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글이다
나의 작은 습관_정용하_
나는 오래 전부터 지녀온 작은 습관 하나가 있다.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다.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두툼한 플래너를 학교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적고 다녔다. 물론 처음에는 공부계획, 하루 일정 등 말 그대로 ‘계획을 세우는 용도’로만 플래너를 사용했다. 그런데 나는 플래너에 한 가지를 더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생각’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아서일까. 머릿속에서 무의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그때그때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아마 그러다보니 ‘생각쓰기’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나는 메모하는 습관을 군대에까지 가져갔다. 훈련병 시절,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휴일에도 빳빳한 침상 위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아빠다리를 한 채로 앉아있어야 했다. 입대 전까지의 내 생활습관은 모두 무시된 채 완전히 새로운 군대식 습관을 강제로 몸에 익혀야 했기 때문에 그때만큼 마음이 불안정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요동치는 나의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 것도, 바로 메모였다. 나는 나의 불안정함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하나둘 메모장에 빠짐없이 적기 시작했다. 그때 메모했던 것들을 이제 와서 들춰 보면 느낌이 새롭다. 뒹굴고 구르고 배고파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자대에 가서도 나의 습관은 계속 유지됐다. 이등병 시절부터 모든 것이 귀찮았던 말년 병장 시절까지 손바닥만 한 메모장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밤 10시 취침시간만 되면 나 혼자 조용히 생활관을 빠져나와 연등을 자처했었다. 그 시간에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또 전투복 상의 가슴 부분에 조그맣게 포켓이 있었는데, 나는 항상 거기에 메모장과 펜을 넣어 다니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전역할 때 가지고 나온 메모장의 개수만 열 개가 넘었으니, 엄청난 메모광이었던 셈이다.
대학교 휴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글쓰기에 도전하였지만 글쓰기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늘 글쓰기를 습관처럼 하고 있었다. 이미 내 생각을 적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을 문득 자각할 때면, 참 역시나 습관은 무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믿음이 있다면, 나의 메모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크게 써먹을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금은 메모장 대신 스마트폰으로 그 습관을 옮겨왔다. 앞으로도 나의 메모하는 습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문득 적어낸 한 줄의 메모가 내 글쓰기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6_05_13_금_순간을_글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