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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ul 03. 2024

변화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변화의 주체자

어릴 때는 꽤나 예쁨을 많이 받았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목소리로 네 아빠, 순종이 쉬웠고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차분하고 침착한 아이라는 평을 해주셨다. 친구들이 자신의 비밀을 조잘조잘 털어놓을 만큼 신뢰를 얻기도 한, 전반적으로 예의 바르고 조용하고 착하고 얌전한 아이. 남편은 이 아이를 상상조차 못하겠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지금 나와는 180도 다르니 말이다.


얌전했던 때가 기억난다.


소심했고 겁이 많았으며 조용히 사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했다. 발표하는 것도, 남의 시선을 받는 것도 다 불편하고 싫었다. 분출해야 할 만큼 억울한 일도 딱히 없었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올 때면 조용히 들어주는 것이 당연했다. 노력이라기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자연스러운 어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시점인가. 고집 세고, 조급하고, 거칠게 나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게 아마 14살쯤, 얼굴에는 여드름꽃이 만발하고 초경을 마주한 중학생 시절.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올 법 한 "착한 아이"섬이 우지끈 무너진 순간이랄까. 친구의 이야기를 질리도록 듣던 어느 순간부터 듣는 게 버거워졌고 지겨워졌다. 단순히 듣는 게 힘든 것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 맞춰주는 삶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커서 캐나다를 다녀오고 난 후에는 더 활기차고 사람을 좋아하는 25살이 되었는데, 아빠는 20대의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이제 말도 안 듣고 나름의 온갖 노력으로 반항했으며 절대 조용하고 얌전한 딸일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살았다.

필요할 때면 예의를 갖추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채로. 내가 나를 챙기면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서.


시어머님께서 전화 너머로 웃으며 우리 며느리 고집이 만만치 않다라고 하셨을 때도 맞아요, 하하 웃으며 여유롭게 넘겼지만 아니 생각해 보면 말이다. 고집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 아빠도, 우리 시어머님도, 그리고 우리 남편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기준과 소신과 고집이 있는걸. 나만 별난 게 아닌데? 그러니 난 절대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자아로 벌써 20년을 살았으니. 결코 바뀔 리가 없다.


물론 바라기도 했고 그립기도 했다. 별다른 이슈없이 얌전히 살았던 착한 내가. 화낼 것도, 나의 주장도 없이 차분히 남의 말을 듣고도 잘 살았던 착한 내가 된다면 주변이 더 행복할까. 아니, 착한 아이로서 얻는 주변의 인정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질까 봐서. 나만 바뀌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평안할 것 같은데.


한 때는 사람은 진짜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꽂혀있었는데, 주변에서 그래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다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는데, 그분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분명히 변한다고 했다. 확신 있던 말씀이었지만 난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었지만, 당장 나를 보아도 나는 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 내 성질머리를
어떻게 고칠 수 있어요?


성장에 대한 강박. 견고한 신앙을 향한 갈망.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믿음 좋고 열정 넘치는 사모님들을 보면 나 자신이, 브런치에 이런 솔직한 글을 쓰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사모가 이렇게 이기적이라니, 이렇게 고집이 세다니 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러니 하나님 어떡하면 좋아요.


한 목사님의 고백이 기억이 난다. 나의 실상을 누가 안다면 어떻게 목사인데 그럴 수 있나 두렵다고. 자기가 생각해도 나는 목사인데 이것밖에 안돼서 어쩌나 정말 답답하다고. 다른 한 목사님도 찬양 인도를 하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자신의 죄로 인해. 변하지 않는 나로 인해 괴롭다고.


남일이 아니었다. 나의 괴로움이 그와 같았다.


최근 집을 구하는 문제를 두고 꾸준히 기도하는 중이었다. 집이라는 것은 결국 물질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기준을 계속해서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 내가 이것도 기쁘게 내려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분명히 진심을 다해 고백했는데, 상황이 어긋나면 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그만 간섭하세요. 그리고 다시 회개함으로 얌전해졌다가 다시 현실이 어려워지면 주먹을 꽉 쥐었다. 하나님 제발 그만하세요. 이만하면 되었잖아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울고 불고 평안해지고 감사했다가, 다시 미치는 일을 반복했다.


나는 적당한 의인인 줄 알았다. 내려놓겠다 결심하면 내려놓는 의 정도는 행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나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철저히 타락한 죄인이었다. 알게 모르게 변화를 갈망하던 나는 막다른 곳에 이르러서야 인정했다.


하나님, 저는 거짓말쟁이예요.
저는 변할 수 없어요.

불장난 치던 아이가 불의 뜨거움을 경험하면 그 앞에 이제는 움찔하는 것과 같았다. 감사로 패기 넘치는 고백을 할 때조차 움찔하며 나의 본성을 기억하게 되었다. 주를 절대 버릴 수 없다던 베드로같이 확신에 가득 찼던 나는 힘없이 읊조렸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따라 살기 원해요. 그러나 하나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임을 기억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고 내버려 두지 말아 주세요. 하나님 나는 이것을 내려놓고 싶어요. 하지만 사실 내 깊은 마음에서는 내려놓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과정을 주님께서 주관해 주세요.


나의 고집과 무능력을 인정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절실해졌다. 예배 시간인데도 현실만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분주한 나를 바라보니 나는 어느 곳 하나 성하지 않은 흠 많은 어린양과도 같았다. 나로는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러니 흠 없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 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로구나.


어찌나 감사하던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주심이. 얼마나 감격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능력 없음이 하나님 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100% 무자격이 사실 본래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덜 어색해졌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이것을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에서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옮겨가는 것이 이 전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업고 가시며 나를 이끌고 가는 인생이다.


그렇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나 물질적인 부요를 본능적으로 추구할 것이고 남보다는 나를 더 사랑할 것이며 나의 판단과 옳음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나는 좋든 싫든 계속해서 비대한 이 자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람은 변화되어 갈 것이다.

때로 허락하시는 고난 앞에서 물질을 추구하기보다는 받은 것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는 자족을 배워가게 하실 것이고,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가시며, 말씀의 은혜로 나의 판단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게 하심으로 나의 속사람을 날마다 꾸준히 조금씩 변화시켜 주 실 것이다.


남들은 모를 것이다.


부모도 친구도 나의 속을 잘 모른다. 삭개오처럼 한 순간에 크게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루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보이지 않게 더디게라도 변화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크던 작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변화의 한 복판에 있으니 남들의 평가와 시선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변화의 주체자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도 사랑하셨고, 앞으로 변화될 단 1%의 가능성이 없어도 책임지신다.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에 후회가 없으시며 그 사랑을 우리가 되갚지 못할 것을 아시고도 아깝지 않다 하신다.


우리의 자유 의지를 그를 향한 회심으로 사용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며, 인내하시며 돕고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변화의 총책임자이며 실무자이시다.


다시 기억해보는 표현.

나의 작음, 하나님의 크심.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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