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by 은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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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인 '나혜석'의 글을 통해,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여성이 자기 삶과 생각을 글로 기록하며 사회와 충돌하고 스스로를 증명해 나간 과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혜석은 여성이 가정과 남성의 보호 속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 여성 역시 생각하고 판단하며 표현하는 주체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글을 통해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선언을 반복하며, 사랑·결혼·성·예술·노동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문제 제기입니다. 나혜석은 결혼이 여성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제도임을 비판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한 책임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는 이러한 주장 때문에 사회적 비난과 배척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또한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나 재능의 발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였습니다. 침묵을 강요받던 여성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항변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의 글쓰기는 ‘문학’이기 이전에 삶의 투쟁 방식에 가깝습니다.

결국 나혜석의 글쓰기는 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고백이자 선언문입니다.

사회의 규범에 순응하지 않았던 나혜석의 글은 여성사·문학사적 의미를 넘어, 자기 목소리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 경희 -
하지만 나혜석이 자기를 변호하거나 잘못을 전가하기 위해 [이혼고백장]을 발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왜곡되어 가는 진실을 바로 잡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과 맞설 방법은 스스로 자기 삶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혜석은 자기 생애를 스스로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 속에 '자기'가 없는 채로 영영 왜곡되거나 사라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남성 중심의 전 근대적 사회와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혜석의 삶과 글은 역사적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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