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by 아스파라거스



내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공감을 하거나 극복을 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내 안에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햇볕이 따가워도 녹지 못하는 눈처럼 쌓여있어

그것을 어딘가로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이다.


그러니까,

이건 성명불상의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번데기에서 성체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벗어 놓은 그 허물을 읽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다.

다른 글로부터 마음에 드는 문체를 베껴야 하는,

파티가 끝난 뒤 남의 코트를 자기 코트인 척 몰래 입고 나와

내 집에 벗어두는,

그런 수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그냥 독서를 즐겨하지 않을 뿐이다.


변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금 교보문고에 와있다.

왜인지 사서 읽는 책 보다 서점에 죽치고 앉아 보는 남의 책이

더 잘 읽힌다.

그러나 죽치고 읽던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일을 나는 막을 수가 없다.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를 하러 갔다가 하루 종일 같이 놀았던

강아지가 내가 돌아갈 즈음이면 어떻게 알고는 발 근처로와

유난히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 나는 그 눈빛을 뿌리치지 못하듯이

그 짧은 시간에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온 책을 나는 계산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 안에 무언가가 타오른다.

꽤 괜찮은 허물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