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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오늘은 Mar 04. 2021

제가 일하던 곳이 폐업을 했는데요,

  나는 아르바이트비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20대 대학생, 20살부터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다. 학원 선생님, 빵집 샌드위치 기사, 치킨집 주방, 어린이날 완구세트 판매, 멘토링, 설 선물세트 판매. 그중에 가장 많이 한 알바는 단연 피씨방이다.


  지금까지 3곳의 피씨방에서 일을 했는데 피씨방 알바라고 하면 카운터에 앉아서 시간이나 죽이다가 가끔씩 컵라면에 물이나 올려주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요즘 피씨방에서는 음식점 마냥 음식을 만들기 때문인데 라면만 있는 게 아니라 만두, 각종 볶음밥, 덮밥, 핫도그, 햄버거, 떡볶이 등 없는 게 없다. 물론 메뉴는 매장마다 조금씩 상이하지만 카레우동, 베이컨 에그 덮밥 등 쓸데없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도 많다. 음료도 종류별로 판다. 아메리카노부터 카페라떼, 캐러멜 마끼아또 등 커피들은 물론이고 각종 스무디와 에이드, 탄산까지. 오죽하면 피씨방을 '피씨토랑'이라고 부르겠는가.  정도면 음식점이나 카페 알바에 지원할 때도 피씨방 경력이 있으면  경력직으로 쳐줘야 한다니까?


  음식도 만들고, 서빙도 하고, 자리도 치우고, 청소도 하는 업무과중 피씨방 알바생. 그럼에도 피씨방 알바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 시간이 좋기 때문인데 오후 알바시간이 보통 4시부터 11시, 2시에서 8시 정도로 주말에 바짝 일하기에 아주 적당하다. 일이 없을 때 앉을 수 있다는 것과 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빵집 알바나 서빙은 긴 시간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오래 서 있는 일에 취약하다. 빈혈이 있어서 식사를 제때 못하고 오래 서 있으면 눈앞이 핑 돌거나 속이 미슥거리기 때문에 중간중간 주저앉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식 만드는 방법이 가게마다, 메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결국 비슷한 메뉴도 많고  만드는 방법도 거기서 거기여서 한 번 손에 익으면 새 알바를 시작할 때 새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좀 덜하다는 것도 피씨방을 선택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굉장히 직관적인 사람이라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길게 할 것인지, 얼마 못 가 그만둘 것인지 또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이 관계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시작과 동시에 느끼는 편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감'이라는 것이 발달하게 되는데 왠지 모르게 얼굴만 봤는데 싸ㅡ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지성인이니 외적인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되고 첫인상으로 편견을 가지는 것도 부도덕한 일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게는 나의 '감'이 삐삐삐삐ㅡ하는 경보를 울려대도 스스로를 다잡아 직접 겪어보고 판단하려고 하는 편인데, 솔직히 3분만 말을 섞어도 '역시 관상은 싸이언스야.'하는 마음이 든다. 진짜, 진짜 괴학이라니까. 살면서 내 몸에 새겨진 수많은 데이터들이 '그는 아니다.'라고 경고하는 것이니 맞을 수밖에.


  가장 최근에 다녔던 파씨방이 딱 그런 케이스였는데 일을 배우러 갔을 때부터 그 주방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지만 마치 여기서 일을 해본 것 같은 느낌. 이렇게 데자뷰를 느낀 후 함께하는 알바생과 매니저를 겪어보면서 ', 뼈를 묻겠는데?' 하고 생각했었다. 잘릴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먼저 그만두지도 않겠구나 했는데 1년 반을 일했더니, 아니 이게 뭐람? 가게가 폐업을 했다. 예상대로 그만두지도 잘리지도 않았으나 가게가 망해서 실업자가 된 것이다.


  사실 코로나 시국에 부딪히면서 장사가 너무 안되긴 했다. 140석 있는 피씨방이 재작년 여름에는 꽉 차서 '제발 그만 들어와 미친놈들아.'하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50명이 넘는 걸 몇 번 못 봤으니 좀 위험하겠다 생각한 적이야 많았지만 가게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는 게 내 일일 줄은 몰랐던 거지. 덕분에 한 달에 번 알바비로 간간이 생활하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월세 못 낼 위기에 빠졌다. 수입이 0원이라니, 당장 알바를 구해야 다음 달 월세를 내는데 코시국에는 알바 자리가 너무 없다.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들락날락거려도 일할 곳이 별로 없다. 다들 장사가 안돼서 알바생을 줄이거나 알바시간을 줄이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하지. 다들 그만두면 새알바 구하기가 힘들 것을 아니 좀 힘들어도 쉽게 그만두지도 않는 것 같다.


  부득이하게라도 한 달 정도 일을 안 하고 쉬니까 정말 좋기는 한데 슬 불안이 엄습한다. 나는 방어기제 중에서도 억압을 많이 쓰는데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되도록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올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회피법에는 극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생계에 위협이 가해지면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방어기제가 깨지게 된다.


  이때 부작용이 생기는데 지금까지 회피해왔던 생각들이 태풍 때의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면서, 손 쓸 도리없이 휩쓸려 출렁이다가 결국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과정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다 보니 주변에서 이 순간의 나를 본다면 아마 너무 갑작스럽게 우울해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라 아마 건성으로 그나마 밝게 대답하고는 금세 뚱한 표정으로 멍하게 있겠지. 그러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가 되면 주변 상황과 나를 차단하기 위해 구석에서 이불을 덮어쓰거나 몸을 한 껏 웅크릴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접촉면이 많아질수록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인데 마음이 힘들어질 때 누군가를 꽉 안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 나는 최대한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우울해하는 것으로 주변인들을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그게 내 맘대로 안 되는 상황도 있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혼자 깊은 심연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다가 대뜸 '안아줘'하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냥 이유를 묻지 말고 안아주기를 바란다. 생각이 좀 정리되고 나면 꼭 이유를 말해줄 테니 침착하게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태풍이 멎고 나면 잔잔해진 수면 위로 천천히 헤엄쳐 나올 테니, 내가 발을 디딜 수 있게 마지막에만 손을 잡아 위로 끌어올려주면 된다. 그러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 몸을 무겁게 아래로 잡아당기던 물을 탈탈 털고는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홀로 벌어먹고 살면서 많은 해프닝에 부딪히곤 한다. 사람의 일이란 마치 자연재해처럼  피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해서, 가까워질 때쯤 예측할 수는 있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연의 흐름 앞에 한낱 먼지일 뿐인 우리는 되도록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방비하고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크고 작은 시련을 겪을 때도 그렇다.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최대한 찾아보며 그 순간을 묵묵히 버티는 거다.


  어릴 때는 진부한 말들이 참 싫었는데 커가며 인생과 마주하니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던 그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게 된다. 진부한 것이 진리다. 모두가 겪었기에 귀에 익숙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그 말에는 다 개개인의 다른 사정과 고난이 묻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시국에 힘든 순간을 겪고 있는 모두에게 진부한 말을 하나 던지고 싶다. '인생사 새옹지마',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기를. 나도 당장 지금은 다음 달 월세 걱정하는 인생이지만 사람 일이란 게 또 다 어떻게든 된다니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머리 위에 쌓아놓고 내내 시달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불필요한 걱정은 털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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