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 앤 기브, 러브 앤 러브

by 아링

열심히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참 잘했던 것 중 하나는 계산이다. 수학을 잘했으면 후회라도 없으련만, 아쉽게도 수의 계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이익을 위한 계산을 말한다.


학교 매점에 가는 친구에게 잠깐 500원을 빌려준 때가 있다. 갚으라고 독촉하기엔 정말 작은 동전이라 잊어버리면 그만인 작디작은 푼돈. 하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내 돈 500원. 친구를 볼 때마다 그 얼굴 위에 500원이 동동 떠 있는 걸 바라보았다. 동동 뜨다가 빙그르르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니 나 원 참.


매번 따지고 꼬집는 이 철두철미한 계산 방식이 싫었다. 그냥 좀 주면 어때서. 먼저 베풀면 어디가 덧나나. 그나마 좋은 명분이 있으면 베풀기가 쉬웠다. 내가 받은 이익이 분명하면, 나도 응당 그 정도는 해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정말 찐 예의라고.


그렇게 기브 앤 테이크는 모두를 위해 편하고 좋은 방식이라 굳게 믿으며 따랐다. 하지만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이 도통 먼저 기브 하려고 하지 않는 것에 있는데, 돌려받지 못하면 먼저 내어준 쪽에게 큰 손실이 날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이걸 해줄까 말까. 해줘도 다시 돌아오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줘야 하나. 아니 아무것도 다시 되돌려 받지 못할게 불 보듯 뻔한데. 자신과의 소리 없는 밀당이랄까.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다. 그러니 선뜻 나서서 베풀 아량도 배짱도 가질 수가 없다.


안 받을 걸 생각하고 통 크게 내어줄 수 있는 재능은 마음 넓고 착한 사람만 할 줄 아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들을 살펴보니 기꺼이 해주는 이면 뒤에는 감사와 찬사를 받고자 하는 감춰진 욕망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구나 추후에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기브 앤 테이크를 숨 쉬듯이 고수해 오던 내가 처음 손해를 감수하고 확실히 베풀자고 다짐한 건 이번 겨울부터다.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해주는 일. 어디까지 베풀어야 하나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온전히 줘야겠다 마음먹었다. 막상 시작하자 예상치 못했던 버스비와 카페에서 커피 몇 잔 사 먹을 수 있는 용돈을 받게 되었고, 저축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마저도 남김없이 다시 흘려보내기로. 주고 또 주는 연습을 해보자고.


막상 주기 시작하니 동경하던 사람들처럼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색하기만 했던 베풂이 한 번 두 번 이어지자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음엔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끊임없이 물으며 다녔다. 이게 정말 맞는 거냐고. 잘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어떤 날은 그래 이게 맞다 격려를 받는 날도 있었고, 한 날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속이 상한 날도 있었다. 이만큼이나 포기하면서 사는데 그만큼을 더 포기해야 하나 이를 바득바득 간 날도 생겼다.


베푼 것만큼 득이 되지 않는 기브 앤 기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니 그날이 왔다.

기브 앤 기브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


그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발산하시는, 생명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참되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한낱 인간인 나에게 끊임없이 달라고, 하라고, 해내라고 요구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분의 아들을 향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나에게도 넘쳐흐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주고, 주고 그리고 또 주시는 정말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너그러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기브 앤 기브의 대명사이신 하나님은 내게 그 자신을 주시길 기뻐하셨다. 말씀과 신앙 서적을 통해 그를 아는 지식을 주셨고, 생활에 있어 물질적인 필요를 때마다 채워주셨으며, 내 평생 누려보지 못한 진실로 참된 평안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신다. 지금까지 그러셨듯, 현재도 미래에도 그분은 내게 주고 또 주실 것이다.


그러자 당연해졌다.

선한 아버지를 닮은 선한 딸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삶이.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딸인 나도 이웃에게 주고 또 주는 삶이 정말 옳았다.


쌀국수 위에 얹어지는 고수를 이제는 빼달라고 요청하듯이. 비로소 입맛이 바뀐 것이다. 당연한 줄 알고 먹던 고수를 빼달라는 것은 이 채소가 더는 나의 기호에는 맞지 않다는 암묵적인 표현인 것처럼, 기브 앤 테이크를 고수하던 나도 이제는 그 습성을 빼내는 중인 것이다.


나의 기호는 이제 하나님이심으로. 그분 자체이자 그분의 속성인 러브 앤 러브를 경험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전에 비해 덜 욕심내고 저번보다는 더 참을 만 해진다.



갑자기 받은 상품권 20만 원을 모조리 쏟아 동기 목사님 사모님들에게 맛있는 식사 대접을 하고, 성탄절에 받은 사과 한 박스는 반을 나누어 시어머님께 보냈다. 교회에서 받은 수제 캔디는 아이들에게 내주었고, 빵집 권사님께 받은 파운드케이크도 반 넘게 선배 사모님께 드렸다.


이걸 다 손수 차렸냐며 배불리 드셔 주신 동기 부부들 모습과 사과 좋아하시는 어머님의 행복해하시는 목소리. 수제 캔디가 맛있다며 땡큐를 외치는 아이들, 웬 빵 이냐며 씩 웃으시는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이 삶이 바로 천국이구나 싶었다.


겨자씨 한 알과도 같이 작고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마침내 여러 명에게 기쁨을 주는 하나님 나라. 시린 바람에 목도리까지 두른 날이지만 이 깨달음으로 인해 마음에 어찌나 따뜻한 온기가 돌던지.


선교 헌금 10만 원을 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단지 해야하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게 하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그 의미를 새롭게 했다.


겨자씨 같은 10만 원이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수많은 영혼에게 닿게 되겠구나. 어떻게 쓰일지는 몰라도 누구에게 갈지는 몰라도. 나 하나 만족시키는 10만 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드러내는 10만 원 될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니 더 해도 좋겠구나.

많이 해도 절대 손해가 아닌 거로구나.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며 영광스러운 나라에 참여하게 하시는 모든 수고로움과 땀방울, 작은 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다 이 겨자씨와 같다는 것. 쓸데없어 보이고 득 될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작은 내어드림을 기꺼이 들어 쓰시며 더 많은 영혼들에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기쁨이자 소원으로, 이전에는 바뀔 수 없었던 새로운 기호가 되어감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마 내일이 되면 또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의 옛 자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나를 다시 용서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을 구하며 살뿐이다.


기브 앤 기브는 러브 앤 러브에서부터 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심으로

주고 또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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