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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하루 Jun 06. 2023

기준이 되고 싶어요

기준도 다른 줄일 뿐

초등학생 시절, 체육시간이 다가올 때면 실내화 가방을 달랑 들고 제각기 친한 친구들과 그룹을 지어 운동장으로 무리 지어 가곤 했습니다. 혹여 혼자 뒤처질까 친구들과 발맞추어 비슷한 속도로 걷고, 준비가 늦어 친구로부터 먼저 간다는 말을 들을까 봐 최대한 빨리 체육복을 갈아입은 기억이 있네요. 지금 보면 참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시절 잼민이들도 여간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규율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산만한 아이들은 체육 선생님이 다 같이 불러세울때에도 쉽사리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앞뒤 친구들과 떠들며 괜스레 앞친구 등을 찌르고 옆 친구가 그랬다며 능청을 떨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무너지는 대열 속에 선생님은 가운데 줄 맨 앞친구에게 ‘기준’이라는 칭호를 주곤 했습니다. 부여받은 역할에 충실한 기준 친구는 씩씩하게 “기준!”을 외치고, 그에 맞추어 오와 열을 맞춥니다. 아이들은 기준에 맞추어 오른쪽 한 팔을 수직으로 올리고, 왼쪽 다리를 앞 친구 다리 위치에 맞추며 스스로의 자리를 정비합니다. 아이들 사이에 거리를 벌린 체육 선생님은 그제야 오늘 수업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저는 그 기준을 외쳐보고 싶었습니다. 소심함의 극치인 제가 사실 관종끼라는 게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도 앞에 나서서 발표라도 할라치면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는 급격하게 떨리는 저인데 말이에요. 어느 정도냐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발표하는 경험을 주어야 한다는 교육 철학이라도 가지고 있으셨는지 모든 아이들에게 매일 세 번의 발표 할당량을 주셨습니다만 매번 채우지 못해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1, 2교시에는 남은 시간을 보고 안심하며 후일을 도모했으나, 생각만큼 확신을 가지고 제 의견을 말할 만한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혹여나 내가 하는 말이 질문의 핀트와 엇나가거나, 아예 틀린 답이면 비웃음을 살 것이고, 목소리가 작으면 뭐라 말하는지 모르겠으니 한번 크게 말해보라 할 테니까요. 자신 있게 답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선뜻 손을 올리지 못해서 타이밍을 놓치거나, 목소리가 큰 친구에게 차례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물쭈물 대다 결국 하루가 지나면, 선생님은 발표량을 채우지 못한 아이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방과 후에 남아 깜지를 쓰라 하셨습니다. 매번 지목되던 저는 선생님께 말썽쟁이 학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저도 발표 잘하는 아이들을 동경했습니다. 적어도 발표라는 미션을 반항의 의미로 수행하지 않는 말 안 듣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주위 친구들 모두가 좋아하는 리더 격의 친구들은 본인의 의견을 자신 있게 피력했습니다. 설령 틀린 답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웃긴 농담으로 수월하게 넘어가는 그 모습이 참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따라도 해보았습니다. 모둠별로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 시간에는 앞 분단 발표자가 말하는 동안 저는 친구의 발표를 듣지 않고 제 주장만을 계속 어루만졌습니다. 속으로 연습도 하고, 다른 단어를 쓸지 아니면 말하는 톤을 좀 더 밝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5명의 발표가 이어질 정도로 오랜 시간 준비를 한 저의 순번이 다가올 때면 이미 발표의 추세가 많이 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미 앞 친구가 말한 내용이거나, 선생님이 타 발표자의 발표 도중에 지양하라는 말씀을 한 내용이라던가, 발표의 취지에 어긋난 내용이었나 그럴 겁니다. 그걸 캐치하지 못한 저는 그저 준비한 대로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벤치마킹한 친구와 비슷한 농담조의 말투까지 따라 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썼습니다. 발표 당시엔 뭔가 이상하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준비한 내용이니까요. 싸한 분위기가 감돌고, 이내 식은땀이 흐릅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정적 속에 어색한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로 자리에 돌아앉은 저는 같은 분단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 수그러듭니다. 적어도 발표에 있어서만큼은 친구들 사이에 고문관으로 통했을 겁니다. 초등학교를 넘어 중, 고,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서도 발표는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50번 100번 반복해서 연습하면 그나마 좀 나았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반복 연습을 해 온 발표 이외에, 급작스러운 자기 PR 기회라던가 순간적으로 재치 있는 답변과 반문을 해야 하는 자리에는 영 발전이 없었습니다. 옆집 아저씨라 생각하고 대답하라는 조언을 들어봤지만, 저는 옆집 아저씨와도 어색한 걸요(현관에서 신발을 다 신었더라도 옆집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면, 나가려던 문 손잡이를 슬그머니 놓고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며 마주치지 않길 기도합니다..;;). 