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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y 30. 2024

좋은 집? 주의 집! (3)

햇살, 바람, 그리고 공간의 주인

아빠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요즘이다.


어른이 되면서부터 아빠를 많이 미워했었는데, 과연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기에 그랬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빠의 표현이 없어도, 아빠로서의 다정함은 부족할지라도, 딸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그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본 후로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면 나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구나.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도 동일하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어떻게든 알게 되면 나머지는 그러려니 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뜻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는 나는 쉽사리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그를 재촉한다.


지난 며칠간 그래서 힘들었다. 나의 욕심은 커져가고, 하나님의 사랑은 잘 느껴지지 않고. 기도로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으나 종이에 적힌 문자로만 느껴지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던 원동력은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주시는 말씀과 깨달음, 은혜 덕분이었다.


새벽에는 신명기 말씀이 이어졌다.


좋은 아침이라는 목사님의 인사에 힘 없이 웃었다. 걱정스러운 또 다른 하루의 아침인걸. 잠잠히 시작된 신명기 말씀이 흘러가고 목사님의 메시지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고 어려운 날이 있는 것은 주님의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며,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 다 맞는 말씀이었다. 나의 욕심으로 시작된 고난이든, 당연함으로 인해 이어지는 어려움이든, 나는 주님이 이끄시는 트레이닝의 한 복판에 서 있음이 분명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꽤 오랜 시간을 기도하게 되었고, 어려움 앞에 쉽게 좌절하던 나는 기도 할 수 있음이 큰 능력임을 믿게 되었다. 정죄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봤던 나는 하나님의 인내하심으로 정죄의 구덩이에서 벗어났으며, 언제까지나 목이 곧은 고집 센 나에게 "그러나"의 은혜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웠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는 배우고 있다. 모르는 척 또 까먹고 실수하겠지만 당연한 과정임을 알고 내게 허락된 시간에 감사한다.


오늘 주신 말씀에 나를 비추어 기도하고, 주님 있으라 하신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이 땅을 위해,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양가 가족들을 위해. 목회자인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부부의 현실을 놓고 기도드릴 때였다.


하나님이 어떠한 답을 주시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고민을 아뢸 수는 있지 않은가.


하나님, 집을 놓고 기도합니다.


우리 부부의 현실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어 주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곳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모든 대출의 과정까지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사람을 보내주세요. 제가 아닌 하나님이 찾아주세요. 하나님, 저는 빛이 드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기도를 계속하다가 불현듯 어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나 붙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나는 주님께 받은 빛을 비추는 반사체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빛이 되어주십니다.


그쯤,

햇살보다 더욱 환하게 빛나는 예수님이 우리 집 거실에 와 계심을 보았다.


우리 집 거실 앞에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단단한 건물이 있어서 아무런 빛이 들이칠 수가 없는데. 거실 테이블에 앉아 바깥을 보자면 굳게 닫힌 창문 또는 빨간색 벽돌이 전부인 장소인데.


햇빛이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 하나님 자신이 햇빛보다 밝게 비추이시며 나의 집에 머물러 주셨다. 너무나도 밝고 환한 빛이었다. 이 세상의 환함을 넘어서는 빛이었다. 그 어떤 집의 어떤 거실도 그러한 빛을 받을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나의 빛이 되어주셨다.  


나의 염려를 아시고,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찾아와 내가 너의 빛이 되겠노라, 보여주셨다. 빛이 없는 이곳에 주님께서 나의 햇살이 되어주시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 주님으로 나를 시원케 하시며 공간이 좁은 이곳에서도 주님 안에서 무한한 공간을 누리게 하신다. 세상 어느 집 보다도 평수가 넓은 주님의 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_시편 65편 4절 말씀, 아멘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_시편 84편 4절 말씀, 아멘


주님의 집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 앞에 있으라는 말씀이었다. 이 전에도 주셨던 말씀이었는데 연약한 나의 마음을 긍휼히 여기셨는지, 하나님이 직접 집이 되어 내게 그의 영광을 사모하게 하셨다.


그로 인해 주님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 지를 다시 알았다. 보여야만 믿는 나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내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


하늘의 것은 차원이 다른 세계로구나.


이 세상은 절대 볼 수도,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 나라. 세상에 속해서 세상 가치를 쫓을 때는 존재하지 않던 차원이 있다. 나의 시선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게로 옮겨 갈 때 비로소 오바댜, 눈이 열려 하나님의 원리를 보게 하신다.


여전히 집을 구하고 있다.


글을 정리하고 난 후에도 한 군데 보러 간다. 하나님께 같이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다. 더 이상 집 자체에 매료되지 않고, 크게 낙담하지 않으며, 그 집이 나를 행복하게 할 거라 믿지 않는다. 어플을 샅샅히 뒤져보는 일도 그만 둔 하루다. 그럼에도 평안한 오늘이다.


하나님 이미 우리 집에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거할 곳이 바로 주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좋은 집은 바로 주님이 집이 되어주시는 곳이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밝고, 가장 시원하며, 가장 넓은 곳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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