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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19. 2017

단비가 내렸으면

감성시

  "다트 던지고 가세요!"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내려가는 길에 한 여자가 성큼 다가와 내 앞을 막아섰다. 여자는 자신의 몸집보다 큰 홍보용 팻말을 들고 있었다. 흔한 방식이었다. 학교 축제였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랬기에 더욱 눈에 띄지 않게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을 빠져나가려 했던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셈이다. 나는 상대방이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도록 가볍게 미소를 짓고 지나치려 했다. 삐끼라 불리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는 지나치려던 나를 다시 한번 막아섰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저기 다트 던지고 가면 번호를..."
  여자는 조심스런 기색이 역력했지만 꽤 당당하게 나왔다. 그리고 밝은 미소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조금 있다가 수업 때문에 학교 다시 올라오는데, 그때 들릴게요. 정말이에요."
  "정말요? 꼭 들려주실 거죠?"
 물론 아니었다. 면피용 대답이었다. 
  "네."
  나는 여자에게서 간신히 벗어났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캠퍼스를 걸어 내려왔다. 그런데 학교 정문에 다다랐을 즈음, 환한 미소를 머금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좋았다. 그게 진심이 아니었을지언정 누군가가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것저것 물어봐 주는 게. 여자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온기가 전해졌다. 그렇다. 지금 나의 심리적 상태는. 대지로 말하자면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을 갈구했다. 오늘, 그 여자에게 나는 수많은 삐끼 대상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뜻하지 않은 호의를 받게 되어 정말 기뻤고, 여자에게 감사했다. 

  오늘 하루 내내 곱씹을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 단비가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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