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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Dec 08. 2023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드워드 올비

제목만 봐서는 언 듯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문학작품이 꽤나 있다.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등이 있고 오늘 소개하고자 할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도 대표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 1. 25.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로 여성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한데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 대표작이다. 사실 이 작품도 자기만의 방에서 무언가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 것 같은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능력 있는 여성작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여성이 작품 창작에 오롯이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상속권과 사회 진출)이 보장되고 자기만의 방이라는 독립된 공간도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의 사회적 기준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스케일이 작은 에세이이다.(여성인권의 선구자였던 영국에서 남성과 동등한 선거 참정권을 법으로 보장한 1928년에 즈음하여 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1970년대 이후 여성인권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에세이로 평가받는다.)


이런 내용을 알고 생각해 보면 '버지니아 울프'의 사상이나 위상 정도는 두려울 것이 못된다는 마초들의 안티 페미니즘 운동을 주장하는 내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정말 그 내용을 가늠하기 힘들다.

또한 안티 페미니즘 문학작품이 고전에 반열에 올라 세계문학고전집에 포함될 일도 만무하기에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1882. 1. 25.~1941. 3. 28.)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여성인권 운동가

우선 이 작품은 연극을 위한 극본인 희곡 작품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으로 1962년 완성하고 1963년부터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으며 1966년엔 영화로도 제작되어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다.

그 줄거리와 의미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도대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이 제목은 디즈니 만화영화 '새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를?'를 패러디 한 것이라고 한다.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Who's Afraid of Big Bad Woolf? 울프라는 동음이의어를 가지고 패러디 한 것으로 희곡의 남자 주인공 조지가 자신과 부인 마사의 현실도피적 상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 언어적으로 표현될 때 부르는 노래로 아기 돼지들이 정말로 두려운 커다란 늑대가 두렵지 않다고 망상에 빠지며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조지가 현실도피적 망상의 세계가 두렵지 않다고 노래 부르지만 실상은 두려워하는 모습에 에드워드 올비는 말 그대로 패러디적으로 결코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싶다.(작품 해설이나 여러 지식사전에 너무 모호하게 설명되어 있어 작품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에드워드 올비(1928. 3. 12.~2016. 9. 16.)

1960년대 초반 산업화 시대의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희곡 작품으로 특별한 줄거리가 있는 내용은 아니다.

대학 총장의 딸 마사와 그 대학의 역사과 교수 조지 부부는 각각 오십 대 초반과 사십 중반의 연상연하 부부이다. 게르만 민족의 할로윈 데이라 할 수 있는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 시기 마사의 아버지 즉, 대학 총장이 주체한 파티가 끝나고 새벽 두시에 이제 막 같은 대학에 생물학과 교수로 임용된 교수 닉과 그의 아내 허니가 술에 취해 초대되어 날이 밝기까지 겪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당시 미국 중상류층의 위선과 망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지와 닉은 대학교수로서 당대 지식인이지만 경제적 여건에서 처가에 의존한 상태로 마음 한구석엔 속물근성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조지와 마사는 불임부부로서 가상의 아들을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조현증적 병리 현상에 시달리고 있고 닉과 허니 역시 상상임신으로 결혼을 하고는 허니의 임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닉 몰래 피임을 하는 등 심각한 정신 병리적 현실에 고통받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실존적 자아에 대한 각성을 통해 좀 더 현실에 밀착된 건강한 삶을 찾을 이유와 노력을 해야 할 처지로 이들이 그렇게 아침을 맞으며 닉 부부와 좋게 헤어지고 조지 부부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목청껏 기분 좋게 부르는 모습에서 나 역시 에드워드 올비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는 점은 공감하는 바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대사와 장면이 다소 거북하기도 하지만 작품이 발표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유효(SNS라는 망상적 세상에 몰입하여 일상이 아닌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여 마침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현실도피 또는 망각적 세태) 하기에 그 문학적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배가 되는 에드워드 올비의 1962년 희곡 작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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