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3편 '듣기'

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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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집 3편 '듣기'


주위를 둘러보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은 계속 말하고, 듣는 사람은 계속 듣고만 있다. 서너 명 모인 자리엔 듣는 사람이 한 명씩 꼭 껴있고, 그 사람 중심으로 대화의 흐름이 흘러간다. 굿 리스너. 어쩌면 그것은 타고난 운명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이야길 듣기만 할 수밖에 없는 운명. 내가 바로 그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것을 풀어놓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다. 누구 하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가슴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은 없고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만 엿보는 것 같다. ‘힘들다’ 말하면 ‘내가 더 힘들다’라며 옆 사람과 경쟁하듯 바로 치고 들어온다. 누구 하나 ‘힘들었겠네’ 하며 토닥여주는 이가 없다. 그것은 반대로 내가 내 이야기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란 뜻이다. 나도 정말 어렵게 말을 꺼낸 건데 상대방은 자기도 힘들다고, 아니 자기가 더 힘들다고 나의 말을 싹둑 자른다. 내가 거기다대고 어떤 말을 더 꺼낼 수 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그냥 나는 듣기로 했다. 들어주다 보면 언젠가 내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주진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그런데 사실 내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딱히 할 말은 없다. 내가 듣기만 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나의 삶엔 남들에게 감동을 줄 만한 에피소드가 없기 때문.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어 부모님께 감사하고, 세상에 감사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 오면 사실 꽤나 당황스럽다.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기승전결에 맞추어 잘 이야기하는 사람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삶에 그렇게 투정부릴 일도, 신나는 일도, 우여곡절도 많을 수가 있을까. 내게 특별한 일이라고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인데 그마저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고, 막상 사귀어봤자 한 달이 못 가서 깨지기에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남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그 말에 격한 리액션을 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도 내가 그 자리에 껴있단 사실은 알려야 하니까. ‘아 진짜’, ‘와 대박’, 이런 말만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다.


듣는 것이 내겐 여심을 사로잡는 나만의 무기이기도 하다. 단둘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몸을 기울이고 눈을 쳐다보며 묵묵히 듣고 있으면, 상대방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놓는다. 말 중간 중간에 ‘응’, ‘그랬어?’ 같은 리액션을 끼워 넣고 할 말이 떨어진다 싶으면 나름의 질문을 해서 자연스럽게 말의 물꼬를 튼다. 그 질문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듣고 있을 땐 무엇보다 듣는 시늉이 중요한데 리액션을 많이 하는 건 자칫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자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결정적인 건 표정인데 상대방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것에 맞추어 밝은 표정을,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 싶으면 그것에 따라서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따뜻한 눈 마주침이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찡찡거리거나 상대방이 듣던 말던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는 사람의 이야긴 잘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이 누구든 앞에만 있으면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대체로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고 또 반복적이며, 상대방의 조언이나 공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 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이야긴 아예 처음부터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언제 한 번, 아는 선배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 간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선배의 여자친구도 동행했다. 그 여자친구는 나의 학교 후배이기도 해 우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한식집에서 풍성한 오색반찬에 밥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기운이 빠져버렸다. 나를 앞에 두고 선배와 선배의 여자친구가 경쟁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기 때문. 마치 고해성사의 시간인 것처럼. 선배는 여자친구의 말을, 여자친구는 선배의 말을, 서로 일절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오늘 회사에서 사업계획서를 짰는데...”

“오늘 애들이 너무 말썽을 피워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둘은 아무런 반응도, 따뜻한 눈 마주침도 없었다. 그저 앞에 앉은 나만 보며 이야길 이어갔다. 도대체 둘이 어떻게 사귀는 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사람은 간만에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표정이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하지만 내겐 그다지 즐거운 자리가 아니었다.


듣는 일이 상대방에게 금세 호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나는 할 말이 있어도 부를 친구가 따로 없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혀 북받쳐 오를 때도 오로지 나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 친한 친구라고 해서 전화를 걸어 봐도 어차피 나는 어느새 상대방의 이야길 들어주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통한다는 감정이 들겠지만 사실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 상대방은 그저 그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내가 그렇다.


어쩌다 보니 이제 나는 내 얘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의지하면서 내 얘길 털어놓기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어차피 듣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애초에 꺼내질 않게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나보다. 가슴속 깊이 할 말은 꾹꾹 쌓아두었는데 털어놓을 곳이 없다 보니. 내 얘길 들어주는 건 이 하얀 종이밖에 없다.


결국 나는 듣는 일을 숙명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 정용하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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