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쓸 것인가

나만의 창작 방법을 찾아서

by 웅사이다
책을 쌓아놓고 요란하게 글을 쓰는 현장


보통 책을 '경험'한다는 말은 서점에 진열된 완성된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라 해도 자신이 쓴 책보다 다른 사람의 책을 접할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 읽기 경험이 집필 경험보다 더 많아집니다. 물론 책을 읽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완독하려면 최소 10시간 이상이 필요하죠. 한 작업에 오랜 시간을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짧은 동영상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 읽기와 집필 중 어느 쪽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지 묻는다면 단연 집필 쪽을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삶에 의문을 가진 당신에게』를 쓰는 데 3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는 시간으로 따지면 100권 분량의 책을 읽는 것과 맞먹는 시간입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을 한 프로젝트에 온전히 투자한다는 것은 여가 생활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죠.


독서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집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씩 새로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 중에는 "나도 언젠가는 책 한 권 쓸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 그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독서와 집필은 서로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과도 같습니다. 한 운동을 통해 단련된 체력이 다른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듯, 독서에 익숙해지더라도 집필은 새롭기만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감각이나 체력이 있다면 시작은 수월하겠지만요.


컴퓨터 화면에 하얀 문서만 펼쳐져 있을 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창작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노하우가 조금씩 자리 잡게 됩니다. 첫 시작은 어떻게 하고 중간에는 어떤 단계를 거쳐 최종 결과물을 얻는지에 대한 감각이 서서히 생깁니다. 비록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않더라도 뇌 속에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마치 달리다 보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글을 쓰려고 앉으면 어느새 글이 조금씩 모습을 갖춰갑니다.


하지만 두 번째 책을 쓰는 상황에서 노하우가 있을 리는 없습니다. 아직 저만의 방법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집필을 시작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어디에서 글을 쓸 것인가"였습니다. 종이에 직접 적을 수도 있고 컴퓨터를 활용할 수도 있죠.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쓸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말 중요한가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코딩을 하든 글을 쓰든 '작업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그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글이 자연스럽게 풀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한 번 익숙해진 환경은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집필 전 여러 환경에서 글을 써보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봤습니다. 처음 시도한 것은 노션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경험 덕분에 노션에서 페이지 하나를 만들어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죠. 노션은 다양한 기능 덕분에 글쓰기뿐 아니라 목표 설정, 작업 관리, 이력서 작성 등 여러 작업을 한 곳에서 처리하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노션에서는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보일지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렵더군요. 왠지 모르게 노션에서 글을 쓰면 책을 쓰기보다는 회사 업무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짧은 글은 괜찮았지만, 페이지가 길어지면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찾아오고, 웹페이지에 글을 쓰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흐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노션에 글을 쓸 때의 버전


여러 제품을 시험해 본 결과, 결국 제가 선택한 작업 환경은 워드였습니다. 저는 최종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상상만으로 작업을 이어가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호해지기 쉽지만, 실제 결과물을 보며 작업하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혹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어 작업 속도가 한결 빨라집니다. 속도가 빨라지면 작업의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워드에서 원하는 내지 디자인을 미리 설정한 후 글을 쓰면, 마치 책에 직접 글을 적어 내려가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습니다. 워드로 정착한 이후로 글쓰기는 한층 가볍고 수월해졌습니다. 하루치 분량의 글을 완성하면 PDF로 출력해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검토하며, 무엇이 좋은지,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차분하게 살펴봅니다.

워드로 내지 디자인을 하고 쓰는 화면


물론, 작업 환경만 정했다고 해서 한 문단을 쓴다고 해서 갑자기 챕터 전체가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은 분명 큰 영향을 미치지만,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 밑에서 자라며 작은 습관부터 가치관까지 영향을 받지만, 같은 집안에서 자란 형제들이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에도 환경을 넘어서는 개인의 특성이 존재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환경 속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시도한 방법 중 하나는 글의 키워드나 주제를 미리 정리해두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키워드를 참고하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글을 전개할 수 있더라고요. 여러 문단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펼치면 독자에게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에 한 지점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초보 작가일수록 글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어 키워드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키워드만으로는 부드러운 글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려 해도 글 전체에 내 의도를 모두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글이나 말로 전달이 어려울 때, 화이트보드 앞에서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와 소통하기 위해 그림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초기 버전의 그림


그림이나 도표는 전체적인 구성을 한눈에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각 부분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의 흐름이나 감정의 섬세한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음악은 그림과 달리 시간에 따라 감정이 서서히 쌓이고 풀리듯, 글도 나름의 리듬과 흐름이 있습니다. '필력이 좋다'는 칭찬은 바로 그런 글의 흐름과 매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흐름이 자연스러우면 단순해 보이는 주제조차도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다 보면 때때로 문장이 끊기고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저는 글의 전체 흐름을 미리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나 음악처럼 작품에도 어느 정도 분량의 제한이 있듯, 하루에 쓸 글의 양을 정해두었습니다. 저는 "오늘은 20문단을 쓰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글을 쓰기 전 노션의 칸반 보드를 활용해 20개의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각 카드에 해당 문단에서 다룰 내용을 간략히 적어두자, 전체적인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나서 20개가 38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도 좋았지만 글쓰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흐름을 적어놓으니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들었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졌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작업하다 보니, 책을 쓰는 동안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또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독서를 시작하니,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읽게 되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면서, 더욱 자유로운 마음으로 독서에 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글도 점차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창작라는 행위는 단순히 내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을 쓸 때 독서를 게을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말이죠.


책을 읽는 시간은 저에게 한없이 포근한 휴식과도 같습니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안락한 소파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마음 한켠에서 잔잔한 위안이 스며듭니다. 반면 책을 쓸 때는 긴장감과 함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필 과정을 통해 책 읽기와 책 쓰기가 서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읽으면 쓸 게 생기고, 쓰다 보면 더 잘 읽히게 마련입니다.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인생이 풍요로워진다고 느낍니다. 살면서 탐험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탐험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무엇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결코 알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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