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동굴에서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것처럼 나는 직장에서 눈칫밥 먹고 사람이 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눈치가 있냐 없냐'로 나눠지는 것이라면 백수였던 나는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 있었고, 말은 생각나는 대로 크게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나왔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화가 나면 화를 냈다. 이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었고, 사회는 이런 철부지를 받아주는 곳이 아니란 걸 그땐 잘 몰랐다.
직장인이 되기 전 나름 사회생활이라고 했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는 ‘언제든 마음먹으면 때려치울 수 있는 곳' 정도로 여기며 '나 같은 고급인력이 오랫동안 있을 곳'은 아니라는 겸손치 못한 생각이 늘 언저리에 깔려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시작하게 된 첫 사회생활. 인간들의 조직세계가 갖는 무서움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장생활은 단순히 일만 잘해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눈치가 없으면 눈뜨고 코 베이기 십상인 곳이었다. 회사는 일을 못하는 순으로 욕을 먹는 게 아니라 눈치가 없는 순으로 욕을 먹는 곳이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직장 선배가 전달하는 나의 평판에는 본인의 주된 생각을 '다들'이라는 표현으로 덧칠하며 나를 깔아뭉갰고,
"나는 네가 이런 일로 욕먹는 게 속상해"
나를 향한 걱정 어린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 말과 안쓰러운 눈빛 깊은 곳에는 이간질에 재미있어하는 못된 심보가 들어 있었다.
직장생활을 견디며 나는 태생이 조직적이지 않음을 격렬하게 느끼면서도 버티며 조직생활에 적응해갔다. 누군가를 욕하는 자리에 끼게 되면 상황에 동감하면서 동조하지 않고 은근하게 그 자리를 나와야 했고(티 나게 그 자리를 벗어나면 화살이 나를 향해 오더라), 상사의 이유 없는 갈굼에 앞에서는 수긍하면서도 자리에 돌아와 티 나지 않게 노조 명함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동료직원의 무례함에 잔뜩 예민해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별일 없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렇게 뻔뻔해지면서 나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곰이 마늘을 100일간 먹은 것처럼 나는 짬밥을 먹은 만큼 인간으로 성장했다.
"남의 돈 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
견디고 눈칫밥을 먹으며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얻은 건 월급이다. 내 월급에는 단순한 노동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사에게 먹은 욕 값, 동료들의 눈칫값 그 모든 걸 참아낸 나의 인내심 값 등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고, 결혼을 해서 살림을 꾸려나간다. 엄마의 화장대에는 회사 입사일 회장과 찍은 사령장 사진이 펼쳐져 있고, 합격 날 받은 축하난초 사진은 엄마의 오래된 프로필 사진이다. 직장을 통해 '인간'이 되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나는 '사람 구실'하고 있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월요일 아침의 피곤한 눈으로 터벅터벅 일터로 나가봐야지만 금요일 퇴근의 경쾌한 발걸음을 느낄 수 있고, 별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는 상사의 모습을 보며 늘 나를 먼저 배려해주는 가족의 모습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직장생활이 ‘괜찮았다 안 괜찮았다’의 반복이지만, 안 괜찮아 힘들 때 슬퍼하고 고민하며 보다 인간스러워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