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걸까 여러 생각
아마 남자들은 무신사 사이트에서 옷을 한번도 구매하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한번만 구매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평소에 옷을 구매할 때 무신사를 종종 이용한다.
평소에 옷에 많은 관심이 없어서 브랜드를 잘 모르긴 하지만 기성복과 조금 다른 분위기의 옷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꾸준히 이용을 하고 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별다름 없이 여름 옷을 찾아 무신사 사이트를 접속했는데 뭔가 변했다.
내가 알던 무신사 웹사이트가 아니어서 잠깐 당황했다.
PC로 접속했는데, 모바일 웹페이지가 떠서 당황했다. 주소창을 살펴봐도 PC 웹사이트가 맞다.
데이터를 볼 수 없기에 뭐라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왜 이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는 않는다. 분명 내부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웹 이용자들의 수가 매우 적어서 유지비용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들 말이다.
우선 변경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무신사 사이트 내 공지를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올라와있었다.
PC 웹사이트를 모바일 버전과 동일한 화면으로 변경하는 이유를 '일관된 사용자 경험과 안정적인 서비스 이용환경 제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통 디바이스에 따라 표시되는 페이지의 크기가 변경되는 반응형 웹사이트를 주로 사용하지 않나? 이전에 서비스 기획 공부를 할 때도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위해 PC 웹을 모바일과 똑같이 만든다는 방식은 케이스 스터디에서 듣도보도 못했다. 거의 이정도면 군대식 문제 해결 방식 아닌가.
반응형 웹이 개발 과정에서 여러 디바이스를 고려해야하기도 하고, 그 크기에 따라 이미지나 텍스트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하기에 단순하게 하나의 페이지를 만드는 것보다 조금은 더 코스트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위해 대부분 개발 과정에서 반응형 웹으로 사이트를 구축한다. PC 이용자가 더 적을지라도 말이다.
궁금해서 다른 이커머스 사이트 몇 곳의 첫 페이지를 확인해봤다. 재밌는 점은 무신사의 계열사에서 만든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은 PC버전을 사용했다. 비슷한 리셀 플랫폼인 'KREAM'의 경우, 모바일 UI 기반의 반응형 웹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전문 이커머스인 에이블리와 지그재그의 경우 현재 무신사처럼 모바일 기반의 사이트를 PC버전에도 그대로 운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무신사와 큰 차이점이 있는데,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처음부터 PC 웹사이트를 만들지 않았고 무신사는 있었는데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에이블리나 지그재그의 경우 사이트 상단에 앱 설치를 위한 기능 버튼을 배치에 이용자들에게 모바일 환경의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
애초에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모바일에 올인하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합리적인 방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신사의 경우 PC 웹을 없앤 이유가 '동일한 사용자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게 정말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여러 기사들을 살펴봐도 무신사는 10~30대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커머스이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의 여론을 살펴보아도 부정적인 피드백이 대부분이고 PC로 정보를 보고 모바일로 구매를 한다는 이용자들의 댓글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공지의 내용처럼 모바일에서만 제공되는 서비스들이 뷰티, 플레이어 등 전문관, 스냅, 패션톡 등 커뮤니티, 주요 이벤트 배너 및 개인화 추천 기능인데, 이 서비스들 중 '개인화 추천' 외에는 10~30대 남성 이용자들에게 꼭 제공되야 할 정도로 유용한 서비스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용적인 이유 때문에 무신사가 저런 선택을 했다고 하기엔 무신사의 성장세는 폭풍 성장 중이고, 가볍게 생각하고 했다기엔 체급이 너무 큰 1조 매출의 기업이다. 젊은 세대들의 남성 패션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사이트라고 봐도 될 정도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 재무제표를 찾아봐도 최근 3년 간 CAGR(연 평균 성장율)이 40% 가량 되는 폭풍 성장 중인 이 정도 체급의 기업이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PC 이용자들의 사용자 경험을 부정적으로 만든 건 내부 의사결정의 실수거나 데이터의 오류에서 발생한 문제일 지 모른다.
혹은 무신사가 여성 이용자들의 풀을 늘리기 위해서 에이블리나 지그재그와 같이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주고 싶어서 똑같이 따라했다라고 생각해봐도 이 또한 너무 무식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자사 서비스인 솔드아웃은 왜 무신사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차용해서 PC 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뇌피셜을 굴려보자면 PC 이용자들의 수가 적고 PC 이용자들의 구매 전환율이 모바일에 비해 낮아서, 아니면 모바일 페이지에만 제공되는 기능이 모바일에서도 이용율이 낮은데, PC에선 해당 기능을 접근하기가 어려우니 기능의 이용율을 높이기 위해서인 듯 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들 모두 PC 버전을 없애야만 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 듯 하다.
무신사가 이번에 PC 웹 사이트를 없앤 것을 보면 마치 군대식 문제 해결법을 보는 듯 하다. 선후임 간에 과자를 먹다가 티격태격했다는 이유로 당분간 군대 내 PX(공군은 BX) 사용을 금지한다거나, 상병이 소대장을 야삽으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 전 군의 야삽을 회수하는 등의 해결법 말이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게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서 남들이 보기에 우스워 보이는 꼴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똑같은 콘텐츠도 어떤 디스플레이에서 보여지느냐에 따라 사용자 경험이 달라진다. 굳이 넷플릭스를 태블릿이나 스마트TV로 본다거나, 크로스플랫폼이 가능한 모바일게임을 태블릿이나 PC에서 즐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더군다나 쇼핑 사이트, 무신사 정도 되는 큰 규모의 쇼핑 사이트의 경우 화면에 보여져야 하는 요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모바일과 PC에서의 사용자 경험은 다를 수 밖에 없고 달라야한다. 그런데 디스플레이의 크기가 다른데도 보여지는 정보량이 같으면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대체 어떤 분 머리에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PC 웹페이지가 모바일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표시해주고, 이용자는 그 정보를 이용해 구매까지의 과정을 더 신중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무신사를 이용하는 일부 고객들이 PC에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확인하고 모바일로 결제를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우리가 괜찮은 옷 하나를 구매할 때면 옷의 재질은 어떠하며 어깨 기장과 가슴 둘레, 팔 길이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핏'이 어떤지 고민 끝에 구매를 한다. 사람마다 신체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에는 패션에서도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는 이용자들이 많아 비슷한 디자인이어도 미묘한 그 차이를 따져서 구매하는 이용자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런 무신사의 변화는 이용자들의 구매까지의 결정에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당장 옷 검색을 할 때 여러 필터를 거는 것도 PC보다 여러 depth를 거쳐 해야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오히려 불편감을 가져다준다. 또한 그 과정이 번거로운 고객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나는 좋게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쿠팡 같이 큰 기업도 대부분 모바일로 결제를 하지만 PC 버전을 유지하고 관리해준다. 특히 쿠팡의 경우 식료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료품은 옷보다 소비자들에게 구매까지 접근하는 심리적 단계가 더 낮다. 다시 말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의 고민과 노력의 비용이 적다. 굳이 PC 웹사이트에 많은 정보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쿠팡은 이걸 한다.
내가 유명인이 아니기 떄문에 이렇게 글을 쓴다고 뭔가 달라질 거란 기대는 없다. 담당자들이 읽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안이 마땅히 없기 떄문에 앞으로도 무신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다만 PC 웹사이트를 종료한 것이 오히려 무신사를 PC로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모바일로 보는 것보다도 불편한 사용자 경험을 준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