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감성에세이집 4편 '스물네 번째 생일'
작년 이맘때 즈음, 나는 스스로 파놓았을지도 모를 관계의 구덩이에 깊숙이 빠져있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또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던 내 자신이 그저 한스러웠다. 그 당시 나는 군 제대 이후 1년 가까이 활동한 동아리에서, 오해에서 시작된 일로 중간에 나오게 되었다. 활동기간 내내 믿고 가까이 지냈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틀어지게 된 게 발단이었다. 믿었던 이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는 것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신뢰 관계가 두터울수록 그 관계에 실금이 가는 건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을 굉장히 믿었기에, 당신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던 것.
동아리를 나오고서 이젠 아무도 못 믿겠다며 홀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이 먹은 ‘어른이’의 객기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고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러고 잠수를 탔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페이스북도 비활성화로 돌렸다. 집과 일만 그저 반복한 채 무료하지만 상처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중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이 무슨 대수일까.
그저 월화수목금토일 중 하루에 불과하고, 내가 살아가는 일상 중 한 순간일 뿐. 생일이라고 해서 호들갑을 떨 이유도, 거창하게 파티를 벌일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날이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날이었을 뿐. 그래도 생일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날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일을 했고, 같이 인턴하는 분들에게 축하의 말을 몇 마디 건네받기도 했다. 여섯 시 무렵, 아무 탈 없이 일을 마치고 정시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생일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감성에 젖는다거나 의미 있는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얼른 지친 몸을 달래고 싶었을 뿐.
집에 도착하고 보니 어머니는 음식을 하고 계셨다. 집안 가득 따뜻한 열기와 함께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다. 그래, 가족들과의 소중한 한 끼 식사가 바로 의미 있는 생일 파티지. 아버지는 약속이 있어 늦으신다고 했다. 그래, 늦을 수도 있는 거지. 가을의 해는 강 건너 높은 건물 뒤로 일찍 숨어들어 창밖의 풍경은 이미 거뭇했다. 나는 손을 씻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내 식탁 위로 여러 반찬이 깔렸다. 그 중 메인은 역시 미역국.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소박한 생일 파티가 그리 썩 나쁘진 않았다. 어머니는 야심차게 만드신 음식을 마무리 손질하는 중이었다.
“자, 이제 먹자.”
“이게 뭐야.”
어머니가 그토록 정성을 드린 음식은 바로 호박무침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는 그 호박무침.
“호박무침 좋아하지 않아?”
“엄마, 나 이거 태어나서 한 번도 먹은 적 없는데.”
속 안에 꾹꾹 눌러왔던 서러움이 기다렸다는 듯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어머니와는 상관없는 그런 서러움. 하루 종일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는데, 막상 가족들에게까지 축하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울컥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가족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 그래도 위로가 될 줄 알았는데. 아무 죄 없는 어머니만 어쩔 줄 몰라 당혹스러워 했다.
그때 마침 들어온 아버지.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에 어떤 코멘트를 달아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가운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그 어떤 말도 없이 거실을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괜찮다며, 나보다 더 당황해하는 어머니를 달래고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처음부터 괜찮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괜찮지 않기에 괜찮을 거라 그토록 자기 주문을 외웠던 것이다. 내가 굳이 내 생일을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 날짜를 기억해주고 연락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상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방안에 홀로 있는 게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쓸쓸하고 추웠다.
이것이 작년 이야기다. 올해는 다행히도 페이스북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다. 생일은 이제 예전처럼 파티 같은 걸 열면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기보다는 그저 나라는 사람을 한 번쯤 기억하게 해주는 날이 되었다. 난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면서,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한 번 더 연락할 좋은 핑계를 만들 수 있는 날이기 때문. 작년 일을 겪고 나서 느낀 건, 받을 수 있는 축하는 받는 게 좋다라는 것이다.
작가 정용하 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