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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새 Sep 06. 2020

젊은날의 엄마 그리고 어린날의 나

부모님이 이해가 되는 순간에 눈물이 난다.

내가 열살쯤 스티커 옷입히기가 유행했었다. 스티커로 나의 인형을 예쁘게 꾸미는 것 이었는데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여자애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는 놀이였지만 남자아이들도 '스티커북'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거의 매주 새로운 테마의 스티커가 나왔고 작은건 300원 큰건 500원이었다. 나는 큰 스티커판이 좋았다. 당연히 옷들도 더 많이 있었고 작은 소품까지 디테일하고 예쁜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놀이는 참 인기가 많아서 온갖 노트 또는 문구류까지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스티커북 다이어리'가 등장했다.

네이버 블로그 이미지 참조

가격은 대략 4000원쯤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의 관심을 한번에 받는 것을 좋아했던 모태 관종인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 다이어리가 내손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했다. 겨우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돈이 어딨겠는가?

하루종일 엄마를 졸랐다. 학교가 끝나면 엄마와 함께 밤 9시가 될때까지 가게를 지켰다. 그렇기에 엄마를 조를 시간은 충분했다. 아마 2일정도 졸랐던듯하다. 엄마는 다음에 사주겠다는 대답을 했고 난 그게 언제인지 확신을 받고싶어했던 기억이 있다.


"얼만데 그게 문구점 가서 얼만지 보고와" 드디어 승낙에 가까워졌고 나의 승리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가게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문구점에 1분만에 달려가서 가격을 확인했다. 네모난 글자 안에 4천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기쁨에 부풀어 엄마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나의 기쁨의 거품은 한순간에 꺼지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나 비싸? 안돼"

나는 왜 사줄것처럼 말하고 사주지 않느냐며 엄마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지금 4천원이면 커피한잔 값이지만 어린시절의 나에겐 그리고 그시절 엄마와 나에겐 큰 돈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자영업을 하시는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하고 '돈'에 시달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렇기에 돈이 없다는 말이 나오면 나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그날은 예외였다. 친구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기였고 꼭 그 다이어리가 있어야 친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엄마가 돈이 없다니. 눈물이 폭포수처럼 나왔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꾸깃한 오천원을 주셨고 난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이어리를 사러갔다.

그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티커북 다이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가끔 어린날의 나와 엄마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때가 많다. 이해가 안되었던 엄마의 말들도 이제는 이해가 되고, 어린날의 나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기도하다. 엄마도 어린날의 나도 이제는 다 알수있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아리다. 어차피 그 생각들의 끝은 '지나간 일 더는 생각말자' 이지만 꾸역꾸역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생각의 한 구석을 치고 올라와 끼어앉아있다.


언제쯤 나는 이 시린 기억들이 아련하지 않을까? 언제쯤 덤덤하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과거의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고 과거의 내가 불쌍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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