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정체성 연구소 : 제발 그만 좀 해! (1)
소소는 아침 일찍 일어나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꿈같아요. 시끄러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지신의 공간이 이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문뜩 떠올라요. 악몽을 꿔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은데 현실이란 생각에 침대 밖으로 몸을 움직이기 싫어요. 한참을 멍하니 자신의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냐롱이를 물끄러미 쳐다봐요.
‘달팽이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소소는 협탁 위 작은 시계가 알람을 울리려는 순간, 재빨리 손을 뻗어요. 알람이 울릴 뻔했어요. 냐롱이의 달콤한 잠을 지켜주고 싶어요. 소소는 기지개를 켜고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와요.
해가 소소 머리 위해서 눈부시게 반짝거려요. 소소는 눈을 찌푸려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앞으로 걸어가요. 지나가는 길목에 꽃들이 피고 새싹이 자라 순식간에 나무로 변해요. 소소는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가요.
어느새 소소는 [정체성 연구소]에 도착해요. 5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해요. 5층까지의 긴 계단을 평소처럼 천천히 하나씩 밟고 올라가요. 각 층마다, 갓 구운 빵 냄새와 커피 향이 진동해요.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소소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넓은 창밖을 바라봐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여요. 소소는 답답해요.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벌써 머리가 아파요. 소소는 가장 편한 소파에 앉아요. 잠시 눈을 감아요. 밖에서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벌컥 문이 열려요.
“소소님, 카페인 잔뜩 든 커피와, 갓 구운 유기농 소금 빵이에요.”
소소는 눈을 감은 채 입을 떼요.
“신선한 과일은요?”
“소소님, 과일은 있지만, 시간이 걸려요. 갖다 드릴까요? 오늘 예약하신 고객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만요.”
“알았어요. 5분 후 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
“네, 소소님. 싱그러운 하루 시작하세요.”
소소는 주머니에서 겉이 까맣게 변한 바나나를 꺼내 반쯤 베어 씹다가, 탁자 위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셔요. 입안에서 맛있는 바나나커피가 만들어져요.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요.
“소소님, 101번째 고객님 들어가세요.”
소소는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쳐다봐요. 미간에 고객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살짝 힘을 줘요.
빨간 원피스, 호피무늬 힐, 유난히 큰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여러 번 덧칠한 듯한 탁한 빨강이 소소의 눈에 천천히 들어와요. 고객은 소소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맞은편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아요.
“고객님, 성함이 정숙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호호호. 소문 듣고 왔어요. 꼭 찾아주세요. 제가 누구인지 정말 찾고 싶어요. 소소님.”
“네, 지금부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찾도록 도와드릴게요.”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하세요. 정숙님의 일상을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정숙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기 위해 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준비운동을 해요. 커다란 빨간 입술을 쭉 내밀다, 위아래 입술을 서로 맞물리기를 반복해요. 소소는 정숙의 빨간 입술이 공중에 떠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여러 개의 입술이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하며 그 입술에서 소리가 나기를 기다려요. 아주 조용히, 아주 다정하게 바라보면서요.
“제발 그만 좀 해! 이 말이 아니었으면 저는 몰랐을 거예요. 제발 그만 좀 해! 라고 들어 본 적 있어요? 그 말 때문에 [정체성 연구소]까지 오게 됐어요. 저는 말이죠. 제가 누구인지 궁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제 일상은 그야말로 평화였어요. 제발 그만 좀 해! 라는 말을 듣기 전 까지는.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 감정이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어요.”
소소는 조용히 질문해요.
“누가 그 말을 했어요?”
정숙은 한참을 뜸 들이다 말해요.
“남편이요…….”
“남편분이요?”
“아들…….”
“아드님이요?”
“딸…….”
“따님이요?”
소소는 다시 질문해요.
“이 말이 아니었으면 저는 몰랐을 거예요. 라고 하셨잖아요. 몰랐다는 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아니에요. 그 말을 제가 했어요? 미쳤나 봐. 생각에도 없는 말이 가끔 툭 튀어나와요. 제 생각이 아니에요. 그 말은 빼 주세요. 편집 부탁드려요.”
“영상편집은 제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꼭 전달해 드릴게요.”
“들어오기 전에 사인했거든요. 촬영된 영상을 1년간 보관해도 된다는 개인정보수집이용동의서예요. 1년 맞죠?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읽었나 모르겠어요. 지금도 저 너무 떨려요.”
“맞아요. 잘 읽으셨어요.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이 영상으로 남겨집니다. 대화도요. 정체성을 찾아 드리는 자료로 쓰일 뿐이에요. 모두 비밀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안심하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알면… 어떻게 되나요?”
소소는 고민해요.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같은 대답을 하기도 하고 가끔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해요. 보통은 상담이 끝나고 받는 질문이라, 대답은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고객의 마음을 전부 들여다보고 난 후 받는 질문은요. 그런데 오늘은 그 질문을 빨리 받아요. 소소는 머리를 굴리다, [정체성 연구소] 행동 강령 16조를 생각해요. 가장 담백하고 균형 있는 대답은 자신의 생각을 뺀 나머지일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특별했던 일상이 평범해지죠.”
소소의 대답에 정숙은 미소를 보여요. 무슨 뜻인지 모를 때 보이는 고객의 반응이에요. 소소는 알아요. 회사의 행동강령 16조는 고객을 당황시켜서 다음 이야기를 빨리 들을 수 있게 만든 업무 효율성과 수익을 높이기 위한 것을요.
“네, 알겠어요. 제 이야기 시작할게요.”
정숙의 호피무늬 구두를 부드럽게 쳐다보며, 소소는 자신의 생각을 소리 없이 말해요.
‘정체성을 안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지만,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요. 행복할 수도 있지만, 심각한 경우 아주 큰 부작용도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정숙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을 포기할까 봐, 조심스러워요. 정직하게 말하고 싶지만 실적도 중요해요. 여름휴가를 아주 먼 곳으로 갈 계획을 이미 세워서 인센티브를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다른 직원보다 실적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그동안 부작용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해 고객들이 다시 집으로 가곤 했어요. 이제 전 혼자가 아니에요. 냐롱이, 코끼리아저씨, 강아지까지 가족이 생겼어요. 미안해요. 부작용에 대한 내용은 고객님의 결제가 끝나고 14일이 지난 후 우편으로 꼭 발송해 드릴게요. 약속해요.’
저 또 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by wo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