매사 이런 식이니 서른이 다가온 나이가 되기까지 목소리 내기에 소질이 없던 제가 학급 아이들이 모두 들리도록 말하는 ‘기준’을 외치고 싶었다는 게 이제 와서 좀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체육 시간에 찰나의 시간이나마 주인공이 되고 싶었듯,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말하는 ‘기준’이 되고 싶어들 합니다. 순전히 본인의 소질과 개인적인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 그 기준을 이루려는 이가 더러 있겠습니다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방과 후에 남는 창피를 겪지 않기 위해 발표 할당량을 채우려는 노력을 했듯 세상의 가치에 맞추기 위해 기준을 택한 이들 또한 많습니다. 그중 더러는 저처럼 노력하였지만 이루지 못한 이들도 있고, 마침내 이룬 이들도 있겠습니다. 사회 속 ‘기준’을 성취하게 되면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 쉬워집니다. 딱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패를 내보이면 나의 가치가 덩달아 상승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죠. 타이틀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치가 지닌 전부를 체득화한 기분입니다. 이처럼 성취감이나 자기 혐오감이 동기가 되어 자신만의 크고 작은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성취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을 아프게 할 목적으로 독한 말을 연신 내뱉지만, 되려 그 말이 본인을 향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그들은 사실 ‘나’와 ‘기준’ 사이의 괴리에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몰아세우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열이 뻗쳐 댓글을 쓰고, 날카로운 말을 쏟아붓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악에 받친 그들이 쏟아내는 액받이는 대게 본인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놓인 사람이거나, 본인의 과거와 현재를 고려해 보았을 때 오를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끝없이 의심하고, 예측하며 비아냥댑니다. 속 깊은 상황과 처지는 알길 없지만, 대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경제력과 직업을 기준으로 그들을 함부로 평할 잣대로 삼습니다. 그리고 평가 대상의 사람들이 평생 지금의 위치에 있을 것처럼 속단하여 말하죠.


처음에는 저도 이들의 저의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맹목적인 비난과 난잡한 평가에 혀를 내두르며 인간성의 종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집 앞 산책길을 걸어 다니고, 회사를 다닐 때에 보이는 건실하고 말쑥한 이들이 온라인상에서는 어찌 돌변하는 걸까요. 한 둘이 아닌 대다수의 의견으로 보이는 편향된 시각들은 좀처럼 타협이란 걸 모르는 듯싶습니다. 언젠가 뉴스 속 통계에서는 각 분야의 갈등 수치가 대폭 상승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만 현실에서 발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네요. 드러내고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의견이 정말 건강한 사고와 숙고로 나온 주장일지 의문이 듭니다. 편향된 언론만 찾아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여 좌, 우, 중도, 경제 분간 없이 신문사를 구독하고, 유튜브 뉴스 영상도 보았지만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공격성이 짙은 말투로 특정 단어나 논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한 측에 쏠린 입장을 가진 언론사에서는 같은 의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반대 의견이 꼭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음. ‘반대 의견’이라기 보단 깎아내리는 대상이 다른 느낌이긴 하네요.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하면, 모순이 꼭 존재했습니다. 본인이 위치한 기준에 달하지 못한 사람을 지탄하되, 스스로 올라가지 못하는 속히 말해 윗 기준에 속하는 사람은 어부지리로 그 지위를 얻었다고 말하며 타인의 노력을 폄하하였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라는 걸일까? 아님 하지 말라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혐오의 시대’ 답게 다양한 미디어 속 우물에서 메아리치는 이들은 각기 공동체를 이루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든 동족을 확인하며 말에 힘을 얻습니다. 그저 공감과 이해뿐만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사회와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하며 또 다른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 그들의 상황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들이 매몰되어 있는 우물을 넓히기보단, 객관적으로 관망할 수 있는 지상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그들의 상황과 마음을 알아주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도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입어왔던 마음속 피해에 어른이 되어서도 더 아플까 조마조마한 아이들일 뿐이 아닐까 말입니다. 더 아프면 버틸 재간이 없기에 방어기제로 타인을 공격하는 거죠. 어른들이 파놓은 우물 안 아이들은, 그 좁은 우물 안에 좀 더 좁고 깊은 우물을 또 팠을지도요. 대를 이어 여러 번의 우물 파기가 반복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비단 경제력뿐 아니라 마음속 우물에서 함께 나가려는 어른의 노력이 선제되지 않는다면 어린아이 혼자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우물을 파 가며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외치는 어른들과 함께한 아이들은 그것만이 정답이리라 여겼습니다. 