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2015.12.22

by 작가 정용하



짝사랑


미련이란 걸 알고 있다. 지금 그녀에게 연락을 해봤자, 답장 자체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설사 온다고 해도 냉소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공간과 상황에서 그녀가 불쑥-하고 떠오를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 ‘수신차단’ 목록을 들어가 화면 위를 만지작거린다. 수신차단을 풀까? 말까?


‘혹시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잠시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가끔, 절대 연락을 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가 일순간에 무너진 적도 있었다. 잘 지내냐는 뻔한 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속보이는 말을 그녀에게 건넸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그녀의 거절. 그것과 함께 돌아왔던 건, 후회라는 감정뿐이었다.


사실 그녀를 잊어보려고도 많이 노력했다. 가장 먼저 그녀의 번호를 스마트폰에서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번호는 마음속에 낙인처럼 남아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군복무 시절, 수도 없이 그녀의 전화번호를 눌러댔던 지난날들. 그녀의 번호는 얼마 되지 않아 거기가 원래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 돌아와 있었다.


그 다음, 그녀의 번호를 수신차단한 것이 내 두 번째 노력이었다.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도 강하게 쳐내겠다는 굴뚝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수신차단은 언제든지 풀 수 있었다. 어느새 수신차단을 풀고 있는 내 모습. 언제쯤 이 짓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한 가지 정말 억울한 건 그녀가,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개팅 자리가 가끔 들어와 만나게 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소개팅녀와 그녀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었는데······.’, ‘그녀는 통하는 게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나는 몹쓸 버릇을 하나 키우게 되었다.

최근에도 그녀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1년 정도 사귀었던 남자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면서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돌아온 말은 또다시 나를 천하의 등신으로 만들었다.


“난 이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


나는 도대체 왜 또 연락을 한 것일까.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스스로 아무리 자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난 연락을 해버린 상태였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연말이라 그런 것 같다. 요즘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 이유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말은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또 후회하겠지. 난 왜 후회할 행동만 하게 되는 것일까.


으이구, 등신아.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