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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을 떠나며

일상을 떠나

by 웅사이다

오랜만에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탔다. 사실 3주나 되는 휴가를 쓰기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길게 휴가를 쓴 건 처음이기 때문에 부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없어서 안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리 먼저 해놓고 내가 없어서 너무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많은 것을 챙겼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무리를 하게 됐다. 여행 전날에 갑자기 몸이 아픈 건 아마 그런 이유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행기에서 아팠다면 너무 서글펐을 것 같으니까.


이 여행을 떠나게 된 건 우연이었다. 평소에 유럽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해외에 나가는 것에 대해 마음 속에 벽이 있다. 지금까지 해외를 나간 건 모두 따라서 간 여행이었다. 가족을 따라서 가거나 회사 사람들을 따라서 갔었다. 그렇게 따라간 여행에서는 준비를 많이 안 해도 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고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나의 책임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나 싶다. 일할 때는 누구보다 두려움 없이 척척 나의 길을 걸어가지만 이상하게 여행에서는 그게 안되더라. 그래서인지 해외 여행에 대한 기대나 욕망이 적었다.


오랜만에 누나를 만나서 고기리 막국수를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부쩍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돈을 번 뒤로 가장 만족감이 컸던 소비는 역시 음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와인과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워서 ‘돈 벌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너무 일만하며 살기도 했다. 자그만치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달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내가 어딘가 다른 곳에 가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에서는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다 (특히 와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누나에게 말하니 누나가 프랑스를 추천했다. 하지만 프랑스를 간다면 가서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결국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누나가 같이 가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파리로의 여행이 정해졌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정신없이 일을 하고 중간 중간 여행 관련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지금까지 왔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지금이 마음이 참 편하다.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뭔가를 미리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됐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니 그런 점이 싹 없어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뭔가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정말로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다가 막상 그 때가 되면 마음이 편해지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내가 비행기에 타는 순간 좋아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offline 상태가 되었다. 세상과 끊어진 상태말이다. 평소에 카톡, 슬랙,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묶여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는데 익숙해져있었다. 이렇게 오프라인이 될 때면 왜 그렇게 살았나라는 생각을 꼭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다. 현대인의 숙명이지 않나 싶다. 24시간 끊임없이 연결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건 고통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를 세상과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전혀 없다.


사람은 독립적 존재이면서도 세상에 속해있는 존재이며 이 두 가지는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독립적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있어 미숙하다. 그래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 정말로 내가 해야하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른채로 나이만 들어가나 보다. 100살을 살아도 마치 30살 같은 인류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성숙은 느리고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 같다.


느린 성숙의 영혼을 들고 변하지 않는 도시 파리로 간다. 전혀 다른 문화의 공간이고 과거의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낭만의 도시 파리. 성장의 굴레에 묶여서 원하지 않아도 성장을 해야하는 우리에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라고 물어보는 도시이길 기대한다.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이나 날아가서 결국은 나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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