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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상반기 한국 스타트업,
흐름보다 구조를

위험을 피하는 투자자들, 믿음을 얻지 못한 스타트업들

by Bennett

* 2025년 6월 작성된 글입니다.



침체에 빠진 한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


[사진 1] 2025년 상반기 한국 스타트업·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 및 투자 금액 TOP 10_출처 TheVC.jpg 2025년 상반기 한국 스타트업·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 및 투자 금액 TOP 10_출처 TheVC


다사다난했던 2025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숫자로 들여다봅니다. 아쉽게도 수치만 보면 분명히 시장은 침체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스타트업 전문 데이터 분석 기업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상반기 전체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7.5% 감소한 2조2043억 원에 머물렀으며, 투자 건수 역시 31.6% 줄어든 481건에 그쳤습니다. 특히 시드와 시리즈 A 단계에서의 투자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사진 1-1] 초격차 스타트업 1000+(DIPS 1000+)_출처 창업진흥원.jpg 초격차 스타트업 1000+(DIPS 1000+)_출처 창업진흥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같은 시기 '사상 최대 규모의 정책 지원'을 선언하며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조 원 규모의 조기 모태펀드 출자, 엔젤 매칭, 시드 펀드 조성, 글로벌 펀드 확대, AI 및 딥테크 중심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육성 계획, 그리고 전국 13개 지역에서 200회 이상의 IR 설명회까지. 정부의 액션은 분명히 있었고, 그 속도도 빨랐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정책은 있었는데 왜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중기부는 상반기 내내 정책과 미디어를 통해 초기 창업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조기 출자를 결정했고, 이를 통해 모험자본의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지방 벤처기업을 위한 지역 특화 펀드도 조성하면서 비수도권 창업 생태계를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상반기 투자는 시드~시리즈 A 단계 스타트업들의 투자 건수가 전년보다 42.9% 줄었고, 투자 금액 또한 33.4%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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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부의 자금 집행 의지를 '확장성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거시경제가 불안정했습니다. 글로벌 무역 관세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을 일으키며 유가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해운 물류의 리스크가 늘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직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럽 또한 그 여파로 전력 가격 급등과 정치 리스크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경기 회복 둔화와 미국 달러 약세까지 맞물리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보다 보수적인 전략으로 전환했습니다.


결국 기술력이나 혁신 아이디어보다는 지금 당장 검증 가능한 수익 모델과 안정적 리스크 관리 구조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었습니다. 정부는 '지원'을 이야기했지만, 투자자는 '확신'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계별 투자 분포에서도 드러납니다. 초기 단계인 시드와 시리즈 A는 가장 큰 폭의 감소폭을 보였으며, 중간 단계(시리즈B~C)는 소폭의 조정세를 나타냈습니다. 반면, 후기 단계인 시리즈 D~프리 IPO에서는 투자 건수와 금액이 모두 증가했습니다. 실제로 후기 라운드는 전년 대비 건수가 19.2%, 투자금은 3.3% 증가하는 것을 보였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실사용 사례와 수익성 중심의 스타트업에만 자금을 집중하며, 초기 기술 스타트업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보다 구조, 시장이 본 건 실현 가능성


[사진 3] 2025년 상반기 분야별 투자 건수 및 투자금액 top5_출처 fnnews.com(자료-theVC).PNG 2025년 상반기 분야별 투자 건수 및 투자금액 top5_출처 fnnews.com(자료-theVC)


정부는 기술 중심의 성장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등 이른바 '딥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대표 정책인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략의 상징적 사업이었습니다. 스타트업 및 기술 분야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 Insights가 선정한 'AI 100'에 국내 기업 4곳이 이름을 올린 것은 대외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장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고, AI 분야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1% 감소하며 투자 건수도 36.9% 줄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투자자들이 기술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시장은 '가능성'이 아니라 '검증된 확장성'을 봅니다. 아무리 기술이 매력적이라도, 수익 모델이 불확실하거나 실사용 사례가 부족하다면, 지금과 같은 긴축 흐름 속에서는 선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사진 4] 카카오의 AI 메이트 서비스 '카나나'를 설명하는 카카오 정신아 대표이사_출처 fnnews.com.jpg 카카오의 AI 메이트 서비스 '카나나'를 설명하는 카카오 정신아 대표이사_출처 fnnews.com


실제로 카카오의 AI 메이트 ‘카나나’는 지난 5월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일일 신규 설치 수가 수만 건에 달했으나 빠르게 100건대로 급감하며, 초기의 기대감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기술력보다 숫자, 가능성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현 시장의 판단 기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처럼 카카오는 '카나나', 네이버는 '클로바X'와 '하이퍼클로바'처럼 이른바 ‘한국형 생성형 AI’를 개발했지만, 실제 일상 영역에서 사용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일회성 관심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ChatGPT, Gemini, Perplexity, Midjourney, Veo3 같은 글로벌 서비스는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AI 서비스에 대한 VC의 의문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변화


[사진 5] 일본 민간 우주 비행 스타트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jpg 일본 민간 우주 비행 스타트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


한편 일본 도요타의 경우, 자사 산하 벤처캐피털을 통해 우주 스타트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에 7억 엔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전부터 수억 달러를 투자해온 도요타는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기술 검증, 생산 인프라 공유, 내부 전문가 파견까지 포함된 구조적 협업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CVC의 역할을 단순히 자본 공급자로 한정짓지 않고 '구조 설계자'로 정의한 것입니다. 이는 정책이 자금을 투입하는 데 그치는 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입니다.


지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마주한 문제는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닙니다. 자금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책은 발표되고, 지원은 약속되지만, 이 자금이 실제 현장에서 연결되고 순환되는 구조는 여전히 미비합니다. 기술력은 넘쳐나지만, 이를 신뢰로 이어줄 시스템과 피드백 체계는 부족합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돈의 양이 아니라, 그 돈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선언보다 실행, 지원보다 연결, 기술보다 실현 가능성. 이것이 지금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구조적 전환입니다.


검증 가능성을 높이는 피드백 기반의 초기 심사 체계, 지역-투자자-중앙 정부를 잇는 실질적 매칭 플랫폼, 글로벌 VC와 실물 협력 중심의 연계 프로그램, 그리고 정책 효과를 평가해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성과 기반 정책 루프. 이 네 가지가 갖춰질 때,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는 숫자보다 구조, 자금보다 신뢰입니다. 반등은 결과일 뿐이고,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적 재설계입니다. 정책이 생태계를 설계하지 못할 때, 생태계는 정책을 거부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경계점에서 선택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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