 그 자초지종을 알고 싶다고 묻는다.
이에 미하일라는 그간의 진실을 모두 털어놓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자신은 원래 하나님을 모시는 하늘의 천사였다고 한다.
어느 날 좀 전에 두 자매의 어머니의 영혼을 거두어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아이들의 아버지도 없고 자신마저 죽는다면 부모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갓난 사람인데 두 어린 자식은 죽게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간청에 그녀의 영혼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하나님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를 깨닫게 되니라.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리라. 그것을 알게 되거든, 하늘로 올라오너라.'라고 했으며 자신은 산모의 영혼을 거두고 벌거벗은 채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간 지내오면서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는데, 각각을 깨달았을 때 몸에서 빛이 나며 자신의 입에서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는 것이다.
하나는 처음에 세묜과 마뜨료나가 자신이 살기에도 힘든 상황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위해 옷과 식량들을 양보하는 미덕에서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사랑을 알게 되었다'.
둘은 부자가 많은 부를 뽐내며 장화를 맞추러 왔을 때 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는데 이유는 하늘에 있을 때 알았던 악마 천사의 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자신의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은 바로 오늘 사람이 자신의 자식도 아닌 자매를 키우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의 모습으로 사는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제 몸에 빛이 나는 것을 느끼며 이제 하나님에게 죄를 사면 받고 하늘로 다시금 돌아가는구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며 점차 미하일라의 몸은 큰 빛 속으로 사라져가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앞서 말한 대로 무산계급이 사랑이라는 종교적 가치에 연대하여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랐던 톨스토이의 사상을 동화적으로 표현했기에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조금 생각해 보면 심오한 사상이 깃들어져 있다.
우선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사람 안에 누구나 있는 가치라고 말한다. 마치 부처가 모든 중생에 마음에 깃든 불심(佛心)을 깨닫고 연마하여 살아생전 자비를 베풀고 죽어 해탈의 경지의 오를 것을 주장했던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이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가르쳐 준다.
그리고 사람에게 없는 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가 죽음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한 삶을 사는 것 같이 욕망에 휩싸여 살고 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죽음이라는 실존의 한계를 인식하고 포이어바흐의 생각대로 '인간은 인간의 신이다'라는 관념에서 톨스토이의 사랑을 이해해 보면 결국 인간의 심정의 본질을 투명한 것이 신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원하는 최고의 가치이며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바로 신(神)의 현세화를 이루는 일이기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신(神)=사람(人)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답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짧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는 이처럼 깊고 심오한 철학적 가치에 대하여 이해를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왜 위대한 작가였는지 그리고 인류 보편에게 조금 더 나은 삶에 대한 길라잡이로 위대한 철학가들에게 그토록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축복과도 같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추천과 소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