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에서 직장인까지 실패표류기
오랜 기간 취업준비생으로 살았다. 이 말인즉슨, 여러 번 취업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제출한 이력서의 개수를 세어보니 300개가 족히 넘는다. 아무리 청년실업이 심각하다지만 연이은 취업 실패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취업준비생, 돈도 없고 해야 할 업무도 없지만 그 누구보다 바쁘다. 하루 한 개의 이력서를 내며 분주히 시험을 보러 다니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소득이 없는 분주한 하루의 연속이다. 평일이 따로 없듯 주말이라는 개념도 따로 없다. 뿌듯함도 보람도 없다.
눈만 뜨면 이력서를 쓰기 바쁘던 3년 전, 운이 좋게 지인의 소개로 작은 공공기관에 합격했다. 아니 합격한 줄만 알았다. 인수인계받을 날만을 기다리며 출근해서 잡일을 도왔다. 한 달이 지나도록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고, 일을 소개해준 지인의 사과만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공공기관 높으신 분의 가족에게 그 자리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엑셀도 다룰 줄 모르는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에게. 채용비리는 멀리 있지 않구나. 돈도, 배경도, 직업도 없는 나는 서러움에 북받쳤다. 일만 하게 해 달라! 일 좀 하고 싶다!
한 달의 잡무는 아르바이트 비로 받았다. 취업한 줄 알고 좋아하던 가족들의 눈을 어떻게 쳐다봐야 하나.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놨던 돈만 갉아먹고 있으니 불안할 뿐이다. 직장인도 아니지만 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땐 직장만 들어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다. 합격 문자를 보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아마 그때쯤이었나 보다. 직장인의 고통은 따로 있다는 것을. 처음엔 업무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하는 일들은 새롭고 머리는 하얘진다. 배운 업무를 적응할 틈도 없이 새로운 일이 주어진다. 나보다 연차가 많지만 나이 어린 선배한테 깨지면서도, 뒤돌아서면 자꾸 업무를 잊어버리는 나를 보며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자괴감 느끼는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업무보다 더 힘든 건 상사의 괴롭힘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성격이 이상하기로 악명 높은 상사를 하필 신입사원일 때 만났다. 인맥도 직장생활의 짬밥도 없던 나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에 만만한 상대였다. 집중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작년 여름,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생긴다고 해 나름 기대했다. ‘괴롭힘 방지법’이 나를 지켜주리라. 혼내기 위해 나를 부르는 상사 앞으로 녹음기를 몰래 켜고 들어갔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내 귀에 들리는 ‘씨’와 입모양만으로 ‘발’을 외쳤다. 아, 이 분위기와 공기가 녹음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능적인 상사의 갈굼을 당하며 ‘괴롭힘’이라는 게 얼마나 모호하고 추상적인가. 나만 괴로울 뿐이다.
몰래 화장실에 가서 네이버와 구글에 ‘직장생활 버티는 법’을 검색해본다. 직장생활 조언을 읽는다. 그래, 다음부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처세를 해야지. 어려운 업무를 할 때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해야지. 1초간의 다짐을 한 후 한숨을 쉰다. 다시 핸드폰을 켜고 ‘꼰대들의 심리’를 검색해본다. 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은 만 2년 사이에 형성이 되는데, 그때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만 2년의 시기를 보내면 성격도 불안해지는 것이다. 한 살짜리의 또라이 상사의 어린 시절을 잠시 상상한다. 애착형성도 못한 불쌍한 놈이었구나 하고 측은지심을 가져보지만, 그래도 나를 갈구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그저 하루빨리 금요일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며 순간순간을 버틸 뿐이다.
금요일 저녁, 못다 한 업무를 미루고 퇴근을 한다. 그래도 남은 주말 이틀이 있어 숨을 쉴 수 있다. 치맥을 시키고 평일에 보지 못한 예능을 다운로드한다. 치느님과 함께 하는 예능을 앞에 두고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잠시 깨닫는다. 부른 배를 투닥거리며 잠을 청한다. 토요일의 아침햇살을 맞으며 평온하게 잠에서 깬다. 못다 본 예능도 보고 밀린 집안일도 한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모처럼 여유를 만끽한다. 일요일 오전,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했으나 아직 하루가 남아있다. 하지만 오후로 넘어가면서 마음의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갈 때 악몽을 꾼다. 참신하게도 꾼다. 박쥐 떼가 날아가는가 하면 호랑이가 찾아와서 말을 걸고,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 떼가 출몰한다. 어떤 살인자에게 쫓기는가 하면 20년 전의,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구와 싸운다. 꿈들을 엮어서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렇게 꿈을 꾸다 보니 일어나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 다이어리에 적기 시작했고, 꿈 해몽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왜 하필 월요일 아침에만 꾸는 것일까, 월요일이 오는 걸 필사적으로 막는 나의 본능도 참 가지가지한다.
악몽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회사 가기 싫은 마음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결국 은행 어플을 켜고 통장잔고를 본다. 통장잔고가 매일매일 줄어들던 취준생 시절을 다시 떠올리며 출근 준비를 한다. 그래, 통장잔고가 여유로워지면 나의 삶도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며 다짐을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