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인터뷰
[우리들의 이야기] 나랑 협력하자 - 47퍼센트님과의 인터뷰
사실 47퍼센트님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 어언 반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부족하단 핑계로 인터뷰 정리를 미뤄왔다. 의식 저편에 묻어둔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다시라는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이번엔 마음을 굳게 먹고 사람 만나는 일을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아무리 방황해도 나의 자리는 결국 이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공감을 하고, 또 따뜻한 온기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내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나는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또 그것에 힘을 얻는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
당시 47퍼센트님은 안암역 고려대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셨다. 인터뷰 장소를 병원으로 해도 괜찮겠냐는 47퍼센트님의 말에 솔직히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어디가 아프신 걸까 걱정이 되었다. 평일의 초저녁, 나는 고려대 병원 로비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47퍼센트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47퍼센트님은 본인보다 다소 큰 환자복을 입은 채,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카페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취준생이었다. 요즘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 라는 질문에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전반적인 인생 이야기를 해주었다. 낯선 사람에겐 하기 어려운 그런 말들까지. 안타깝게도 그런 말들을 인터뷰에 담긴 어려웠다.
용하: 앞으로의 방향은 어찌 되나요?
47퍼센트: 지금 제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책을 쓰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책 작업을 하다 보니까 책을 좀 더 쓰고 싶어졌어요. 제가 쓰고 싶은 주제 중에 하나가, ‘일상 내 멜랑꼴리’라고 해서 ‘직장 내 성폭력’을 다뤄보려고 하거든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어요.
용하: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47퍼센트: 생각이 너무 많아서 말도 하고 싶고, 표현도 하고 싶고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창구는 글인 거 같아서요.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제가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게 또 책이더라고요. 제가 병원에서 암이라는 소리를 딱 들었을 때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여기서 제가 책을 내본 경험을 쌓는다면 다음에 책을 낼 때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용하: 그럼 앞으로도 작가로서의 꿈을 가지시는 거예요?
47퍼센트: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작가는 할 거 같아요. 삶을 살면서 느꼈던 화두를 계속 글로 쓰고 싶어요. 그거를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글로 남기고 싶어요. 제 생각이나 느꼈던 감정들을.
용하: 아, 그럼 다른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거네요?
47퍼센트: 그렇죠. 다른 일을 하면서 하고 싶어요. 그게 어린이나 청소년과 관련된 일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분명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럴 때 저작 활동을 하고 싶어요. 책은 저에게 숨통과 같은 거예요.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을 어디다 매번 호소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글이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초 암일 수도 있다는 지방 병원의 소견을 듣고 곧장 상경하여 고려대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후 나온 검사결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나와 인터뷰를 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 절차를 밟았다.
용하: 그럼 취업 준비생이면 지금은 뭘 준비하시는 거예요?
47퍼센트: 일단 남들 하는 거 다 해보자, 해서 공기업 위주로 취직 준비를 해봤는데, 솔직히 상반기 때는 공부가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아직 하기 싫어요. 시작할 때 확 시작하려고 미루고 있어요. 지금은 아픈 김에...(웃음)
용하: 취미가 많으실 거 같아요.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가요?
47퍼센트: 음...취미는...상상하기? 그림이 됐든, 글이 됐든,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 노트만 해도 몇 권이 되거든요. 학교 다닐 때도 사실 공부하려고 공책을 샀다가 뒤에는 다 아이디어로 가득 했거든요.(웃음) 이런 건물도 지어봐야지, 이런 것도 해봐야지. 부문을 가리지 않는 상상하기? 그게 취미인 거 같아요. 그럴 때 제일 재미있고.
용하: 그럴 때 가장 행복하세요?
47퍼센트: 네. 행복하죠. 행복의 원천인 것 같아요. 상상을 왕성하게 할 때 건강한 것 같아요.
용하: 심적으로 지칠 때가 언제 오고, 누구에게 털어놓는지.
47퍼센트: 심적으로 힘들 때는, 마냥 불안하거나 의욕이 없거나 목표가 상실될 때? 불안하면 이러잖아요. 내가 뭘 해봤자 이게 뭔 소용인가, 하는 거. 이럴 때 의욕이 사라지잖아요. 지금 내가 뭘 활발하게 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은데, 그럴만한 힘이 없을 때. 그럴 때 가장 힘들고 지쳐요. 그럴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제 감정을 정의하기도 해요. 아, 지금 내가 왜 불안하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거지, 혼자 마인드맵도 그려보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면 가벼운 불안은 운동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풀어요.
용하: 목표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47퍼센트: 뭐든지 중간이 좋다고 적당하게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데, 목표가 없으면 불안해지거든요. 그게 뭔가 내가 계속 달려야 하는데 달리지 못할 때의 불안함. 취준생이 왜 불안한지 알아요. 달리지 못하니까.
용하: 지금 사실 병원에서 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쉬지 못하고 있어요.
