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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Dec 01. 2023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미국의 3대 극작가하면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아서 밀러가 꼽힌다.

유진 오닐은 테네시 윌리엄스나 아서 밀러보다 한세대 앞선 연장자로 이미 193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미국 문학 특히 희곡 분야에서는 선구자적 입지에 있다면 테네시 윌리엄스와 아서 밀러는 그런 토대 위에서 미국의 희곡.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분야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며 현재 미국의 문화가 전 세계 문화를 이끄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말년 작품의 인기가 시들었던 테네시 윌리엄스와 달리 아서 밀러는 2005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대중적 인기 역시 시들지 않았었다.)


특히, 아서 밀러의 삶은 마릴린 먼로의 남편으로서도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1930년대 공산당 가입 이력으로 인해 1950년대 한국전쟁을 계기로 거세진 미국 내 반공주의 이른바 매카시즘의 피해자로 많은 논란과 고초를 겪은 바 있는 지금의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가십과 담론 그리고 문학적 영향력을 함께 몰고 다닌 뉴스메이커 그 자체의 삶을 살았다.(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에 빛나는 영국 출신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즈가 사위인 것은 관심조차 가지 않는 평범한 일 같다. 하긴 유진 오닐처럼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위 찰리 채플린이었다면 모를까.)

다분히 미국적 아니 뉴욕커적 사진으로 와닿는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의 사진

오늘은 이런 아서 밀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살펴보자.

줄거리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0년대 중후반 미국의 사정을 알아보아야 이 위대한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1940년대 후반의 미국은 다시금 경제 호황이 찾아온 시기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되는 경제 대공황이 찾아오기 전 1920년대 후반만큼은 아니더라도 2차대전 종전 후 세계경제의 헤게모니가 미국으로 옮겨오면서 경제적 부흥이 다시금 시작한 때로 이때 많은 미국인들은 본격적으로 마이카와 혁신적인 가전제품을 너 나 할 것 없이 할부금융을 이용해 집에 들이던 시기였다. 


물론 1930년대 경제 불황위기와 1945년 종전 후 쑥대밭으로 변한 유럽 지역의 수요미창출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 미국의 기업들도 각종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인력 구조적 측면에서 과거와 같이 연공서열적 관료제를 유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 때로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시대라는 새로운 비인간적 시대의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 시기였다.(그 이후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 인간 사회를 아우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시대 '세일즈맨의 죽음'은 단순한 연극 대본을 넘어 다분히 사회비판적이며 당시 미국인들에게 과연 아메리칸드림의 끝이 무엇인지를 돼 묻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 이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1983년 당시 사회주의의 대표적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의 그 유명한 베이징 인민극장 상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반대급부라면 자급자족 개인들의 집합체 정도라 표현할 수 있겠다) 틀안에서는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사이클 상의 위기 속에서 누구든 경험하게 되는 고통에 대하여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현대 인류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몇 안 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말 그대로 위대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1985년 대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윌리로 열연한 영화'세일즈맨의 죽음'의 포스터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연극 대본으로 큰아들 비프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단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겪게 되는 일이므로 어떤 사건의 전개보다는 주인공 윌리의 현재 처지와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이 겹쳐지며 극단으로 치닫는 극적 장치들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각성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희곡이기에 사실 문학으로 감상하는 것보단 연극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고 한다.(필자는 이 희곡을 읽으며 나름의 연극 장면을 상상하며 읽었다.)


1940년대 후반 뉴욕의 주택가에 살고 있는 윌리.

