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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30. 2019

12. 여사친과의 술자리

정용하 에세이



이성 간에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의견이 항상 분분한 것 같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될 수 없다는 사람을 전혀 이해 못 하고,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는 사람을 전혀 이해 못 한다. 될 수 없다는 사람의 주장은 매번 같다. 둘 중 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남녀 간에는 술 마시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이성과 관계없이 언제든 열린 결말(혹은 끔찍한 상황)을 보일 수 있는 관계가 무슨 친구냐는 것이다. 그 말도 나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 친구냐, 이성이냐, 굳이 그것을 꼭 구분해야 하는 걸까. 친구로 지내다 마음이 깊어지면 연인이 될 수 있고, 친구로 지내다 소원해지면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고, 친구가 계속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친구가 연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 때문에 자신과 다른 성별을 모두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땐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경우도 충분히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인이 기분 나빠 하지 않은 선까지. 만남이 안 된다면 가끔 연락이라도. 경조사를 챙기거나 안부를 묻는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 해서 함께 추억을 쌓아온 모든 이성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해서 내가 여사친이 많은 건 결코 아니다. 신기한 건 나만 그런 걸지 모르지만 여사친과의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않더라. 친하게 지내다가도 어느새 관계가 소원해지고, 다시 복구하기 어려우며,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더욱 공고해지더라. 어떨 땐 이유도 없이 단절되는 경우도 많다. 동성끼리는 서로 연락 안 하고 오랜만에 봐도 반갑고 아무렇지 않은데, 이성끼리는 그게 안 된다. 조금만 연락하지 않으면 바로 관계 끝에 다다른다. 왜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저 상대가 나보다 이 관계에 대해 더욱 부담을 느끼는 걸지도. 그저 원래 이성 간의 관계가 그런 걸지도.     



나는 H가 스무 살 신입생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풋풋하기 그지없고, 인사만 건네면 쑥스러워하던 앳된 후배가 어느새 내게 심심찮게 막말도 하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관심사와 이야깃거리도 나이에 따라 옮겨져 갔다. 이십 대 초반엔 그저 소소한 동아리 얘기를, 그리고 조금 지나선 취업과 진로 얘기를, 지금은 결혼, 심지어 19금 얘기도 서슴치 않는다. H와의 대화 주제를 보면 우리가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 H가 요즘엔 결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되도록이면 빨리 하고 싶어 한다. 사실 이제 빠른 나이도 아니다. 지금 해도 적정한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H가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 연봉은 어때야 하고, 가족관계는 어땠으면 좋겠다는 등 외적인 조건에 대해 언급했다. 요즘 그 정도는 다 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그 정도 조건의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가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그런 현실적인 조건에 치우쳐 정작 사랑이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굳이 그럴 듯한 집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 작은 집에서 시작하지만 언젠가 큰 집에서 살겠다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결혼이, 나이에 떠밀려 하는 결혼이 아니지 않나.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결혼이 아닌가. 그럼 둘의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지, 조건이 먼저여선 안 된다.     



이런 얘기를 H에게 했더니, 그런 생각 고쳐먹으란다. 그러면 결혼 못 한다고. 그럼 안 하면 되지, 라고 답했더니 그래도 안 된다 한다. 왜 안 되느냐, 물었더니 더 이상의 답이 없었다. 그렇다. 이런 나의 가치관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굳이 애써 결혼할 필요는 없다. 결혼이 뭔데. 그 사람 아니면 더 나은 사람 못 만날 것 같고, 그 사람과 함께라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릴 것 같을 때 하는 것이 결혼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장 해도 된다 결혼. 10년, 20년 후를 내다봤을 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함께 늙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면 하라. 그 사람이다, 당신의 인연은. 현재의 조건을 따지지 말고, 그 사람을 봐라. 그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봐라. 그랬을 때 확신이 들면 지금의 현실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망설이지 마라. 그 사람 놓치지 마라. 그건 운명이다.




2019.09.30.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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