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성의 좋은 점
제 MBTI는 INFP입니다. 굉장히 충동적이면서 게으르죠.
심지어 제 감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휘모라친 감정에 쉽게 울화가 치밀고 화가 납니다. 타인의 태도에 의해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고, 타인의 행동에 분노하다가도 화내는 내 모습에 자신의 도덕성을 의심합니다. 쓰다보니 댓글창에서 괜히 ‘씹프피’라고 조롱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간 썩 마음에 드는 성격은 아니었고, 바꾸려고 노력을 해봤는데 남에게 보이는 겉 모습만이라도 바꾸기에도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마치 원래의 나인냥 악착같이 살다보면 된다지만 못했어요. 할 수 있었으면 적어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않아 바꾸려고는 하지만 그 추진력에 비해 완료율은 현저히 낮습니다. 완료를 일컫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목표치의 30퍼센트도, 10퍼센트도 실행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자기 계발도, 학업도, 취미도 너무 어려워요. 주말에 하는 취미가 무엇이냐 물어오면 언제 했던 취미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시도하고 도중에 회피하며, 종국엔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성인 ADHD, 우울증, 산만한 성격, 어렸을 적 성취에 대한 경험의 부재 등 세상은 내 성격이 잘못된 계기를 밝혀주곤 합니다. 뭐 하나 끈질기게 가져가지 못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듣는 것마다 옳다구나 하며 깊이 공감하며 빠져듭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니라는 데 안심하고,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따라해 봅니다. 그런데 역시나 또 오래 안 가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해야 하는데, 어지간하면 첫 시도 이후 금방 고꾸라집니다. 다른 이에게 나의 도전을 밝히면 실패했다는 창피함에 시도를 이어갈 거라 생각했지만, 그 사람에게 도전의 실패를 알리지 않는 걸로 가닥이 잡히곤 합니다. 산만하며 동시에 많은 일을 얕게 하는 제 성격이 문제라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살았습니다.
얼기설기 쌓아올린 시도에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끝끝내 바꾸지 못하리란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매번 불타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실패하지만, 되려 완벽히 이룰 마음으로 다가가면 안된다는 걸 알았어요. 바꾸려 옭아매다 보면 내 안의 청개구리가 튀어나와 오히려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우쭈쭈 잘 달래가며 함께가야 그나마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매섭게 몰아치면 단기간에는 효과가 좋겠지만 기간이 늘어지기라도 한다면, 모순적이게도 성취로부터 점차 멀어집니다. 오히려 실패에 대한 회복 시간이 곱절은 더 걸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한다면서 몇 달안에 인생을 바꾸리라 욕심을 잔뜩 부리는 짓을 좀 안해보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이것도 할 수 있으면 그때서야 조금 발전하는 정도로 늘리자고 다짐합니다.
혹자는 MBTI가 사람의 성향을 단지 몇 갈래로 나누는 지극히 편협한 사고방식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럼 비과학의 결정체인 MBTI가 유행하기 이전에는 사람의 성향을 얼마나 세밀하게 보았는지 떠올려 본다면 그다지 많지 않을 테지요. 사람마다 사람을 관찰하는 정도도 다를뿐더러 경험의 깊이도 다르기에 어쩌면 4가지 알파벳의 경우의 수보다 적은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가름하는 데 쓰고 있었을지도요. 적극/소극, 꼼꼼/충동, 쾌활/조용, 부정/긍정 일컫는 단어의 쓰임은 다르지만 사실상 그 단어를 떠올리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더욱이 단어의 뉘앙스에서부터 좋은 성격의 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죠. 세상에 답은 없다, 좋은 성격이란 없고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말은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기준의 성격은 정해있습니다. 밝고 쾌활하지만 꼼꼼하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세상은 유니콘을 원하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마음 안팎에서 끊임없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만을 좇다 실패에 좌절한 상처받은 이들이 많습니다. 삶이 저물고 마음이 새까맣게 타버린 이들에게 잘못된 성격이란 없다는 피상적인 격언만 한다면 그들의 마음에 제대로 와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제 성격이 제 성격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MBTI의 순기능이려나요. 나 말고도 이런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나선 내 성격도 별로 유별나진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린 감성과 머릿속에 폭주하는 망상, 안보는 것 같지만 온갖 세상에 기웃거리고 있는 호기심을 지닌 저는 제 성격이 맘에 듭니다.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야 제 성격을 마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른 면을 생각해 보았는데 나름 효과가 있더라고요. 일생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나의 성격이었습니다. 