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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Nov 02. 2020

슬기로운 휴학 생활 15화

나는 무엇이 될까

드디어 5개월간의 시나리오 창작자 활동이 끝났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대해

후회는 남지 않는다.


이 활동을 하면서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좀 더 능숙해졌고,

지역 특화 사업인 만큼 시나리오 전문보다는 소재에 큰 중점을 두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 스토리의 소재는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보다 무거운 주제로 바뀌어 지역 특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못 미칠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시나리오의 형식과 개연성을 보아서는 멘토 작가님께도 들었듯 1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효과 부분을 안일하게 생각했던 점이 참 아쉽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쓴 작품인 만큼 순위 안에 들것이라 기대했던 것이 무너져 마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시상작들이 저런 가벼운 소재였다면 처음에 썼던 시나리오를 제출할걸 이라는 생각과 내가 더 잘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우울하기도 했다.

이 활동 자체에서 시상을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괜히 그동안 좋은 평만 듣다 보니 내가 너무 우쭐해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팀 창작자 분들과 연세가 있으신 분이 시상이 된 건 만족하는 결과다. 결과를 듣고 나오는 길에 한 창작자 분께서는 얼굴이 뻘게진 채 "아 나 작가인데, 와 내가 아마추어에 밀리네. 나 작가인데...."라고 연신 혼잣말을 내뱉으셨다. 내가 보기 그분도 마찬가지로 글은 잘 쓰셨지만 소재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으셨던 것 같다.


그분을 처음 보았을 땐 첫인상이 참 안 좋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발표하는 모습과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를 했을 때 무시를 하는 모습에서 저런 사람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뭔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괜찮아요. 다음에 더 잘하면 되죠"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려는데 그분과 나의 동선이 겹쳤고, 나에게 수줍게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동안 안 좋게만 보았던 그의 뾰족한 모습이 사르르 녹는 인사말이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사람이었구나.라고 마스크 속에서 슬쩍 웃었다.


그분은 자신을 '작가'라고 칭하셨다. 작가 지망생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신의 글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나도 여러 시나리오를 써봤지만 아마추어에 불과할 뿐 아직 작가라고 칭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워크숍에서의 자문을 듣고 아예 시나리오를 뒤엎었던 건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살짝 부족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쭉 내 소신을 밀고 나갔더라면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었을까? 결과에 연연하는 건 좋지 않는데 다소 실망한 나에게 엄마는 그래도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며 쐐기를 박으셨다. 그간 써왔던 노력들은 다 물거품 되는 듯 마음이 불편했다. 단단한 어른이 되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시금 '드라마 작가' 일을 꿈꿔보기도 했다. 특출 나게 잘하진 않지만 나의 특기이기도 하며, 그 일을 할 때 푹 빠져서 하곤 한다. 마음 한구석에는 드라마나 영화 계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현실을 깨우치고 나면 단순히 꿈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아마 이번 활동이 나에게는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지만 (결국엔 결과에 연연해)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게 된 계기가 된 것도 같다.

그럼 난 무엇이 될까?


지금 목표는 하루빨리 독립을 하는 것인데 주변인들과 부모님의 기대가 커 내 욕심만 나날이 늘어가는 중이다.

그 욕심은 어느 순간 부담감으로 돌아왔고, 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나에 대한 실망감이 두렵다.


난 무엇이 될까? 나는 무엇일까?


다소 부끄러운 글이지만 올릴까 말까 하다가

이것도 나의 경험 중 하나이니 올리기로 했다.

저 글을 썼을 때 나의 멘은 조금 부서져있었다.

아마도 열심히 한 대가를 치르지 못했다는

후회와 아쉬움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 후유증으로 한 삼 일간 줄 곧 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라는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나는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후회해봤자 돌아오는 건 자기혐오일 뿐 더 이상 나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지난 일들을 돌이키는 것이 아닌 지난 일들을 발판 삼아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깔끔하게 돌아서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나.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멋있고, 자발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혼자서 완결된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에서 크게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할 거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거다.

언젠가 멘탈이 부서진 내가 이 글을 찾았으면 좋겠다.

또, 지금도 멘탈이 부서져있는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진심이 닿을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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