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너무 늦은 시간』은 삶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 혹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는 순간들을 조용히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기보다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한 발 늦었음을 깨닫거나 이미 어긋나 버린 관계를 돌아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격렬하기보다 담담하고,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읽는 내내 ‘너무 늦었다’는 말이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를 구하기에, 마음을 전하기에, 혹은 스스로를 이해하기에 늦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늦음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과 기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완전히 끝나버린 관계조차 마음속에서는 계속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전해진다.
세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제목만 봐서는 죽음에 관한 내용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읽다보니 주인공인 작가가 불쾌한 방문자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불쾌한 방문자가 암에 걸린 설정으로 글을 쓰는 내용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어쩌면 소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을 글을 쓸 수 있는자가 글을 쓸 수 없는자에게 되갚을 수 있는 더없이 신선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