아싸와 주변인으로만 알고 있던 나의 존재가 비로소 주인공이 된 거죠. 목표가 계속 바뀌며 시작만 하는 작심삼일 성향은 상상도 못 했던 분야에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추진력이었고, 눈치 보며 제 마음을 돌보지 않던 성격은 다른 이의 말에 경청하며 마음속 깊은 의향을 캐치하는 진정성이었습니다. 또한, 끈기 있게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은, 다채로운 지식으로 넓고 얕은 대화가 가능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매끄러운 대화를 잇는 프로 진행자의 덕목이었습니다. 어떤 대화에선 적당히 모르는 이가 환영받기 마련이니까요. 초점의 전환으로 답답한 씹프피가 아닌 유연성 있는 인프피가 된 저는 이제야 제 성격의 장점만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있어 보이는 활자뿐인 '긍정적인 사고'가 아닌 나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개인적 성찰이나 가족, 연인과 함께하는 평안한 일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처뿐인듯한 회사에서도 나의 쓸모를 생각보다 많이 느낄 수 있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성격의 역전으로 인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저의 경우에는 상사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했을 때 하는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습니다. 이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어버버 거리다 한숨소리와 탐탁지 못한 말을 듣겠죠. 이미 한 소리 들은 것과 같은 망상을 끝낸 저는 A안뿐 아니라 B, C안을 추가로 상사에게 가져가며 순탄한 앞날을 기도합니다. 보고할 때 말할 내용도 메모장을 켜 타이핑 한 뒤 입으로 웅얼거린 후인데도 말이죠. 앞 뒤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가 파티션 안 제 자리를 훔쳐보기라도 한다면 회사에서 혼잣말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때로 일머리와 업무 센스가 있는 부하직원으로 보일 수도, 예상치 못한 문제에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갈 만한 역량 있는 동료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본인의 성격이 직장생활에 페널티로 작용한다는 생각에 마음 써 온 직장인 분들이라면 한편으로 그 덕을 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의도치 않게 한 행동이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경험말이에요. 저도 제 미운 성격으로 덕은 본 경험도, 마냥 좋다고 생각했던 동료의 성격 때문에 업무적으로 힘겨워한 적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 부러워는 하되 진리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사회 적응에 좋습니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을 해보겠습니다. 여기 동일 연차의 A직원과 B직원이 있습니다. 이 둘 모두 신입사원이라 서무 업무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회의실 예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다음 주 월요일 1시에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줌 미팅이 가능한 사내 회의실을 예약해야 합니다.
A직원은 30분에 걸쳐 사내 예약망을 확인한 결과 원하는 시간대에 모든 회의실이 꽉 찼다는 사실을 곧장 상사에게 전합니다. 이에 반해 타 부서 B직원은 일을 맡은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모든 회의실이 꽉 찼으며, 그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예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차순위 시간이 되지 않으면 회의 진행 예정 시간에 회의실을 예약한 부서에 연락하여 변경가능하겠는지 문의하겠다는 말을 덧붙여서요. 여러분이 상사라면 어느 부하직원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으신가요. 제 경우는 후자인 B직원입니다.
아웃풋보단 적극성 있는 태도를 중요시하는 저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B직원이 마음에 듭니다. 전문성 있는 업무야 알려주면 되는 것이고, 보통 이런 친구들은 알려주는 업무를 다시 질문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제 의견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B직원이 어떠한 배경과 생각으로 제가 보는 결과물을 가져온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만 알 테죠. 저와 같이 '눈치 보는 성향' 덕분에 '적극적인' 업무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을지도, 옆 부서 A직원이 혼나는 소리를 듣고 약삭빠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준비해 온 꾀 좋은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상사의 성향과 상황만 있을 뿐입니다. 불만이 충만한 일그러진 표정이라던가 쏘아붙이는 말투 같은 최소한의 선을 제하고는, 상대방의 성향을 판가름하는데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재받을 부장님의 성향에 따라 원페이퍼 보고서와 용량을 잔뜩 부풀린 보고서의 평이 갈리듯, 회사를 포함한 현대 사회에서는 제각기 입맛대로 사람을 평하고 선호하는 인간상을 정답처럼 말합니다. 백지 같은 보고서 작성에 사실 정답이란 건 없는데 말이죠. 그저 그 사람의 정답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정답을 판가름하는 사람이 다른 이가 아닌 '나'가 되면 마음이 편합니다. 정말 내가 바꾸고 싶은 성향이 있다면 애써가며 바꿀 것이고, 다른 측면으로 보니 덕도 좀 보고 마음에 드는 구석에 있다면 함께 끌고 가면 되는 겁니다.
