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하루

강건모

by 은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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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하루는 겉으로 보면 아주 조용하고 담담한 제목을 가진 책이지만, 읽고 나면 그 ‘무탈함’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에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무탈한 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감정과 생각, 관계 속에서 큰 파열 없이 하루를 건너온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한 사건을 나열하기보다는,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순간들을 천천히 붙잡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강건모의 글은 과장되지 않고,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문장들로 일상을 기록한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보다, 오늘을 무사히 버텨낸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다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스며든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아무 일 없음’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하루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야말로 얼마나 많은 선택과 인내, 감정 조절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삼킨 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물러난 선택, 애써 평정을 유지한 마음들이 모여 무탈한 하루를 만든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책은 위로나 조언을 직접적으로 건네지 않는다. “괜찮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조용히 옆에 앉아주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스스로의 하루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잘한 일보다도 버텨낸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

무탈한 하루란 더 잘 살지 못한 날이 아니라, 크게 무너지지 않고 지나온 날로 오늘을 정의하게 된다.

“오늘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조용한 기록이다.

오늘 하루도 무탈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 지금의 생활이 나에게 최적화된 삶인지는 아직 확신 할 수 없다 누가 알려주면 좋으련만, 설사 알려준들 믿을것 같지 않고 다만 나의 설익은 감과 용기를 믿고 나아가는 것 뿐이다.

- 불현듯 이곳에 바스러진 이야기들의 진짜 저자는 측은지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환대하는 척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다정함이 내게 깃든 모양이었다 오늘은 귤 한봉지 가득 주고 가셨다.

- 마음에 태풍이 불어닥칠 때 당신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그것은 아마도 평화와 안식을 주는 장소일 것이다. 힘과 용기를 주고 사랑과 위로로 긴장을 풀어주는 곳일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장소일 수도, 사람이나 추억, 믿음일 수도 있다. 그 어딘가에 소속됨으로써 돌봄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거기가 바로 피난처일 것이다

- 그러나 그 모든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한번쯤 소설을 써보기를 바란다. 개인의 삶을 서사화하다 보면 어떤 곤람함도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치유의 효과도 있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고, 그 자신이 지닌 이야기로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서사를 가진 사람인가 오래 걸려도 좋으니 당신이 쓴 소설 한편을 읽어보고 싶다

- 그런데 삶이 재미있는 건 정말 바라게 되면 진짜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생각이 모든 것을 바꾼다

-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존재할지 스스로 선택하는일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다. 어릴적 말을 더듬던 소년이 덜 쓸쓸해지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은 덜 괴로워지는 법을 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글쓰기야말로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존재 방식이다

- 책이 모닥불이었던가. 모닥불 주위로 오는 사람은 불을 쥐려고 오는것이 아니다. 불이 제공하는 따뜻함, 빛, 안전감, 함께 있음을 느끼기 위해 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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