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씨앗 · 나의 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대개는 못생긴 사람이 꾸며봤자 소용없다고 비꼴 때 쓰던 말이지.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다르게 읽고 싶어.
호박 씨앗은 호박으로 자라면 될 것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호박인 나에게 수박 줄을 그으려 애쓰지 않았나 싶어.
“의사, 판사"가 이상형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연예인, 유튜버"라는 새 줄을 긋지.
모양은 바뀌었지만, 내가 아닌 남의 껍질을 뒤집어쓰는 건 여전해.
결국 이 말은 겉치레로 본질을 속일 수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 줄 긋느라 지치지 말고, 나에게 맞는 돌봄을 택하자.
내가 호박이면 수박이 되는 기적을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호박이 가장 달콤한 호박이 되게 할 수는 있지.
그러려면 내가 수박인지, 호박인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지.
내가 겪은 결핍과 상처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작은 성취를 반복할수록 신뢰가 쌓이는 분야는 무엇인지.
긴 생애에서 한 번의 완성은 없어.
우리에겐 완성의 기술보다 순환의 기술이 필요해.
씨앗-발아-성장-수확-휴식-다시 파종.
한 직업을 평생 붙드는 시대는 끝났어.
여러 번의 작게 다른 수확을 거두는 시대가 온 거지.
그래서 일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해.
"요즘 뜨는 직업인가?"보다 "내가 가진 씨앗에 맞는 토양인가?"를 먼저 물어야 해.
나는 빠른 변화 속에서 에너지가 나는지, 안정된 반복에서 빛나는지.
혼자 일할 때 편한지, 함께 일할 때 좋은지.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
농부는 내일의 날씨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돌봄에 집중해.
씨앗을 심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성실하게 가꿀 뿐이지.
그러다 어느 날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펼쳐지고, 꽃이 맺혀.
남이 키운 수박밭을 부러워할 필요 없어.
내 호박밭을 소중하게 가꿀수록 탄탄해져.
그 탄탄함이 기회라는 바람을 만날 때 우리는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아.
그러니 오늘도 한 줌의 흙을 부드럽게 뒤집는 마음으로,
그렇게 씨앗처럼 너를 키워가자.
남의 줄이 아니라 나의 결을 따라, 오늘도 내 호박밭에 물 한 바가지.
- 나는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를까?
- 내 상처가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는 순간은 언제였지?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천천히,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는 거니까요.
오늘 하루, 나는 호박인지 수박인지 고민하기보다
나는 어떤 호박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당신의 씨앗이 가장 달콤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지금도 어른이 되는 중 - 나이를 먹는 일과 어른이 되는 일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