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를 관광지가 아닌 삶의 길로 바라보게 해준 여행기였다.
빠르게 이동하며 유명 명소를 체크하듯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풍경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방식의 여행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제주에 머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걷는 동안 마주한 제주의 자연과 마을, 바람과 냄새, 그리고 길 위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된 감탄 대신, 조용한 관찰과 솔직한 감정이 중심이 된다. 그 덕분에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길이 주는 위로였다. 걷다 보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생각이 정리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된다. 제주는 늘 바람이 불고, 날씨가 변덕스럽고, 길이 때로는 외롭지만, 그 모든 과정이 걷는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제주라는 공간이 가진 힘이 아니라, ‘걷는 행위’ 자체가 가진 힘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어디를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길에 서야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그래서 제주를 꼭 당장 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다.
책을 덮고 나니 제주에 가고 싶어졌다기보다는,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 적어도 걷는 순간만큼은 '강 같은 평화'가 찾아 들었다. 걷기는 마음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 가슴에 흐르는 피를 멈추는 지혈대 노릇을 했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화는 따뜻하고 깊었다. 보이지 않던 꽃들이, 눈에 띄지 않던 풀들이,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천천히 걷는 동안에 어느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