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제품

자신의 분야와 관련 없는 책 독립출판하기

by 웅사이다

철학책을 썼습니다.

네, 데이터책 아니고 철학책입니다.


왜 철학책이냐고요?

별다른 독특한 이유는 없습니다.

누나와 함께 조카를 돌보며 독립출판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에 마침 제가 저만의 철학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다른 주제로 쓸 걸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방식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기획해서 하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편이죠. 사실 책을 쓰는 것도 누나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을 겁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참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에게 중요한 건 독립출판이라는 형식입니다.

출판사와 함께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있어서 책 쓰기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작년 초 퇴사 후에는 '안 해봤던 것들을 해보자',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와 함께 책을 쓰는 것은 당장의 목표가 되지 못했죠. 하지만 독립출판은 달랐습니다. 독립출판을 잠깐이라도 알아보면 '책 한 권 출간하는데 이 많은 일을 다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거든요. 책 쓰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데다 수익도 크지 않은데, 그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겠다니.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는 셈이죠. 하지만 저는 이 고생을 하나의 경험으로 봤습니다. 회사 생활을 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사소한 도전이랄까요.


책을 쓰는 건 힘듭니다.

책을 한 번 써봤기에 원고 작성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한 권밖에 안 써봐서 오히려 그 고생을 덜 알지도 모르겠네요. 첫 책은 약 8년 전, 28살 때 출판했습니다. 우연히 제 블로그 글이 인기를 얻으면서 책을 쓸 기회가 찾아왔죠. 당시에는 출판사와 함께 작업했기에 출판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제가 할 일은 원고를 잘 쓰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처음 책을 쓰는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AI 열풍이 불던 때라 이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죠. 매일 퇴근 후 동네 24시간 카페에서 새벽까지 글을 쓰거나 코딩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생 끝에 책이 나왔을 때는 기쁨보다 '다시는 책을 안 써야지'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6개월 만에 300페이지 책을 쓰는 건 20대에게도 꽤 버거운 일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원고를 마친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서점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책들은 저마다 하나의 제품입니다. 그 제품들은 독자의 눈에 들고, 단 한 번이라도 손에 잡히기를 기다립니다. 사실 독자는 모르시겠지만, 서점 매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독립출판을 하려면 원고 작성 후에도 내지와 표지 디자인, 인쇄소 섭외와 견적, ISBN 번호 발급, 온·오프라인 서점 입고까지 해내야 합니다. SNS 홍보도 필수죠. 이렇게 보면 책 한 권을 만들어 파는 게 제품 하나를 만들어 파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주 작은 창업 같달까요. 바로 이런 점에서 독립출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쓰는 이유는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면 굳이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 필요가 없겠죠.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쓸 거라면 취미 생활이지 제품이라 할 수 없죠. 제품이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지듯이, 책도 독자가 읽음으로써 완성됩니다. 이 긴 여정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해내야 하고, 모든 활동이 책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모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출판사에 맡긴다면 수고를 덜고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능하다면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냐고요?

책 제목은 <삶에 의문을 가진 당신에게>입니다. 현재는 인쇄소에 샘플을 맡겨 최종 검수 중입니다. 처음 쓰기 시작한 지 반년 정도가 지났네요. 앞으로 이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정리해서 공유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독립출판은 책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경험하다 보니 우당탕탕 할 수밖에 없었죠.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다음 책을 출판할 미래의 제가 참고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