그는 린다라는 전형적인 주부인 아내와 비프. 해피해서 이미 서른이 넘은 장성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과거 잘나가는 세일즈맨(영업사원)이었던 윌리는 어느덧 환갑이 넘은 나이에 퇴물 취급을 당해 정해진 월급도 없이 판매 실적에 따라 커미션만을 받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그야말로 연명하는 처지이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조현병 증세에도 시달리게 되는데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형 벤 이 나타나는가 하면 느닷없이 시간을 자신이 가장 행복했다고 여기고 있는 큰아들 비프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환영으로 나타나는 당시의 가족.이웃들과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어 자동차 자살시도조차 단순한 사고로 기억하는 등 그 병세가 이미 치유할 단계가 아닌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또한 자식 교육을 잘했다고 자부하지만 과거 1920년대 경제 호황기 그야말로 미국적 프런티어 정신으로 삶을 개척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자녀들에게 공부보다는 운동과 리더십을 강조해 키웠으나 지금의 우리 수능 최저 등급제를 연상시키는 학점 미수로 인해 큰아들 비프는 고등학교 졸업을 유급 당하고 유명 사립대학의 운동부 스카우트 제의에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며 방황하고 그런 아버지와 형의 영향하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작은아들 해피 역시 1940년대 사회가 원한 인물이 되기보단 단편적이고 욕망 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아버지 윌리의 표현에 의하자면 삼류 건달로 살아가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집에 온 비프. 어찌 되었든 간에 운동선수로 성공하여 세상을 휘어잡고 흔들 것 같았던 그 잘난 아들이 텍사스의 어느 농장에서 최저임금수준을 받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세른 네 살이라는 나이에 결혼은 고사하고 어느 한 곳 정착하지 못한 그를 아버지 윌리는 아픈 손가락을 넘어 못마땅한 못난 자식으로 여기는지라 서로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처지가 된지 오래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사장을 만나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인 10,000달러를 빌려 스포츠 용품 유통사업을 동생 해피와 함께 준비하겠다고 하며 저녁엔 근사한 식당에서 세 부자가 외식을 하자고 제안한다.

운명의 다음날 부자는 서로 간에 희망을 품고 각각의 회사 사장을 만나 자신들의 포부를 밝히나 아버지는 완전한 해고, 큰아들은 사장이 기억조차 못 하는 하찮은 사람이었으며 어렸을 적 사소한 도벽을 남자들의 호기로 가르친 아버지의 교육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회사 사장의 금 도금이 된 만년필을 훔쳐 달아나 약속 장소인 식당으로 향하게 된다.

식사 자리도 해피와 비프가 그곳에서 즉석만남으로 알게 된 여성들과의 데이트를 가게 되고 홀로 남게 된 윌리는 갑자기 집 뒷마당에 무언가를 심기를 원해 씨앗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밤늦게 돌아온 두 아들과 대면하게 된 아버지. 그는 이미 자살을 결심한 듯 형 벤의 환영과 지금 죽으면 보험금 20,000달러가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고 다시금 패기 넘치는 두 아들은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혼자만의 대화를 하며 아들들을 맞이한다.

비프는 비프 나름대로 18살 적 기억(고등학교 졸업 유급을 당해 아버지에게 담당교사에게 읍소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당시 출장 중이던 보스턴의 호텔로 찾아갔으나 아버지의 불륜 장면만을 목격한 사건)과 자신이 현재 사회에서 아무 존재감도 없는 좀 도둑에 불과하며 이는 아버지의 그릇된 교육. 인생관 탓을 한다.

한마디로 현실에 대한 자각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극단의 파경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버지 윌리는 평소에 자동차 사고로 기억되었던 자살시도를 비로소 완수하게 되고 그의 장례식은 가족과 친구인 찰리 부자만 참석한 아주 초라한(윌리 자신은 과거 자신의 영화를 생각해 보면 많은 인맥이 있었기에 아주 화려한 장례식이 될 거라고 확신했었다.) 장례식이 되어 막을 내린다.

아서 밀러의 사위이자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즈

작품의 의의에 대해서는 앞선 1940년대 후반 시대상을 소개하면서 중요한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줄거리를 보고 나니 그 대략적 사실이 더욱 크게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신대륙 이민 초기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아메리칸드림은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농업과 목축업 위주였던 초기 미국 사회가 완전한 산업국가로 탈바꿈하고 자본주의 세계의 첨단을 걷는 국가로 바뀌면서 과연 미국인의 꿈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중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윌리뿐만 아니라 아들 비프도 자신의 꿈은 그저 허상일 뿐 현실은 도태된 하급 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들임을 자각했을 때 이미 그들은 돌아갈 수 없는 나락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비단 당시의 미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사회에 대입해도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과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저 직장 하나만 잘 다니며 빚을 내어 서울에 아파트한 채만 장만해 두고 자식들 학원에 보내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에만 보내놓으면 알아서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런 환상은 산산이 조각나고 신자유주의 처절한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99.9%의 우리 모두가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서두에도 이야기한 현대사회 인류 보편적 문제와 감성을 자극함에 작품이 발표된 지 70여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바로 어제 발표한 작품처럼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싶고 그의 통찰력은 과히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현재까지 자본주의 체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체계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의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사실주의적 사회비판 문학으로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고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희곡이므로 특히 젊은 학생층에게 권하며 우리 세계 꿈과 현실에 대해 다시금 각성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을 추천하며 포스팅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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