지상에 놓여있는 정수기나 도르래로 끌어 올린 한 잔의 물은 더럽거나 내가 얻을 수 없는 신포도쯤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본인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해 온 우물파기가 아닌 방법으로 쉽게 물을 얻은 사람들을 보고 억울해하며 한 우물만 파면 성공이 보일 거라 말하던 어른에게 비난합니다. 또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기에 확신이 없는 우물파기에 정당성을 얻고자, 여즉 우물이 덜 파인 이들을 보고도 힐난합니다. 비난이 일상이 된 그들은 나이가 들수록 본인의 가치관이 확고해져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인의 아이에게 다시 우물파기를 당연하듯 권유하고, 때론 타인이 새로운 우물을 파는 데 영향을 끼칩니다. 계속된 우물의 난개발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남아날 리가 없죠. 그렇게 계속된 자기 검열과 타인 비난은 비로소 사회를 병들게 하는 쳇바퀴가 됩니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대다수의 국민 중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이 와중에 누가 누구를 평하고, 비난할까요. 냉소 어린 댓글은 달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기 우월에 빠지고, 은연중에 가까운 이를 깎아내립니다. 뜨끔하는 마음에 악플러 의견에 토 달지 못한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대처하는 법과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하는 태도를 배운 경험이 얼마나 될까요. 국가 개발의 성장과 개인의 부 축적에 집중하여 지금까지 왔지만, 그에 딸린 구멍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선인은 아니기에 환상 속 무릉도원이 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적어도 세상의 기준만이 전부인 건 아니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나의 윗대에서는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병이 얼마나 가슴 애린 것인지 공감할 수 있는 나와 내 또래 친구들부터는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합니다. 혹시 모르죠, 어른들이 자신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다 말하듯, 우리로부터 마음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자랑거리가 생길지도요. 발표를 잘할 줄 몰라 친구들에게 같은 발표 모둠을 맺기가 꺼려졌던 사람이었지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는 말하기보단 쓰기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친구들이 쉴 새 없이 떠들며 발표를 잘하는 역량을 늘리는 동안 교실에 앉아 책을 읽던 경험이 브런치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학창 시절 내내 글쓰기 상은받아본 적 없지만, 온전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서 돈벌이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이렇게라도 이어오고 있나봅니다. 글쓰기가 아니라 발표하기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애써 외면했다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분노가 치미려고 할 때면, ‘아차’하며 내가 분노의 대상에게서 얼마만큼 가까이 서 있는지 확인하곤 합니다. 방향이 어디가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너무 가까이 와있다면, 멀찍이 뒤로 물러서 타인의 눈으로 보기 위해 시간을 씁니다. 처음엔 좀처럼 뒤로 가지지 않지만, 시간을 써가며 뒤 쪽으로 반동을 주다 보면 서서히 밀려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정도 뒤로 왔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게 될 즈음이 되어서야 그 갈등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물론 기존 의견의 뱡향으로 관성이 작용하곤 하지만, 다시 뒷걸음쳐 되돌아가는 수고를 하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불만과 자기 방어를 좀 더 선명하게 직시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제 미운점을 오롯이 관찰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번 성공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노력하고 있다는 마음에 위안을 얻습니다. 나의 그릇을 스스로 좁히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도달하리라 다짐한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탓하거나 더 나아가 다른 탓할 거리를 찾는 나를 좀먹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대한민국 교육과 사회 시스템의 잘못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꾸짖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큰 구조를 볼 경험이나 학업적 성취를 지니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모두가 교수님이 논문 쓰시듯 상세히 사회 체계와 관련 학명에 빠삭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저 관망하고 스스로를 좀 더 따듯하게 품어주는 그것만으로 되었다고 봅니다. 모두가 내가 사는 삶의 틀과 마음의 아량을 조금씩 넓히며 스스로 성장하는 삶을 성취했으면 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나의 기준을 별개로 보며, 그 격차에 아픈 이들이 줄어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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