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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Apr 05. 2024

무엇이 세상을 바꾸었나

사람들과 만나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는,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디자인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이야기한다. 디자이너에게 아이폰은 디자인적 혁신이다. 다음날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기술이 다리를 만들고 달을 가게 했으며 AI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기술이 세상을 재편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기술자에게 아이폰은 기술적 혁신이다.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세상은 도대체 무엇이 바꾼 것일까? 기술일까? 아니면 디자인일까? 둘 다 일까?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 질문에 접근해보려 한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무엇이 맞는지?’ 혹은 ‘어떤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는지’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분야가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왜 자신의 분야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집중하면, 아주 다른 것이 보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디자인이 세상을 바꾸었다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반대로 디자인이 세상의 변화에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뒤쳐졌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분야에 계속 몸담기 위해서는 그 분야는 중요해야만 하고 세상의 변화의 중심이어야 한다. 자신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억지일 수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말이 된다.


이야기와 참여하는 사람이 대화를 구성한다. 무엇이 옳은지, 세상을 무엇이 바꾸고 있는지 등의 정보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람이다. 대화에서 사람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대화 안에 있지 않고 이야기를 타고 이 세상 저 세상으로 둥둥 떠다닌다. 이야기는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고, 어느 세상이든 만들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앞에 있다. 만일 대화 안에 존재하면서 상대방을 볼 수 있다면,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왜 상대방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고 결국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대화가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무엇이 세상을 바꾸었는지 몰라도, 대화는 관계를 바꾼다.


‘무엇이 세상을 바꾸었는지’ 주제로 돌아가보자면, 디자인과 기술은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품을 만들 때는 기술도 필요하고 디자인도 필요하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고 기술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으며, 기술은 그 생각을 실제로 만들어준다. 디자인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탓하지 않고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환경은 기술을 통해 바뀐다. 기술을 모르면 실현불가능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디자인을 모르면 기술을 위한 기술을 하게 될 수 있다.


아이폰은 디자인적 혁신이며 동시에 기술적 혁신이다. 분야와 분야는 밀접한 관련이 있고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세상을 분리된 것들의 조합으로 볼지 아니면 연결된 하나로 볼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세상을 연결된 하나로 본다면 상대방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의 분야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고 대화는 즐거워지고 당신도 얻는 게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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