앞서 위기대처능력으로 인정받은 보고준비행위(?)의 계기인 '남 눈치보기'는 사실 혼날 구석이 좀 많습니다. 회의 시간에 다른 이들에게 지탄받으리라 예상하며 자기주장을 개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와일드한 상사에게 답답함을 주며 한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분명 어떤 면에서 보았을 때는 장점으로 비추어졌는데 그 반대가 된 경우입니다. 기존에 저라면 그저 의기소침해하며 바뀌지 않는 소심함으로 또다시 혼이 났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자기비판에 빠졌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장점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또한 평생 함께 가기로 마음먹은 만큼 어떻게 하면 다른 면으로 커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어려우니 더 많은 준비로 대응력을 키우고, 서포트쉽으로 저를 포장하는 겁니다.
회사와 사회에서 중무장하며 나의 성격을 마주 보게 된다면,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비로소 넓힐 수 있습니다. 확장될 삶에 준비운동을 한 셈이죠. 단점인 줄 말 알았던 나의 성격이 알고 보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장점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듯. 그리고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완벽은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나의 다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 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모든 것에 통용되는 생각의 전환이라는 겁니다. 즉, 나의 성격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나' 또한 나도 모르는 나만의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확장의 꼭지를 '일'로 보았습니다. 특히나 내가 하고 진정으로 싶은 일을 하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충동적인 마음으로 그저 구미가 당기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1학년 끝무렵일 때, 문과도, 이과도 아닌 갑자기 신설된 '어문학과'에 선뜻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이카루스 따위의 특별반이 아닌, 그저 별개의 학과로 새로 신설된 특성학과였지요. 글쓰기에 욕심도 재능도 없던 저는 웬일인지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워 그 학과에 지원하겠다 담임선생님께 말했습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당황하며 다시 생각해 보라 말씀하셨지만 딱히 다시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일단 지르고 나면 쉽게 번복하지는 않는 성격 탓에 충동적으로 선택한 특성학과에서 고등학교 2년 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그 학과에는 '어문학' 진로 희망자보다 체대와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예체능 학생이 훨씬 많았다는 게 함정이었지만요(ㅎㅎ). 그렇지만 그 뜬금없는 선택에 얻는 것도 많았습니다. 일례로 반 학생들에게 진심인 담임 선생님의 열정으로, 한 출판사가 주최하는 책 만들기 공모전에 선정되어 반 아이들과 다 함께 '책'이란걸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정 분량의 글을 쓰면 책으로 엮어주는 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반에서 보통 수준 이하의 글쓰기 역량을 가진 제가 기고할 수 있는 양은 아주 아주 적었지만 함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파주 출판단지에 견학을 갔던 기억이 여즉 생생할 정도니까요. 그저 충동적으로 마음에 이끌려 한 선택이었지만, 추억을 만들어준 귀중한 선택이었다는 걸 이제 압니다. 어쩌면 어린 저에게 배울 점도 많아요. 취업과 부모님의 억압에 못 이겨 다른 학과를 택했다면 지금 얻은 건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다른 이들이 정답이라 평하는 것을 얻을 수는 있었겠지만, 주체가 '나'는 아니었던 만큼 지금의 내가 그때의 선택에 확신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저는 남들보다 '나'가 중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타인들이 그들의 잣대로 평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되어하는 일 말입니다. 어떠한 평판이나 근거보단 나에게 구미 당기는 일을 행하여 미래의 나에게 추억을 선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로 인해 맞이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감내하며 현명하게 대처하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유연한 인프피(INFP) 답게 말이에요.
얕은 끈기로 매일 도전하는 삶을 사는 저와 같은 이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