47퍼센트: 맞아요. 제가 책을 쓰고 있다가도 다 던져놓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아직 그걸 해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그 대상자에게 인터뷰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꼭 해주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겉으로 보았을 땐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개개인의 특별함을 끌어내고 싶었다.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는 신기하고 또 흥미롭지만 공감은 가지 않는다. 그저 머나먼 사람들의 이야기 같을 뿐. 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누구나 특별함을 품고 있단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용하: 지금의 인간관계는 어떠신지. 고민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
47퍼센트: 제가 마음을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 뭔가 다 케어 해줘야 할 대상으로 보이는 거.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더 많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직접적으로 불안하고 힘들다, 하는 사람이 더 많고, 나는 그 중에서 그나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편 같고.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불행해할 수 있기도 하잖아요. 환경적으로 봐도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도 많고. 그래서 뭔가 그 앞에서 ‘나 힘들어’, 라고 말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용하: 혹시 주변의 지인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편이에요?
47퍼센트: 거의 80% 들어주는 편이에요.
남들이 보기에 커리어가 확실하고 당찬 사람들일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자주 드러내게 되어 있다. 강해보이는 사람은 무언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 되어줄 것 같고 또 자신에게 동기를 불어넣어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다 같은 사람이다. 의지하고 싶은 욕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다. 끝도 없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결국 지치게 되어 있다.
47퍼센트: 아니, 난 왜 하면서 불안하지, 이런 생각도 든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희 아빠도 그러시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좀 있어봐라, 한 달만. 무슨 병원에서까지 노트북하고 있냐, 또 하냐, 이러시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전원을 완벽하게 종료 안 하고 뚜껑만 덮어놓는 노트북 같은 느낌? 6개월 간 계속 그렇게 노트북 쓰면 수명 줄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의 수명이 줄어들어 버린 느낌? 그래서 몸이 한 학기 끝나면 죽고, 한 학기 끝나면 죽고. 저는 그래요. 한 학기 내내 왕성하게 친구들을 만나다가 방학이 되면 아무도 만나질 않아요. 잠수를 타요. 사람들한테 진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제가 애정을 쏟는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지치니까. 저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누군가를 책임지고 사랑해주고, 그런 거를 매일 해줄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용하: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 세상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든 격려든 응원이든 한 마디를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그냥 고민을 해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내가 뭐라서가 아니라. 지금 떠오르시는 한 마디가 있나요?
47퍼센트: 음...글쎄요. 조언은 아니겠지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손가락부터 발가락, 머리카락까지 명상해보는 거? 저는 아침에 명상을 하거든요. 그때마다 불안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불안이나 통증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고. 그냥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피하지 말고 제대로 한 번 느껴보는 거? 힘든 것도 좋은 것도 느껴보는 거? 내가 어떤 상태인지 진단을 할 수 있게끔. 남들은 잘 모르니까. 알 수가 없죠. 그거 하나? 단순히 노력하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용하: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을 좌우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계신가요?
47퍼센트: 제가 좌우명이 자주 바뀌었었는데, 옛날에는 ‘기침하듯이 칭찬해라’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그게 또 부작용이 있어가지고.(웃음) 지금 바꿨어요. 내가 감히 무슨 존재라고 남을 칭찬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나랑 협력하자’예요. 예를 들어서 옛날에는 목표를 정하고 나면 실행하는 방식이 좀 달랐어요. 예전엔 목표대로 하지 않으면 저를 막 때렸어요. 이런 멍청한 년, 이러면서.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예민해졌지만 그런 감정과 타협하기로 했어요. 그런 감정들을 그냥 알아주기로 했어요. 하기 싫을 때 이제는 저와 타협을 해요. 하기 싫으면 잠깐만 쉬었다 할까, 이렇게. 급하지 않으면 다음에 하자, 이렇게요. 이런 식으로 나와 대화하고, 협력하고, 하려고요.
사람들에게 좌우명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듣기엔 그럴듯한 말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47퍼센트님은 그러질 않았다. 그녀의 말엔 그녀만의 색채가 뚜렷이 칠해져 있었다. 47퍼센트님에겐 특유의 향기가 느껴져 좋았다.
용하: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47퍼센트: 저는 예전엔 우주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무언가 큰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목표가 아니라 사실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도 상관없거든요. 제가 지금 눈을 감는 순간을 떠올리면 아,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그냥 웃고 있는 거? 아니면 내가 좋은 느낌을 가지고 사는 거?
용하: 아, 이건 느낌이 조금 다른데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좁힌다면 어떤가요.
47퍼센트: 꼰대가 아닌 거. 제가 70세에 죽든 80세에 죽든, 저보다 스무 살이 어린 동생이든, 그런 사람들이 제가 꼰대가 아니라 좋은 친구였다고 기억해주는 거. 그냥 영원히 친구 같은 사람.
용하: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떠셨는지.
47퍼센트: 음...일단 제게 주신 메일이 정중해서 놀랐어요. 나보다 더 세심하다, 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놓치는 부분까지 배려해 주는 부분이 느껴져서, 이런 사람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불편해할 부분들, 저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해서 말해주셔서 놀라웠어요. 조심스럽게, 이렇게까지 메일을 보내주신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에 들었고,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용하: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47퍼센트: 인터뷰 꼭 하세요.(웃음)
사람들의 고민은 대충 들어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비슷한 고민 같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사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고민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이야긴 잘 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첫 마디만 들어서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아, 나도 그런 고민해봤어, 라면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해결책처럼 제시하는 사람들. 자신도 그런 고민을 해봤기에 그의 해결책이 마치 약효가 뚜렷한 약재인 것 마냥 이야기하는 사람들. 정작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야긴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싶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그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고 싶었다.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