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평생 친구.

두 번째 기록.

by 작가 정용하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give & take가 되는 친구’

‘나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좋아해주는 친구’


그동안 내 나름대로 진정한 친구에 대해 정의를 내려왔던 것들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정의 또한 달라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제는 이 세 글귀로 굳혀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한번 내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평생 친구하자’라는 무수히 많았던 외침들. 그렇게 약속 아닌 약속을 해가면서 얼마나 많은 ‘평생친구들’과 사겨왔는지. 그리고 또 지금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남게 되었는지. 하지만 대부분 그 ‘평생친구’들은 소원해졌거나 잊혀졌거나 스쳐지나간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 그때는 그렇게 영원할 줄만 알았던 우리의 관계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사실 진정한 친구, 평생친구라는 말 자체가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에 다른 사람보다 유독 좀 더 친하게 지냈던 것뿐이다. 그게 세월이 지나가면서까지 이어질 거라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왜 둘의 관계가 영원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 ‘평생친구’란 말이 우리 둘의 심리적 유대감이 좀 더 가까워졌다는 말뿐이지 않았을까. 그 때의 그런 애틋했던 감정이, 그대로 이어져 온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술 한 잔 거하게 마시고, 어깨동무하고 비틀비틀 걸으면서 ‘평생친구’하자고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 지금은 서로의 생사만 확인한 채 연락을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상처를 입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관계라는 것이 평생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고,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받았어야 할 상처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것 때문에 가졌던,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이제야 네가 나한테 연락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락 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충분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그렇다 해도, 연락을 하지 않는 것 자체에 서운해 하고, 심지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내게 너무 미안한 짓이다.


우리 앞으로 이제, 그냥 이렇게 생각하자.


‘그때는 우리가 친했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 상황이 이렇게 돼서 마음이 조금 멀어졌구나.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우리,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만나자.’


의연하게, 과거에 함께 했던 추억에 감사하며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는 것은 어떨까.


-보편적 감성,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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